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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콩이 이야기

(일본에서) 성을 바꾸고 싶다는 딸의 이유를 들어보니

그저께 보육원에서 돌아온 콩이(만 4살, 여아)의 첫 마디의 깜짝 놀라고 말았다.

 

" 엄마, 콩이 이름 바꾸고 싶어. "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던 다다다.

 

하지만 내 예상보다 빨라 좀 더 당황했던 다다다.

 

일본에서 사는 외국 아이들의 경우, 이름 때문에 놀림을 당하거나 상처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내게도 언젠가는 일어날 수 있다고 마음의 준비는 했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빨리 일어날 줄 몰랐다. 우리 콩이의 경우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환경을 고려해서 이름을 지었고, 한국에 살다 온 아이들의 경우 보다는 좀 나은 케이스였기에...ㅜㅜ 미리 준비해도 다 소용없는 거구나 싶었다.

 

(전에 나는 일본에서 놀림받는 이름이라는 글로 히트친 적도 있으니 오죽 준비를 잘했을까?? 

 [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 일본에서 놀림당하는 한국 이름

 

 

 

일단 콩이의 심정을 알아주는 게 먼저다 싶어서..

 

" 그래? 우리 콩이 이름 바꾸고 싶구나. 콩이는 어떤 이름으로 하고 싶어? "

 

" 엄마, 나는 미나미 콩이로 바꾸고 싶어. "

 

오잉?? 이건 또 뭔 소리? 이름을 바꾸고 싶은 게 아니라 성을 바꾸고 싶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이름이야 일본식 환경을 고려해 지었다 해도 성은 바꿀 수 없는 것이라 또 다시 당황한 다다다..

 

생각해 보니 한 때 쿤이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한 적은 있었다.

 

 

쿤       :  내 성이 말이지. 임(林)씨거나

            남(南)씨 였으면 좋았을 것 같아.

 

다다다 :  그건 갑자기 왜?

 

쿤       :  아니. 임(하야시)도 남(미나미)도 일본에도

             있는 성이니까 

            양국 통용되잖아. 얼마나 편리해.

            전화 상담 할 때도 내 성 하나 설명하려면 

            30초도 넘게 걸리는 데,

            한자도 같으니까 바로 통하잖아.   

   

 

남편이 한 때 말했던 그 '미나미'를 콩이가 콕 집어서 바꾸고 싶다고 하니...겨우 만 4살인 콩이가 쿤과 같이 생각했을 리는 만무하고...도대체 뭘까 그 짧은 시간 나의 머리는 혼동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길래 좀 이상해서 콩이에게 좀 더 자세히 이유를 물어보게 되었다.

 

"콩아..우리 콩이 갑자기 왜 미나미로 성 바꾸고 싶어졌어? "

 

그랬더니, 우리 콩이의 대답은 내 우려와는 아주 다른 의외의 것이었다.

 

" 엄마,  우리 반 유세이 알지?  원래 마츠모토 유세이였는데 오늘 부터 토카오카 유세이가 됐대. "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 콩이의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일본의 문화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결혼하면 보통 남편의 성을 따른다. (비율상 훨씬 적긴 하지만 남편이 부인의 성을 따르는 경우도 있다. ) 만약 이혼을 하게 되면, 결혼 전 성으로 돌아가도 되고 그냥 그대로 살아도 된다. 아이가 없는 경우에는 대부분 결혼 전 성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가 이미 많이 커서 학교도 다니고 있는 상황까지 오면 아이의 상황을 고려해 남편의 성 그대로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이기 다 성장한 후, 결혼 전 성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이미 세월이 많이 지난 다음에는 그 절차가 까다롭고 불가능하기도 하다는데, 아이를 위해 참았지만, 도저히 전 남편 성으로 평생을 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그걸 감수하고 바꾸기도 한다니..그렇게까지? 라고 생각하다가도...주로 성으로 불리는 일본 문화를 생각하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아빠가 없어서 엄마 성을 따랐던 유세이는, 엄마가 결혼을 해서 아빠가 생기면서 성이 바뀐 케이스였다. 0살 반부터 4년 동안 봐 왔던 유세이 엄마는 운동회도 발표회도 늘 아빠 없이 홀로 왔었는데, 콩이의 이야기를 듣자 마자, 결혼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콩이가 보육원에서 이름으로 놀림을 받았다고 오해했던 나의 걱정은, 콩이 친구 집의 경사스런 이야기로 전환되면서 내 기분도 한층 가벼워 졌다. 콩이가 덧붙인 다음 말은 나의 막연했던 예상을 확신으로 바꿔 주었다.

 

" 엄마, 오늘 유세이 아빠도 왔어. 콩이는 유세이 아빠 처음 봤어. "

 

 우리 콩이가 '미나미' 라는 성을 콕 찍어 지목했던 이유는, 두어달 전 보육 실습 나온 전문학교 언니 이름이 '미나미 네네'였기 때문이었다. 우리 콩이는 성을 바꾼 친구의 이야기를 듣자 마자, 만약 성을 바꿀 수 있다면 뭘로 할까 고민했을 테고, 그 결론이 몇 주 전 추억을 나눈 천사같이 예쁘고 친절했던 미나미 언니였던 것 같다.  

 

딱, 만 4살에 맞게 그저 순순했던 바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도 안심하고 마음을 내려 놓았다.

    

그날 저녁, 쿤에게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여전히 콩이는 간절한 표정으로 '미나미 콩이' 로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아빠에게 어필하며 애교를 떨고 있었다.

 

그런 딸에게 쿤의 한 마디..

 

" 미나미 콩이가 되면 아빠는 더이상 콩이 아빠가 아닌 데? 괜찮아?? "

 

순수한 콩이의 상상력에 찬물 끼얹은 쿤...맞은 말이긴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고, 콩이도 순간 놀랐는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좀 더 다정하게 상황 설명을 하고 부드럽게 마무리 짓긴 했으나 아직은 어린 딸이기에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 대처였을까 오늘의 상황을 몇번이고 곱씹어 보았다.

 

육아는 어렵다.

 

해외에서의 육아는 한국과는 또 다른 고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