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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약속 시간의 매너란?

일본에 처음 와서 살게 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 중 하나는 '일본 친구 사귀기'일 것이다. 더구나 나처럼 책만 달달 외우고 실전 경험도 없이 일본에 상륙한 경우는, 대화 상대가 더욱 절실하게 마련이다. 내가 처음에 친구를 사귀기 위해 이용한 방법은 국제교류회관에 친구 신청을 하는 것이었다.

국제교류회관에는 국제 게시판같은 것이 있어서 허가를 받으면 나에 대한 프로필과 간단한 메모를 남길 수 있다. 남겨진 메모는 약 2주간 게시되고 메모를 본 누군가가 나의 연락처를 이용해 컨택해오는 방식이다. 그렇게 해서 연락이 닿으면 서로 문자(메일)로 인삿말을 주고받다가 약속 시간을 잡고 장소를 정해 만나는 것이다.
 
가장 처음 내게 문자를 보내 주었던 친구는 토모 짱이라는 20대 후반의 귀여운 아가씨였다.
번화가 전철 역 앞에서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그녀를 기다렸던 2009년의 2월이 아직도 떠오른다. 약속 시간은 오후 1시였고 나는 12시 45분 쯤에 도착했다. 그런데 12시 50분이 지나도 55분이 지나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혹시 바람맞은 건가? ' 라는 생각이 들어 문자를 보내보려고 휴대폰을 꺼내려는데, 갈색 가죽 자켓을 입은 귀여운 그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1시 1분이었다.

그 뒤로도 나는 꽤 많은 일본 친구들을 만났지만, 언제나 같은 식이었다. 내가 먼저 15분 쯤 전에 도착해 기다림이 초조해질 때 쯤, 그녀들은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그 시각은 요상하게도 언제나 정시 혹은 정시 1,2분 전후였다. (1.2분 후가 앞도적으로 많았다) 걔 중에는 일찍 도착해서 내가 서 있던 화장품 가게 안에서 시간을 때웠다는 사람도 있었다. '일찍 왔으면서 연락이나 해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들의 시간 관념은 아주 철저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의외의 모습이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취직이 되면서 국제교류회관을 이용한 친구 만나기는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대신, 한국어 개인 교습 문의가 들어오게 되었고, 일로 일본인들을 만나게 되는 횟수가 늘어났다. 목적만 다를 뿐, 내가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고, 일본인들이 정시 혹은 약간 전후에 나타나는 양상은 똑같았다. 딱 한 명 10분 전에 나타난 50대 여성 분이 있었는데, 오자마자 나를 보고는 '너무 일찍 도착해서...' 라면서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늦게 온 것도 아니어서 나는 괘념치 않았다.

이런 일들의 반복을 통해, 나는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약속 시간에 대한 관념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약속 시간의 매너란, '정시', 혹은 '정시보다 늦게' 라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일찍 도착하는 것은 비매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5분 심지어는 20분이나 일찍 도착해 왔던 나는 일본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언제나 비매너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장소가 밖이었고 내가 그렇게 일찍 온 것을 저들이 몰랐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어디까지나 상대방이 불편할까봐 배려하는 시간으로, 그들과 마주치지 않으면 일찍가도 상관 없지 않나 싶다. ㅋㅋ ) 

게다가, 일본인들의 약속 시간은, 상대가 이미 있는 장소, 예를 들어 집과 같은 곳이라면 조금 더 늦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일본인들을 밖에서 만나보면 정시 혹은 정시 전후 1,2분에 나타나지만, 집으로 초대해보면 5분 정도 늦게 도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 중 일부는 우리집에 와서 공부를 한다. 그 중에서 오쿠무라 씨 이야기를 해보자.
 
오쿠무라 씨. 일본 온 지 3개월 무렵(2009년 5월~현재)부터 나와 인연이 닿아 지금까지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지금은 가르치는 사람이 꽤 많지만, 가장 처음에 만났다는 이유로 애정이 많이 간다. 그녀의 한국어와 나의 일본어는 같이 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ㅋㅋ


그녀는 매주 일요일 9시에 우리집에서 레슨을 받기로 되어 있다. 그녀가 처음 우리 집에 레슨을 받으러 오던 날, 나는 8시 50분 부터 그녀를 기다렸고, 55분이 되었을 때에는 혹시 집을 잘 못찾나 걱정이 되어 현관 밖을 내다 보았다. 그런데, 그녀는 이미 맨션에 도착해 있었고, 우리 집쪽으로 올생각은 않고 맨션 반대쪽을 향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불러볼까' 하다가 '뭔가 다른 볼 일이 있겠지' 싶어 집으로 들어가서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우리 집에 도착한 건 9시에서 5분이 지난 후였다. 나중에 물어보니, 너무 일찍 도착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단다.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는 어김없이 9시 5분이 되면 우리집 벨을 누른다.

일본에서 약속 시간이라는 건, 약속한 행위의 시작 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이전의 시간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개인 시간으로 볼 수 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것은 개인의 고유한 그 시간을 침해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약속 시간보다 '일찍' 이라는 것도 일본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매너없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또, 딱 정시에 맞추는 것도 상황에 따라서는 상대방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정시보다 아주 일찍 오는 것은 비매너이다'라고 생각한다는 사람이 다수였다고 한다. 아래의 자료는 '타사를 방문할 경우의 비지니스 매너'에 대한 내용으로 위에서 내가 경험한 내용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대충 번역>
 ■ 너무 빨리 도착하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실례(폐)

'늦는 것이 안된다면, 가능한 빨리 가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상대방도 당신을 만날 준비가 필요할지도 모르고, 이미 앞에 고객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빨리 도착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실례에 해당합니다. 약속 시간 5분 전 정도에 그 회사 접수처(안내)에 도착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업무가 시작 되는 오전의 첫 번째, 점심 시간이 시작되는 오후의 첫 번째로 약속되어 있는 경우는, 빨리 방문해도 상대가 준비(안정)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 예상되므로, 약속 시간 정시 혹은 반대로 약간 늦는 것(1~2분)이 좋습니다.


그러므로,
일본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는 약속 시간의 정시를 지키거나, 혹은 상황에 따라서는 상대방을 배려해서 약속 장소에는 1~2 분 정도 늦는 것도 나쁘지 않다. 특히, 일본인 집에 초대받아 가는 경우처럼 상대방이 이미 어떤 장소에서 기다리는 경우라면 일찍가는 것은 좋지 않다. 상대방이 준비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5분 정도 늦게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의 비지니스 매너' 참고 사이트 http://allabout.co.jp/gm/gc/291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