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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일본의 고즈넉함에 소름이 끼칠 때

산 중턱에 위치한 우리 동네의 매력은 두말할 것 없이 고즈넉함이다.
도시의 활기에 익숙한 사람도 가끔은 속세의 번잡스러움을 피해 조용한 시골이나 휴양지를 찾듯이, 그와 비슷한 심리로 나는, 우리 동네의 고즈넉함을 통해 오랜 서울 생활의 피로와 고뇌를 풀어냈던 것 같다.

아침보다도 더 이른 5시 30분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대신, 느즈막히 일어나 거실 창문을 열고 창 밖을 보며 마시는 차 한잔~!!  100만년 만에 맞는 여유같아서 그 평범한 일상에 감동을 받아 괜히 혼자 청승맞게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일본 동네에서 느껴지는 고즈넉함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땅거미가 지고 나면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동네의 고즈넉함에서 죽은 도시의 음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색함 이상의 공포스러움이다. (관광지와 동네는 좀 다릅니다.)

그것은 어디선가 이미 경험한 적이 있는 매우 익숙한 공포였다.

내가 처음 일본에 발을 들인 건, 대략 10년 전, 대학원 친구네 집을 방문했을 때였다. (이 친구에 대해서 포스팅한 적이 있습니다. 아직도 찾고 있어요 [다다다 이야기/내 사랑 한국어] - 한국어가 2% 부족해서 재미있었던 내 일본친구 이야기 동경에 위치하고 있던 친구네 집은 그림에서나 나올 것 같은 새하얀 단독주택이었다. 고층 아파트만 즐비한 한국 우리 동네와 비교하니, 친구네 집은 이쁜 엽서에 막 튀어나온 것 같은 내가 열망해왔던 그런 집이었다. 그림 같은 그 집 2층에 위치한, 유학으로 부재중이었던 친구의 동생 방에서 무려 열흘을 신세졌었다. 그리 큰 집은 아니었지만 아기자기한 집 곳곳을 돌아보며, '결혼을 하면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라는 미래의 상상까지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나는 그 집에서 답답함을 느껴갔다. 베란다에 나가보면 그림같은 집이 나란히 서있어 고급 주택단지의 품격이 느껴졌지만, 조그만 창 하나하나 커튼으로 가리고, 한여름인데도 문은 꽁꽁 닫혀 있고,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기분나쁜 고요함에 질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아침 9시 저녁 9시 쯤 한번씩 들리는 일본 불교의 동물 울음소리같은 주문도 고요함을 공포로 바꾸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그 기억이 이어진 탓일까?

며칠 전, 집을 나와 동네를 거닐던 나는 순간 엄습해오는 공포와 마주하게 된다.

집을 나와 10분을 넘게 걸었는데도, 단 한 사람과도 마주치지 못했다.
역 앞에 있는 야채 가게엔 채소와 과일이 자판에 놓여 있었지만 주인 아저씨는 보이지 않았다.
옆에 있는 타코야키 가게에서는 타코야키가 익어가는지 김이 모락모락나고 있었지만, 역시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나는 생각했다.


"혹시..나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의 주인공??? "


여주인공의 부모처럼 주인없는 타코야키를 집어먹으면??


나도 돼지로 변해버릴까?

순간 소름이 쪽 끼쳤다.

엉뚱하면서도 무서운 상상을 하는 사이 다행히 정상인으로 보이는 일본인 할머니와 마주쳤다.

가끔 생각한다.

우리 동네의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일본 동네는 왜 그리도 고즈넉할까. 우리 동네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