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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일본 선진국 정말 맞아? ' 라는 의문이 들 때

  대략 15년 전, 제가 다니던 고등 학교에서는 자매결연 맺은 일본학교와의 교환학생제도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참가비만 50만원 정도였기에 저는 갈 엄두를 못 냈지만, 가장 친한 친구가 그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죠. 일본에서 돌아와 사 온 물건이며 사진을 보여주는데, 정말 신기한 게 많았어요. 친구가 그러더군요. 일본은, 일반 음식점에 가도 '자동문' 이고 화장실에 가 보면 '자동물' 이라고요. 당시만 해도, 자동문이고 자동물이고 간에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대라,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본은 선진화된 나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이미지는 오랜 세월 저의 뇌리에 박혀 있었던 듯 합니다. (선진이라는 말의 정의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하지 않으렵니다.)

15년이라는 세월은 강산이 바뀌어도 몇 번이 바뀌었을 시간이죠.
작년부터 일본에서 살기 시작한 제 눈에 비친 일본은 글쎄요. 오히려, 아날로그가 아직도 통하는 곳으로 보일 뿐더러, 한국과 비춰보면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때가 많습니다. 

신용카드보다 현금을

 일본은 아직까지 카드 긁는 문화가 일반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번화된 거리나 관광지 일부는 카드가 되지만요, 그렇다해도 정작, 일본인들은 거의 카드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제가 가는 동네 수퍼(꽤 규모가 큰)가 한 3~4군데 있는데, 카드되는 곳은 한 곳도 없고요. (전용 카드라는 것이 있긴 한데, 가는 곳마다 일일이 만들기 시작하면 끝도 없죠. 카드 긁으며 장보는 일본인 본 적이 없어요) 저 역시, 늘 현금가지고 다니고 있고, 현금이 없어서 장을 못 보거나, 현금이 모자라서 물건 뺀 적도 있습니다.

일본에 관광오는 한국인들 반은 환전하고 반은 카드로 쓸 생각하고 왔다가 낭패를 보죠. 반대로 한국에 관광오는 일본인들 카드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 현금냅니다.


                                         각종 카드 혜택을 비교해 놓은 사이트

                               http://www.card-gorilla.com/sub.php?flashmenu=10301

일본인들에게 물었죠. 왜 카드를 안 쓰냐고요. 카드는 믿을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써도 쓴 건지 모르겠고, 어느 날 갑자기 고지서를 받아도 기억이 가물해서 맞게 쓴 건지 모르겠고, 뒤늦은 정산이 피곤하다는 거였죠.

한국은 카드를 긁으면 그 즉시, 휴대폰 문자로 받아볼 수 있다고 하니 놀라며 그런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써볼 수도 있겠다고 마지못해 이야기를 합니다. 휴대폰 알림 시스템이 없다보니, 저는 자주 컴퓨터로 접속해서 카드 내역서를 확인해보지만, 이것 역시 일본인들에게 녹록치 않은 건 컴퓨터, 인터넷하고 그리 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컴퓨터보다는 종이를

컴퓨터 메일
일본 사람들은 컴퓨터를 거의 혹은 아예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심지어, 회사에서 컴퓨터를 다루는 사무직 직원조차, 집에 컴퓨터가 없는 경우가 있어요.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나 파일을 보내기 위해 메일을 알려달라고 하면 없다고 하시는 분들이 과반수 이상입니다. 그렇다고 인터넷을 안하는 건 아니에요. 일본인들은 휴대폰을 이용한 메일, 그리고 모바일쪽 인터넷을 이용합니다.

일본 학교에서 일할 때, 컴퓨터 이용하거나, Email주소 가지고 있는 아이들 거의 없더군요. 방학 때 변론대회 나가는 아이 원고 고쳐서 우편으로 보낸 적이 있습니다. 이메일이면 몇 초만에 끝나는 건데, 아이도 가족도 Email 안 되는 거 보고 깜짝 놀랐었죠.
학교에서 노트북을 하나 받았지만, 문서 작성용에 불과했고요. 아이들 시험 문제 직접 채점해서 성적 전용 컴퓨터에 가서 엑셀 프로그램에 입력해야 했어요. (한국 학교는 컴퓨터 채점을 하고, 학교업무를 볼 수 있는 전용 프로그램이 있어 본인 컴퓨터를 이용해 모든 업무 처리가 가능합니다. 심지어 결재까지)

신청,발표
컴퓨터를 이용한 신청, 합격자 확인 일본에서는 아직까지 안됩니다.
제가 대학원 입학시험을 볼 때보니, 합격자 발표는 반드시 학교로 가서 게시판에서 확인해야 하더군요. 차비만 2,400엔(3만원 이상)인데 전화나 인터넷으로는 확인이 안되냐고 하니 안된답니다. 시험도 못본 것 같고 해서, 안가고 버텼더니, 입학금 고지서와 합격 통지서가 우편으로 날아오더군요. 합격자 발표나고 3일 만에 붙은 걸 알았답니다.

