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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한국에서 자신감 있는 나, 일본에서는 허풍쟁이

어릴 때 매우 소극적이었던 다다다는, 매사에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을 볼 때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자라면서 나에게도 숫기가 생기고, 뻔뻔함까지 붙으면서, 지금은 사람 구실을 하며 산다는 말도 듣는다. 이렇게 변한 나를 보고 오랜만에 뵌 초등학교 선생님까지 놀라실 정도니 예전의 나는....T.T 

자신없어도 "자신 있다, 할 수 있다" 라는 선언을 하는 것은 적극적인 자기 관리와 긍정적인 자기 암시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사회를 알면서 나 자신에 대한 적극적인 피알과 어필의 중요성을 깨달으면서 나의 변화는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그런데,
타고난 소극성을 깨고 피나는 노력으로 만들어 온 나의 자신감이 일본에서는 도통 안 먹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어떻게 갈고 닦은 건데...T.T)

일본 생활 초보인 다다다는 안습일 뿐~T.T
캐릭터 제공 - [차가운 도시 남자 님]


경험사례 1...
문화센터에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기 위해 면접을 보던 날이었다.
이력서를 찬찬히 뜯어보던 연로한 두 관리자가 "요즘 외국어를 가르치려는 외국인은 많은데, 일본어를 잘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배우는 일본사람들의 불만이 많고, 어설프게 가르쳐서 강좌가 오래가질 못해요." 라는 말로 무게를 잡았다. 한 말씀 드려야 겠다는 생각에, "가르치는 것은 제가 가장 자신있게 하는 일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 때, 몰아치는 썰렁한 분위기란.....
내가 내 소개를 조금 약하게 했나 싶어서 이번에는 "첫 강좌 열면 바~로 알게 되실 겁니다. 제가 가진 능력에 대해서요..." 라고 하자 두 관리자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응? 이게 아닌가보네~) 그리고는 아무말 없이 나를 지그시 관찰하기만 했다. '넌 뭘 믿고 그렇게 자만에 떠는거냐?'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가 눈싸움에서 지지 않자, 먼저 눈을 내리더니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물론 한국어 강좌는 당일 전원 마감으로 개설되었고..잘 하고 있습니다. 강좌 개설 이야기도 언젠가 포스팅할게요. 공수표 팡팡..ㅋㅋ)

경험사례 2...
지금 받고 있는 장학금의 장학생 교류회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일본 전국에서 활동하는 그 단체에서는 매년 유학생을 대상으로 일본어변론대회를 열고 있다고 했다. 내가 작년에 변론대회에서 2등을 했다고 하자, 올해 출전해보는 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그래서 흔쾌히 응하며, 농담반 진단반으로 "그럼, 제가 올해 변론대회 1등을 하겠습니다. " 라고 하자, 십 수명의 임원들 사이에 찬바람이 쌩~~하고 불었다. 교류회가 끝나고, 단체 이사장 님이 점심을 사주신다고 해서 따라 나서는데 이렇게 한 말씀 하셨다.

"다다다 상은 특별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 자신감요.. 설사 1등을 못하더라도 당당하게 행동하는 모습은 일본인들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에요.. 그래서 참신하게 느껴져요."
(이 분은 워낙 사회적 지위도 높고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분이라 그나마 좀 열린 사고.. 근데, 진짜 칭찬이었을지는..??? )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일본인들은 위와 같은 지나친 자신감은 오히려 신뢰성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기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잘 표현하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실없는 사람이 되기 십상인데다, 결과가 제대로 안 나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절대 나서지 않는 것이다. 설사, 나서야 될 상황이 온다 해도 살 길은 반드시 마련해 두기에,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믿을만하다고 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소심하고 비겁해 보인다고 할 수도 있다.

