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1일 토요일.
그 날은 아침부터 바빴다. 오전에는 싱가폴에서 일본으로 직장을 옮겨오는 가족을 만나 같이 아침겸 점심을 먹었고, 오후에는 한국어 강의를 했다. 한국어 강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쿤의 오랜 친구가 와 있었다. 나이는 쿤보다 5~6살 정도 어리다는데, 9년 정도 알고 지낸 친구란다.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쿤의 새로운 지인이었기에 반가운 마음도 있었지만, 예고도 없는 방문에 많이 놀랐다.(쿤이 말을 했는데, 내가 날짜를 잘못 알았다.)
갑작스런 손님 방문에 뭘 대접해야 할까~하고 망설이며, 둘의 친분관계를 살펴봤다. '야자'트고 말을 하면서, 농담까지 주고 받는 모습에 허물과 격식이 없는 사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하의 대화는 상황을 알기 쉽게 재연해 봤습니다.)
(다다다) 손님 왔는데, 차도 한 잔 안 줬어?
(쿤) 물 한 잔 줬어.. (친구에게) 야~ 너 물 한 잔 마셨지?
(일본친구) 시원한 옥수수차 마셨어요..
친구는 웃으면서 자기의 존재에 대해 신경쓰지 말란다. 하지만, 처음보는 사람인데 어떻게 신경을 안 쓰겠는가... 쿤에게 장을 보러 가야한다고 했다(우리가 사는 집 근처에는 마트가 없어서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쿤) 야~~ 다다다가 맛난 거 만들어 준단다. 너 먹고 싶은 거로 해 준다니까, 같이 장보러 가자.
(일본친구) 아니에요.. 저 때문에 장 볼 필요없어요. 그냥 평소에 먹는 거 먹어요.
(쿤) 우리가 평상시에 먹는 게 얼마나 고급인데... 가자.
(다다다) (ㅅ.ㅅ) 사실, 집에 먹을 게 없어서 어차피 장보러 가야 해요..
간다 안 간다 하며,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다. 처음엔 쿤도 장보러 가자고 하더니만, 이내 그냥 있는 거 먹자고 한다. 남자들의 외출 귀차니즘이었다. 그런데, 일본친구가 한 마디 한다.
(일본친구) 다다다씨.. 저 먹고 싶은 게 있어요. 라면 끓여주세요.
(쿤/다다다) 라면..??
(일본친구) 쿤이랑 같이 한국에서 라면 먹고는 일본에서는 한국 라면을 못 먹었답니다.
다다다씨가 끓여주는 라면이 먹고 싶어요..
너무나도 황당한 요구에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 4종류를 꺼내서 보여줬다.
(다다다) 이거요?
일본친구는 말을 이었다.
예전에 한국의 쿤네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요. 쿤을 따라서 놀러 나갔다가, 배가 고프다니까 쿤이 분식집에 데리고 갔답니다. 쿤이 이런 저런 먹거리에 대해 설명해 줬는데, 아는 게 라면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라면을 시켰는데, 인스턴트였답니다. 그 라면을 처음 봤을 때, 제가 일본인이라 놀린다고 생각했어요. 일본은 식당에서 인스턴트를 안 팔거든요. 게다가 쿤이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정말 기분이 별로였어요.. 다른 가게도 나를 차별할까~ 하는 생각에 한국에 있는 동안 라면을 두 번인가 더 먹었는데, 다~ 인스턴트를 주는 거예요. 쿤에게 물어봤더니 "한국 라면 = 인스턴스"라는 말에 깜놀했었죠. 근데, 다다다씨도 역시 인스턴트를...^^;;
그러고 보니 일본의 라면은 돼지기름이나 간장, 된장 등으로 맛을 내고, 면도 한국의 꼬불꼬불 면이 아니라는 게 떠올랐다(개인적으로 일본 라면을 안 좋아해서, 평소에도 내 돈 주고 사먹은 적이 한번도 없다. 근데 쿤은 잘 먹는다.. 간장 라면만...ㅋㅋ). 난 아직도 일본 라면 보다는 한국의 인스턴트 라면이 입에 맞다.
쿤이 유일하게 먹는 일본의 간장 라면
떡도 넣고 계란도 풀어서 신경써서 끓여줬다(젓가락도 일본식으로 해줬다). 그랬더니 일본친구가 또 한 마디 한다..
(다다다) 네??? 라면은 김치랑 먹는뎅... (내가 뭐 잘못했나..?)
(일본친구) 다름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김치나 단무지를 줬거든요. 그냥 라면만 주는 경우가 없었어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일본에서 라면을 시키면, 정말 라면만 덩그런히 주는 곳이 많았다. 라면 정식을 시켜야, 무짱아치나 일본식 백김치가 같이 나오는 정도였다..
라면을 거의 다~ 먹었길래 주방에 가서 밥을 가져와서 밥 말아 먹을 거냐고 물어봤다.
일본친구는 라면에 밥을 말아 먹는 민족은 한국인 뿐일 거라며, 신기하다고 웃으면서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다다다) 근데, 일본식당에서 라면 정식이나, 우동 정식에도 밥이 나오는 걸로 아는데, 따로따로 먹어요?
(일본친구) 움~ 따로따로 먹어야 각각의 그 맛을 느낄 수 있잖아요..
일본친구 말을 듣고 있던 쿤이 밥을 한 숟가락 뜨더니, 일본친구 라면 그릇에 말아버렸다. 일본친구가 '으악!!'하며 짧은 비명을 지르자 쿤이 한 마디한다.
(쿤) 야..!! 너도 말아 먹어봐.. 먹을 때 따로 먹어도 나올 때는 같이 나오는 거 알지..?? (ㅅ.ㅅ)
일본친구는 투덜거리며 한 숟가락을 먹었다.
(일본친구) 어...!! 이거 의외로 맛 괜찮네..ㅎㅎㅎ
일본친구는 하룻 밤을 자고 갔고, 갈 때는 한국의 인스턴트 라면을 두 개 얻어 갔다.
잘 끓여 먹었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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