학교에 입학하니, 종이 한 장 주면서 수강신청하랍니다. 연필로 색칠하고 지우는 시스템이죠. 학교 오리엔테이션에 가니, 장학금 정보는 어디, 어디 건물 게시판에 주로 있고, 인터넷 게시판보다 빠르고 정확하니 직접 가서 보는게 신뢰할 수 있다고요.

구청, 시청관련 서류 떼는 것도 한국에서는 다 인터넷으로 했던 것 같은데, 여기는 발품팔아야 합니다.

인강이 웬 말?
작년에 일하던 학교 선생님이 한국어 관련 사업 제안을 하시더군요. 통신 교육을 하실 예정이시라고요. 본인은 일본인이라 별도의 한국인 원어민 선생님이 꼭 필요하시다면서 손잡고 일해보지 않겠냐고 하시대요. 그래서, 한번 생각해보겠다고 했었죠. 홈페이지도 만들었다고 하시길래, 당연히 저는 인터넷을 이용한 교육이라고 생각했었죠. 알고보니, 인터넷 강의가 아니라, 자료를 우편으로 보내주는 학습지 개념이더군요.

제가 가르치고 있는 일본분들이 종종 말하곤 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만든 자료를 이용해서 통신 교육(학습지)을 해보시면 어때요?"
"요즘 시대에 그게 먹힐까요?" 라고 하면 "당연하죠." 라고 모두들 고개 끄덕끄덕..

일본의 통신대학, 집으로 책만 달랑 보내주고 시험보라는 대학이죠.

이런 일본이다 보니, 인터넷 관련해서는 정말 답답할 때가 많아요.

일본 웹사이트 들어가보면 상당히 촌스럽습니다. 블로그요? 처음엔 일본 블로그 쓰려고 했는데, 너무 열악해서 포기했네요. 돈 더주고 용량 늘려야 하구요. 이용 시스템도 부족하고 불편해요.
 
인터넷 개통되기까지의 시간 정말 마음이 타들어갈 정도입니다. 한국의 당일 개통, 24시간 대기 에프터서비스 이야기해주면 깜짝 놀라죠. 요즘 느끼는 건데, 연결 끊겨서 인터넷 안되는 동안, 불안에 떠는 저를 볼 때면 제가 병인가 싶기도 하고요. 이런 증상 일본인들에게 말하면 웃지만 공감은 못합니다. 컴퓨터 사용을 안하고 평생을 살아가는 제 주변 일본인들(젊은 층임) 볼 때마다 놀라움에 혀를 내두릅니다. 예전에 저 또한 그들처럼 살아왔던 세월을 망각한 채요.

모뎀과 광케이블이 아직 공존하고 있고, 인터넷 느린 건 뭐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예전에 사라진 비디오, 씨디, 책 대여점 아직도 성행하고 있는 것도 인터넷 사용 수준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오랜 시간 저의 뇌리에 박혀있던 '일본은 선진화된 나라' 라는 이미지는 일본에서 사는 2년 사이에 사라졌습니다. 일처리라든가 융통성 면을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대단한지 왜 그렇게 빠르게 발전해가고 있는지, 새삼 느낄 때도 많아요. 요즘 일본 티비에서는 "한국 따라잡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가?" 내지는 "일본 이대로 좋은가?" 각성 프로그램이 많이 나옵니다. 보면서 많이 뿌듯해하죠.

일본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 있어선지, 변화하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의심이 많아 짚고 넘어가야하는 확인 절차가 길다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대신, 느린만큼 좀 안정되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국은 새로운 것을 빨리 빨리 받아들이죠. 그런데, 급변하고 있는 만큼, 발전에 비례하는 불안정함이 보이죠. 

편리함이 가져다 준 부작용 또한 많다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어둠의 경로에서의 불법 다운로드, 무분별한 카드 사용으로 인한 자살과 범죄, 망해가는 영세업자들, 컴퓨터 게임에 미쳐 있는 아이들, 인터넷으로 숙제하는 교육 등등등...편리함에 감춰진 이면도 때로는 봐야하지 않을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