좀 더 예를 들어보자.
나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 의사나 간호원에게 "많이 아파요?" 라고 묻곤 한다. 한국 병원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조금 아플거예요. 그래도 빨리 나려면 이정도는 참아야죠" 라는 호통이거나, "하나도 안 아파요. 걱정 마세요." 라는 달콤한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일본 병원에서는 "대부분은 안 아파하는데, 아플 수도 있어요." 내지는 "아파하는 사람도 있고, 안 아파하는 사람도 있어서..." (-.-도대체 어느 쪽이야??) 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과 대화를 하다보면 "아니야~, 그거 아니거든. 내기 할래? 내가 목숨..두 개 걸고 말하는데, 절대 아니거든.(쿤은 설거지 건다~)" 하고 확언을 쉽게 하지만, 일본인은 확실한 경우에도, "아마도 그거일 걸." 내지는 "내가 알기로는 그건데, 혹시 바뀌었을지도.." 라며 말을 흐린다.

스포츠 스타의 인터뷰를 보아도 매우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이길 가능성은 충분하다. 열심히 하겠다" 는 말이 주류를 이루는 일본 선수에 비해, 한국 선수는 "반드시 이긴다. 이겨야죠. 자신 있습니다"는 말을 잘 쓴다.
한국 선수에 가까운 형식의 인터뷰를 하는 일본 선수를 말하자면, 메이져리그에서 활약하는 이치로 선수를 꼽을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자신감을 넘어선 거만한 인터뷰는 결과에 따라 거센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말이 곧 결실이 되는 것 아니냐'(소니와 삼성의 향후 목표 달성 프리젠이야기는 매우 유명해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며, 다른 선수들과 차별화된 이런 점이 바로 이치로의 매력이라고 손을 치켜드는 일본인도 많다. (하지만, 스포츠가 아닌 일상에서 평범한 사람이 이치로처럼 말한다면?? ㅋㅋ 위.험.하.다.  ) 

"볼 것 없는데 자신감 하나 좋아 보여서 뽑았다." 는 것은 한국에서나 통하는 해피엔딩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일본의 특성도 모른 채, 다다다는 "요즘은 피알의 시대" 라며 가는 곳마다 큰소리를 뻥뻥치고 다녔으니, 사기꾼으로 오인받지 않고 썰렁한 분위기로 끝난 게 그마나 다행이다 싶다.

그런데, 나의 이런 자신감이 먹히는 곳이 있다.

바로 다다다의 한국어 강의다. 일본 온 지 3개월만에 가르치기 시작한 한 명의 학생이 지금은 수 십명이 되었고, 광고도 안 하고, HP도 없는데, 입소문을 통해 매~달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 번은 동방신기 팬이라는 일본인 모녀가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며 집으로 상담을 하러 온 적이 있다. 모녀가 상담을 받고 돌아가자, 상담 내용을 거실에서 듣고 있던 쿤이 한 마디 한다.

"이야~~다다다...!!!  많이 컸어..  말 솜씨가 장난 아니던데..?  다다다 말을 듣고 있자니, 나도 한국어 배우고 싶어지던 걸....ㅋㅋ "

"그거 별거 아닌데...내가 한국어 가르칠 때 자주 하는 말이 있거든. 사이비 종교 교주알지? 내가 이렇게 손 올리고 '믿습니까?' 그러면 배우는 사람들(나보다 대부분 연배가 높음)이 일제히 '믿습니다'라고 외치거든...ㅋㅋ  그걸 봐야 하는데 말이야.."

"에이~그럴리가..."

ネーミッスンニダー(笑)
네-밋슨니다-(웃음)
'네-믿습니다(웃음)' 이라고 메일을 보낸 
S씨의 문자.

한때, 강좌 개설을 위해 만났던 담당 관리자를 긴장시키고 어이를 상실케 한 나의 과장된 자신감이 일본 아줌마들에게 먹혔던 것이다. 이런 자신 있는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선생님과 학생으로 만난 사람이 어느 새 친구가 되곤 한다. 더 훌륭한 한국어 선생님도 많은데도, 나만 믿고, 나를 따라주고, 나의 자신감을 지지해주는 이들에게 허풍쟁이가 되지 않도록 오늘도 다다다는 열심히 공부를 한다.

한국식 자신감?
일본에서는 아무때나 쓰면 낭패보기 쉽다.
그러나 쓰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