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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일본 생활, 나의 이중성이 느껴질 때

대학원에 입학해서 첫 수업을 듣던 날이었어요.
마침, 옆에 같은 한국 유학생 박 상(박 씨는 이상하니까 박상으로 하죠)이 있길래 수업 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이쁘장하게 생긴 한 여학생이 다가와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걸더군요.

"안녕하세요. 저도 한국인이에요, 전 중국에 사는데, 저희 언니는 한국에 있는 대학에서 일해요....."

묻지도 않았는데, 이런저런 한국 이야기를 하길래, 그런가보다. 그럼 잘 지내보자고 했죠. 좀 이상한 건, 전공이 아닌 교양수업이라서, 학생도 10명이 넘었고, 그래서, 교수님이 국적을 조사하셨는데, 한국인은 분명 박 상과 저 딱 2명이었다는 것이죠. 

이쁜 여학생이 가자, 박상이 다짜고짜 화를 냅니다.

" 저런 애들 딱 질색이야. "

" 왜요 왜요?"

"어쩔 때는 중국인이라고 했다가, 어쩔 때는 한국인이라고 했다가..그냥 자기 유리한 쪽에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애들말이에요. 쟤, 같은 연구과예요. 이름이 한국 이름이길래 한국인 유학생회 소개도 할 겸, 한국인이냐고 물어본 적 있거든요. 그런데, 일본어로 자긴 중국인이라고 대답했던 아이랍니다."
(찾아보니, 우리학교 한국인 유학생회에는 속해있지 않더군요.)


그리고, 알게 되었죠.
중국에서 온 한국인,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여기서 말하는 한국인은 모국어를 중국어 혹은 일본어로 하지만  국적은 한국인 사람들을 말합니다.)들이 이러한 이중성 때문에 상당히 욕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요. 그들의 이중성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을 듣고 나니, 얄밉긴 하더라구요.

그런데...............
어느 날, 불현듯 저는 깨닫게 됩니다.

저 또한 저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요.

한국 문화와 일본 문화를 비교하다보면, 장단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한국인으로 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양쪽을 다 이용하게 되고, 이익에 편승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다 보면, 자연스레, 제 입장에서 보이는 장점 앞에 줄을 서게 된다는 것이죠.

한국말 ・ 일본말

번화가에 가면 찌라시 돌리고 설문지, 서명 운동, 모금 운동 많이 하지요. 사람들이 다가와 설명을 시작합니다. 그때 저는 오바스런 한국말로 이렇게 말합니다.

"어, 네? 뭐라구요? 저, 일본말 모르는데...."  그러면, 그들은 조용히 사라집니다.

집에서 고베신문에서 나온 영업사원의 인터폰을 받았을 때, NHK티비 수신료 받으러 나온 사람과 맞닥뜨렸을 때, 오바스런 한국말은 극에 달하죠. 연기도 명품입니다.

한국에 관심있는 일본인을 만났을 때, 한국어 수업 시간에. 그리 유창하지는 않아도 솰라솰롸 떠들기 시작합니다. 어려운 일본말이나 간사이벵(간사이 사투리)까지 일부러 섞어가며 유창한 척을 하지요.
(외국인이 사투리 하면 웃기면서 특이하잖아요. 제가 간사이 사투리 쓰면 재밌어 하시더라구요.)

또, 길을 헤매고 있는 한국인 관광객에게는 친절을 가장한 일본어 뽐내기가 시작됩니다.

한국 응원 ・ 일본 응원

요즘 김연아 문제로 시끄럽던데, 일본에서 아사다마오의 인기는 정말 대답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주변분들에게 물어보면 하나같이 " 전 둘 다 응원해요. 둘 다 참 예쁘고 잘하잖아요. " 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처음에는 거기에다 대고 대놓고 이렇게 말했었죠 " 전, 아마다마오 연기할 때, 넘어져, 넘어져 라고 하는데.."  다,  그냥 웃으시더라구요. 한국 친구들에게 말하죠. 뭐가 진심인지 모르겠다고. 난 정말 둘 다 응원안하는 데, 둘 다 응원한다고 말할 수 있나?
 

어느 알 수 없는 날,
" 저도 아사다마오 선수랑, 김연아 선수 둘 다 응원해요. 참 이쁘잖아요. " 라고 말하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며칠 전 축구볼 때 "일본 꺼져, 져라져라.." 라고 했으면서, 급한 일로, 교수님께 메일보내다가 추신에 귀엽게 덧붙입니다. " 오늘 그리스전이네요, 일본 응원할게요. 파이팅!" ... 


 하두 덜렁대다보니, 일본어로 쓴 메일은 자주 확인차  읽어보는데,
오타나 어설픈 일본어보다도, 작렬하는 저의 오세지(겉치례 인사)에...스스로 허걱 하지요.
                             
한국 집초대 ・ 일본 집초대

아는 일본 사람 집에 초대를 받은 적이 있어요. 일본에 와서 처음이었기 때문에, 두근두근, 기대만땅. 일본 집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어떻게 해놓고 살까. 호기심 아줌마인 저에게는 모든 것이 설레기만 했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집에 가서 한 것은,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다다미방에 앉아 차 마시고 집에 온 게 전부였죠.
일본집은 정말 특이한 게, 몇 번을 가봐도 구조가 파악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방이고 부엌이고 거실... 공간이란 공간은 다 문을 달아놓고 그 문을 닫아버리면 보이지 않는 구조랍니다. 갔다와서 왠지 푸대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을 불러다놓고 말이지..골방에다 앉혀놓고 차 하나 달랑 주고 빠이빠이 라니.


그런데, 저도 친구를 초대해놓고, 청소하기도 귀찮고 해서, 다다미방 하나만 정리해 놓고, 차랑 식사 대접하고 보냈답니다. 편하더라구요. 그 뒤, 자~~~~주 이용합니다. 

 
한국의 내가 쏠게 ・ 일본의 따로 내자 

"연인끼리도 딱딱 자기 것만 계산하는 일본은 정이 없어. 그래도 가까운 사람끼리는 돌아가면서 내는 게 인간적이지 않나" 라며 흉을 봅니다. 식당 앞에서 1엔 짜리까지 계산하려고 머리를 모아 지갑을 들여다보는 그룹을 보면 " 쪼잔하게. 또 시작한다. 쟤네." 라고 비웃기도 하지요.  (우리보다 훨씬 덜할 뿐이지 일본에서도 쏘는 문화는 있어요. 복도 많은지 전 잘 얻어먹고 다니지요.)

가끔, 귀국해서 동생들 만나 지갑을 털리고 나면, 일본의 와리깡 문화 수입해오고 싶어집니다. 일본에서 한국인 친구가 생겨 식사나 차를 하게 되면 피차, 알잖아?  라는 암묵적인 눈빛을 보내며 내 것만 계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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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일상 속의 저의 이중성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만, 저 라는 인간의 인간성이 탄로나는 것같아 여기서 줄이렵니다.

자고로, 사람은 한국처럼 상 떡 벌이지게 차려 먹는 게 최고라고 하면서 김치랑, 메인 메뉴 하나 달랑 차리고 끝내버리는 주부로서의  이중성은 굳이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이 글 바로 밑에 있으니까요. 호호호호


한국의 끈끈한 정과 일본의 쏘~쿨한 면을 적절히 양념하면 참 멋진 인간이 될 것도 같은데, 늘 엉뚱한 데 이용하는 것 같아, 부끄럽네요. 저의 이중생활은 계속 될지도..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