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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일본인들에게 하지 말아야할 행동 중 하나

일본드라마를 보면 "책임을 지다" 라는 말이 참 많이 나옵니다. 고쿠센 같은 드라마만 봐도, 양아치 학생들이 무언가를 하려 할 때마다 제지하려는 교장선생님에게 "제가 책임을 질테니까 믿어달라." 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이 매 회 등장합니다. 회사 동료 이야기, 가족 이야기가 등장하는 드라마에서도 책임이라는 말은 단골 레파토리죠. (한국은 재벌, 삼각 관계 이야기가 단골인 것처럼)
그래서 그런지 일본인들은 어떤 일을 할 때에는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식이 아주 철저하게 자리잡고 있는데요. 좋은 의미로는 책임감이 철저한 국민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책임이 무거워 회피하는 그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드라마 고쿠센의 한 장면  (출처http://feelsold.tistory.com/260?srchid=IIMPfzEb000)


작년에 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평일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하고, 주말에는 학교 랭귀지 센터에서 동네 주민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쳤었죠. 랭귀지 센터는 학교 시설을 이용했지만, 뜻 있는 선생님의 주도로 만들어진 것이라, 자잘한 운영은 가르치는 선생님 몫이었죠. 돈도 직접 걷고, 영수증도 써 드리고... 한 번은 주말에 약속이 있어 수업이 끝나고 빨리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분기가 바뀌고 나서 얼마 안 되었던 때라, 돈을 내신 분들이 많았답니다. 대장 선생님은 수업이 연이어 두 개였던지라 만나려면 20여분은 더 기다려야 했고, 월요일부터 긴 휴가여서 그 날 돈을 전해드리지 않으면 너무 늦어질 것 같아, 앞의 선생님에게 부탁하기로 마음먹었죠. 돈을 전해주고 전해받고..한국에서 일할 때는 비일비재했던 일이었기에 제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어요.

그런데,
그 친분이 두텁던 선생님이 아주 조심스런 반응을 보입니다. 워낙에 단번에 거절하지 않는 일본인들인지라,  "음~~~~~" 하고 생각하는 그 표정과 침묵 속에서 저는 이미 "노우"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돈을 다 들고 저는 학교를 떠났습니다.

그 때는, 일본 온 지도 6개월 남짓,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흥!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나...라고 혼자 괜히 소심해졌었죠.


몇달 전 일본어 변론대회(말하기 대회)에 나갔을 때의 일이었어요.

인토네이션이랑 발음을 교정하기 위해 제가 가르치고 있는 일본인 학생에게 제 원고의 녹음을 의뢰했어요. 녹음기가 있냐고 하니, 있긴 한데 좀 많이 불편하기도 하고 안 될 때도 있다고요. 원고도 미완성이었던데다 다다음 날이 바로 대회였기 때문에 저로서는 시간이 없었죠. 그래서 가방을 뒤적여서 제 엠피쓰리를 주며, 녹음 방법을 설명해 주었답니다.
 
설명이 끝난 후, 엠피쓰리를 건네자, "음~~~" 하고 한참 생각을 하더니, "엠피쓰리를 혹시 가지고 가서 망가뜨릴 수도 있고, 혹시 버튼을 잘못 눌러서 다른 파일들이 지워질 수도 있으니까, 제 걸로 녹음 해볼게요"

라고 하더군요.

제가 웃으면서,

"이거 비싼 엠피쓰리도 아니고, 파일 다~~~ 지워져도 상관없어요. 녹음만 잘 해주세요."
 
그녀는 참 믿음직한 사람이었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망가질 일도, 잃어버릴 일도 없다고 확신했거든요.

역시 상당히 부담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끝내 제 엠피쓰리를 받지 않은 채 돌아갔답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혹시~ 라고 하는 생각과,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무겁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캐나다 연수에서 돌아오던 날, 벤쿠버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각자, 자유롭게 공항을 둘러보며, 쇼핑을 즐기고 있었어요. 제가 찾고 있는 것이 없어서 툴툴거리고 있었는데, 일본 친구가 저쪽에서 봤다며 자기도 사러 가겠다고 합니다. 저는 이미 한 쪽에서도 쇼핑 중이었고, 비행기 승차 시간은 다가오고, 네 것 사오면서 내 것도 사올 수 없겠느냐고 했더니 흔쾌히 오케이를 하더군요.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제 지갑에서 비자카드를 꺼내 들었죠.

그랬더니... "음~~~~~" 하더니 " 네 카드인데 내가 가지고 가서 쓸 수 있나? 사인 문제도 있고" 라고 하더군요.  

"카드는 원래 상관없어. 네가 그냥 사인해도 되고."

"어, 미안한데, 나 이거 받기 싫은데, 그냥 현금으로 주면 안될까"

"환전한 거 다 떨어졌지. "

그 때 옆에 있던 다른 일본인 친구가 거들더군요.

"나도 같이 사러 가는데, 일단 내가 내 카드로 결재를 할게. 나중에 카드값 나오면 엔으로 줘"

그때서야 거절하던 친구도  "그게 좋겠다. " 라고 하더군요.



벤쿠버 공항에서 awesome 을 외치고 있는 일본 친구들
자장면 예찬론자가 된 타카시 군도 있네요.(어제 포스팅)
2010/09/14 - 벤쿠버에서 자장면으로 일본인들을 감동시키다.


그때 제 머릿속에는 일주일 전의 제 모습이 휙 하고 활동사진처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벤쿠버 가는 일정을 짜면서 제가 맡은 일은 집에 가서 훼리(배)를 예약하는 것이었죠. 외국이라 휴대폰도 없었고 집전화를 이용한 예약인지라, 카드가 필요했고, 저는 환전을 많이 해갔던 탓에 카드를 쓰고 싶지 않아했죠. 친구가 자기 카드를 쓱 꺼내더군요. (이 친구는 한국인입니다.) 제가 어떻게 했느냐구요. "결재하고 현금 걷어서 줄게. " 라고 한마디 하고그냥 낼름 받아서 제 지갑속에 넣었죠. ㅋㅋ

부탁을 하는 제 입장에서 보면, 일본인들의 태도나 반응에 섭섭할 때도 있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물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추후 생길 가능성이 있는 피차간의 불편할 일을 피해간다는 점에서 가끔은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일본인의 지나칠 정도의 혹시나 라는 노파심을 여지없이 비웃던 2년 전의 제가 점점 엷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일본인 친구가 있으시다면, 생기셨다면,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는 부탁은 안 하시는 게 좋으실 거예요. 아니, 앞으로는 한국 친구에게도 이런 부탁은 안 하시는 게 서로의 우정을 지키는 지름길일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