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티비를 보다보면, 자주 겪게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띠링~띠링 경고음과 함께 티비 상단에 표시되는 지진 정보입니다.
어느 지역에서 몇 도의 지진이 몇 시에 있었다라는 내용이 실시간으로 뜨는 것이죠.
<메모리얼파크> 한신 지진의 잔상을 남겨두고 기리는 곳
예전에 큰 지진(한신 지진 1995년 1월 17일)이 일어났던 지역에 살고 있는 저는, 티비에서 들리는 경고음과 자막을 처음 접했을 때, '어느 지역인가, 우리 집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인가, 위험한가' 등등 지대한 관심을 보였었답니다. 이제는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일상이 되다 보니, 또 워낙에 작은 지진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다 보니, 그러려니 하게 되더라구요. 한번 큰 지진이 있었던 지역은 당분간은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누군가의 말도 제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었고요.
그런데, 남편이 어느 날,
"우리도 지진 가방을 준비해야겠어." 라고 하더군요.
"지진 가방? 그게 뭔데? "
"지진 나면 몸만 빠져나가기도 바쁘잖아. 그 때, 바로 들고나갈 수 있게 준비해둬야하는 가방이지. 먹을 수 있는 음식류, 따뜻한 옷 가지, 손전등, 장갑, 비상약을 비롯해서, 중요한 서류부터, 통장, 여권 같은 것도 넣어두는....."
13년을 살면서도 그다지 큰 지진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남편 역시, 일본이 지진이나 해일의 위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알면서도 닥치지도 않은 일 앞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 지 구체적인 대책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었거든요.
우리가 한 대비라고는, 집을 구할 때 위치, 설공 조건 등을 체크해본다, 벽에 무게가 있는 물건을 걸거나 달지 않는다, 큰 책장이나, 테레비, 액자같은 건 뒤 쪽에 다시 끈을 매달아 넘어지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해 놓는다 정도일까요? 가구에 끈 달아서 고정시키는 남편의 모습도 신기하기만 했었는데, 갑자기 지진가방이니 뭐니 하니까 괜히 무서워 지더라고요.
<--- 지진 가방에 넣어야 할 물품 세트
(출처 : http://bousaishop.net/ )
최근에 남편 회사에서 우연히 지진 이야기가 나왔고, 이야기하던 중에 우리를 제외한 회사 동료들(일본인)은 모두 지진 가방이라는 걸 준비하고 살고 있다는 걸 알게되었던 거죠.
아차 싶어서, 부랴부랴, 일본의 포털 사이트에서 키워드를 넣어보니, 재해 대비 물품 인터넷 판매 사이트가 아주 많이 검색되더군요. (가격을 보세요. 필요한 거 다 구입하다가 살림 거덜 나겠어요.)
만약 오늘 큰 지진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을 해보니, 저는 정말 아무런 지식도 대책도 없더군요. 구청에서 나눠준 지난 유인물을 뒤져보니, 재해 발생 시 대피소 라든가, 재해 발생 시 유의 사항 등이 적혀 있네요. 읽은 것 중 기억에 남는 것 한 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지진이 일어나면 '문' 이라는 문은 다 열어놓는 것이 처음에 할 일이라네요. 예전에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 지진으로 인해 문이 붕괴되고, 빠져나가지 못해 죽은 사람이 많았다는 걸 바탕으로, 최근에는 "출구 확보" 를 강조해서 재해 대비 교육을 한답니다.
생각이 깊어지니 평소에 안 보이던 것도 보이네요. 매일 타는 지하철에 이런 문구의 광고가 있더군요.
地震、自身ありますか? 지신, 지신아리마스까? 지진, 자신있습니까?
---> 발음이 같은 특징을 이용하여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광고 문구혼잣말로 답을 해보는데, 영~~ 자신이 없었어요. '네~' 라고 크게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가 필요하겠죠. 비단 일본 뿐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 재해 대비를 위해 뭔가 준비하고 계시는지요?
이건, 여담이면서도 진심인데,
한국에 살 때는, 독도 문제, 유명인의 신사참배 등이 거론될 때면
'큰 지진나서 다 무너져라' 내지는, 태풍이라도 불면 '다 쓸어가 버려~'라고 했던 저였지만요.
여러분들,
일본에도 사람은 살고 있어요.
그런 말 하심 미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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