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주부들이 무명 한국 연예인의 팬이 되려는 이유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주부들이 나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 있다.

"선생님, 가수 X 알아요? 혹시 들어 보셨어요?"

그들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좋아하는 연예인과 내가 같은 한국인이라는 점에 있다. 한국인의 시각에서 한국인의 입을 통해 듣고 싶은 것이다. 그때마다 당혹스러운 것은 내가 한국 연예인들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바쁘게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관심을 별로 두지 않았었고, 일본에 건너와 살기 시작한 최근 2년 간은 관심을 가지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저런 질문을 받을 때면, 아는 척을 해서 흥을 돋구는 것이 낫다 싶다가도, 안다고 했다가 그 다음 쏟아질 질문에 대답을 못해 들통날 생각을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싶어, 결국 나의 대답은 어중간한 지점에 위치하고 만다.

"어~~~들어보긴 한 것 같은데요. 자세히는 잘 모르겠는데요."

대개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선생님도 모르는구나..휴우.."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의외의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테면, 내 애매모호한 대답이 끝나자 마자,

" 그렇죠, 그렇죠.. 하하하하..역시 선생님도 모를 줄 알았어.." 라며 좋아하는 이들이 그런 부류들이다.

도대체 이 반응은 뭐지? 오히려 당황한 내가 

"제가 그 연예인을 모르는 게 그렇게 좋으세요?" 라고 되물으면....그렇단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냐고 하니 돌아오는 대답이 정말 뜻밖이었다.

" 인기가 없으니까 우선 독점할 수 있어요. 사진 찍고, 같이 밥먹고 차마시고, 허그하고 사인받고..
언젠가 대스타가 되면 저는 무명시절부터 지켜봐온 특별한 팬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죠. 그걸 기대하면서 열심히 응원을 하는 거예요."

물론 그들이 무명스타만 바라보고 팬이 되는 것은 아니다. 최소 한 명 이상은 좋아하는 유명 한류 스타가 있다. 유명 스타가 일본을 방문해 팬미팅회(참가비 10만원이 넘는다)를 하면 꼬박꼬박 참가를 하고, 때로는 그 스타의 흔적을 찾아 한국을 방문하기도 한다. 팬미팅회에 다녀온 뒤에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목소리를 들어서 좋았지만, 통역하는 사람을 통해 한다리 건너 듣는 것이 너무 속상했단다. 스타가 한 말을 그대로 통역하지 않고 간략화했다거나 다르게 통역했다고 말하는, 한국어를 좀 할 줄 아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도 그들의 마음을 아쉽게만 한다. 그들은 내게 말한다. 스타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사소한 농담까지도)를 그대로 알아듣고 느끼고 싶다고...그래서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거라고..

팬미팅에 참가하기 전에 내게 의뢰하려고 가지고 오는 일본어 문구들을 보면 그들의 마음이 더욱 잘 느껴진다.

" Y 씨, 죽을만큼 보고 싶었어요. 영원히 사랑해요....." 

평소에 남편에게는 하지도 않는 닭살 멘트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유명한 한류 스타의 팬미팅이나, 콘서트, 드라마 촬영지, 공항 등을 방문해서 응원을 하면서 수많은 팬들 중 한 명일 뿐인 자신의 존재감, 그래서 좀 더 다가가지 못하는 그 멀찍한 거리감에 공허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 빈 공간을 채워주고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일본진출을 노리는 무명의 한국 연예인인 것이다.

그들이 내게 하는 질문 중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질문도 있다. (바로 지난 주에 받은 질문을 올려본다.)

"선생님, 제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제가 탈렌트 Z 씨 좋아하는 건 아시죠? 얼마 전, 한국 일산 촬영지까지 만나러 갔다왔어요. 주변에 아무도 없었고 제가 좋아하는 Z 씨가 있길래 악수를 청하려고 손을 내밀었어요. 그런데, 외면하고 가버렸어요.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일본 공항에서 만났을 때는 흔쾌히 제 악수를 받아줬었거든요? 뭐가 잘못된 거죠?"

그 스타가 아닌 이상, 나도 알 길이 없는 질문이기에 대답하기도 참 곤란하다.

"촬영 준비 중이라 그랬던 게 아닐까요? 한국어 열심히 공부하셔서 나중에 꼭 직접 물어보세요."
 
지금껏,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의 스타를 좋아하는 많은 일본인들을 만나오면서 내가 느낀 공통점이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딱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들이 한류 스타를 좋아하는 이유가 단순히 TV에서 비춰지는 멋진 외견과 재능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좋아하는 동기가 될 뿐이다.) 그보다는 평소 모습에서 느껴지는 인간성, 팬들을 대하는 매너를 보고 반해 좋아하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또, 인기, 외모와 상관없이 인간성이라는 측면에서 일본팬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배우도 있다. 한국에서는 조연에 불과한 배우지만, 일본인들과 사적인 교류를 가지며 친구가 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그래서일까?
그들이 무명 스타의 팬이 되려는 이유가 대스타에게 받은 일종의 상처와 소외감으로부터 생긴 건 아닌가 괜한 걱정을 해본다. 

어찌되었든, 그들의 다소 계산적인 애정이, 순수하고 귀엽게 보이는 건 비단 나 뿐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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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다음 예고편인데..
일본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해 한류 스타의 반열에 올랐던 이들..이들의 비신사적이고 이중적인 면에 실망한 일본인들의 외면으로 추락한 몇몇 스타를 알고 있다. 어떻게 아느냐하면... 우리 동네에는 한류 스타들을 좌지우지 할 만큼의 파워(놀라울 정도였다)를 가진  한류문화 팬클럽 회장님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집을 방문해서 보고 들으며 느낀 것에 대해서도 조만간 포스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