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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일본에서 농담 한 마디에 철없는 아내가 된 나

본 글은 원인 모를 이유로 오른쪽 리스트에서 삭제가 되어 처음 발행한 날에 맞추어 재발행한 글입니다. 뷰온을 눌러주셨던 336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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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인 M 씨가 있답니다. M 씨는 고베에 있는 모 대기업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올해 한국 담당이 되면서 급하게 한국어 선생님을 수소문하다가, 저와 인연이 되어  만난 분이지요. 

1년 안에 비지니스 한국어를 구사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시작한 지 석달이 되어가지만, 어찌나 출장이 잦은지 얼굴 보기도 힘들 정도로 바쁜 하루를 보낸답니다. 그래도 똑똑한 사람이다보니 이해가 빨라서, 가르칠 맛(?)이 나는 저의 수제자이기도 합니다.
(우연히도 같은 회사 직원 2명도 제 학생인데...어찌 이런 인연이....암튼 그 둘의 말에 의하면 M 씨는 저 회사 승진라인에 있는 기대주라고 하네요. 어쩐지, 영어도 잘하고, 척하면 척 알아듣고....)

이 분은 또 저랑 공통점도 많답니다. 나이가 동갑이고, 일 때문에 결혼하자마자, 떨어져 살아야했던 신혼생활도 비슷합니다. 다른 점은, 저는 지금 쿤과 꼭 붙어 산다는 것이고, M 씨는 출장이 많아서 아내 분이 혼자 집을 지킬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지난 달의 일입니다.
M 씨가 3개국 출장을 다녀오게되어, 약 2주만에 수업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힘든 일정 속에서도 한국어 공부를 하겠다고 저녁 식사도 거른 채 온 것을 보니 마음이 안쓰럽더군요. 숨도 돌리고, 두 시간 수업을 하려면 배를 먼저 채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샌드위치라도 좀 드시라고 권했답니다. M 씨가 먹는 동안 10분 정도 잡담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저의 한마디가 그렇게 큰 파장을 불러 불러일으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ㅋㅋ

출장 많이 다니시느라 힘드시겠어요. 아내 되시는 분도 얼마나 힘드실까..에궁. 얼마 전에 저희 남편도 장기 출장을 가야 한다고 하길래,, "가지마, 가려면 나도 데려가든가"라고 했거든요..호호

여기까지 말하자, M 씨의 눈이 좀 동그래지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남편 분은 뭐라고 대답하시던가요?
잘 됐다면서, 가게되면 비행기표 끊어서 가자고 하던데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 같이 놀자면서.. 근데 말이 그렇지, 제가 같이 갈 수 있는 상황이 못 되거든요. 일주일이라면 몰라도, 2~3달 장기 출장을...."

이렇게 말하자, M 씨의 눈이 동그래지다못해 땡그래지더군요. 그리고는

이건 좀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 한국 여자들은 모두 선생님과 비슷한가요?
그게 무슨 말씀인지..
출장을 가지 말라고 하는 거 말이에요. 그리고 출장을 따라 가는 것도 그렇고...

여기서 저는 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답니다. M 씨가 저를 좀 의아한 표정으로 보더군요. 

그건 아닌데...

상황을 설명했지만, M 씨는 이해가 잘 안 된다면서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마쳤답니다.

며칠 후, 다른 일본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는데, M 씨와의 대화내용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의 첫마디부터가 인상적이었는데요.

다다다, 너 정말 한국인같다.
뭐?  그건 또 뭔 소리야. 한국인한테 한국인 같다니..
아니, 남편한테 출장 가라 마라 하는 거 한국 드라마에서 본 것 같거든. 헤어지기 싫어서 회사 가지 말라고 조르고 땡깡부리고....사실, 일본에서는 아내가 남편한테 일하는데 있어 못하게 하는 건 금기사항 같은거야. 절대로 말해서는 안되는 거랄까. 일본드라마에서도 '나 일하는 중이야~'라고 하면 아내는 아무말도 안 하거든..
엉??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거야? 농담으로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래서 M 씨의 눈이 그랬구나..

그랬답니다. 일본에서는 농담으로라도 하지 않는 게 좋고, 설사 부부 사이에 그런 대화를 나누었다 하더라도 남에게는 절대로 말하면 안 되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라네요. 

한국에 비해, 일본은 공과 사에 대한 구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우리나라는 너무 구별이 없어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일본의 방식이 좀 답답한 경우도 있어서...언젠가 자세히 포스팅해보기로 하지요.)   

사실 같은 이야기를 한국에 있는 제 고딩 친구와도 전화로 나눈 적이 있었는데요. 재미있는 건, 그 때 제 친구의 반응은 정말 달랐다는 겁니다.

어머, 다다다. 너 아직 신혼이구나. 난 요즘 남편이 출장 갈 때가 젤로 편해. 자유의 시작이지...ㅋㅋ 아휴..지지배 좋을 때다..

정말 다르지 않습니까? ㅋㅋ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한 우리 부부의 대화가 정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2년을 떨어져 산 부부가 저런 농담도 못한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더군요. 또, 해외에 살다보니, 한국과 다르게 갈 곳 없이 홀로 덩그러니 남을 저를 생각해서, 가능하면 저를 챙기려했던 우리 쿤은 공과 사 구별 못하는 실없는 남편 되었답니다.  

그런 분함이 있어서였을까요? 또, 다른 일본 친구를 만나서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 친구의 반응을 살펴봤습니다. 그랬더니, 친구가 웃으면서 그러네요.

사실 나,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 옛날에 애 없을 때, 홋카이도 출장 가게 됐는데, 남편도 같이 갔었어. 일 끝나고 남편하고 홋카이도 맛집가서 맛있는 거 먹고 온천하고 그랬어. 근데, 정말 일급비밀로 다녀온거야. 지금까지 아무도 몰라 진짜..

일급비밀이라며 신신당부를 하는 친구의 고백에 세상엔 참으로 많은 부부가 있고, 그들의 사생활은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리고, 그 일본 친구와의 이야기를 쿤에게 들려주면서 물어봤습니다..

근데 말야.. 단기 출장 가게 되면, 데리고 간다는 말,, 진짜야?
진짠데.. 왜?
아니,,,><.. 그래도 출장인데..
아~ 회사에서는 일하라고 보내지만, 근무 이후의 시간은 사생활이잖어.. 열심히 일하려면, 열심히 쉬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