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 부부가 사는법

블로그를 다시 쓰게 한 남편의 한 마디

다다다 인사 드립니다.

블로그를 5년 만에 다시 쓰기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었네요.

생각만큼 그렇게 열심히 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쯤에서 한번 쯤 돌아보고 싶어서 손이 가는 대로 써 보려고 합니다. 동시에 이번 포스팅은 우리 쿤이 몇 번이나 저에게 물었던 질문에 대답하고자 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쿤 듣고 있어? 아니 읽고 있어? ㅋ)

 

2월 초 갑자기 제가 블로그에 글을 쓰자 쿤이 그러더군요.

 

" 어..다다다...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별로 쓰고 싶어하지 않아 했잖아? "

 

" 응...그냥...그냥..."

 

사실, 블로그 개시글을 쓰면서 반갑게 댓글을 남겨주신 분도 계시고, 무책임했다고 화를 내신 분도 계셨는데요. 5년 전 너무나 갑자기 블로그를 중단했으니까요. 대부분, 아이를 가져서 육아에 지쳐서 라고 많이들 생각하셨던 것 같은데 사실은 좀 더 복잡한 이유가 있었답니다. 그 이유를 말하려고 이 글을 쓰려는 건 아니에요. 그걸 가볍게 블로그에 쓸 정도의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면 제가 블로그를 그만두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어찌되었든 임신과 육아가 블로그를 그만 둔 이유는 아니라는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저는 블로그를 그만두고 거의 1년 후에 우리 콩이를 가졌으니까요.

 

저는 여러가지로 많이 지쳐 있었고 블로그로 인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블로그를 쓸 의지가 거의 꺾이다 못해 뿌리 채 뽑혀 버린 상태였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열혈 유학생 출신 쿤이야 파란만장한 삶을 겪었으니 그 정도 시련쯤이야..그게 뭐 라고 할 때, 온실 속의 화초까지는 아니더라도 너무나 평범하다 못해 소박한 삶을 살았던 다다다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고 그 마음의 상처가 시나브로 부풀더니 어느 날 터져 버린 것이지요. 언젠간 아물거야. 언젠간 괜찮을 거야 라고 저를 다독이며 그렇게 시간이 갔고... 또 지나갔고... 흘러가 버렸습니다. 어느 새 엄마가 되었고, 육아로 바빠지게 되면서 상처는 없어졌지만 동시에 블로그 라는 존재도 저에게 없어지더군요. 콩이와 알콩달콩 행복한 나날들이었지만, 블로그를 떠올리면 그냥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 저 속에 꾹꾹 눌러 담은 상처 투성이 그런 것이었어요.

 

가끔 쿤이 저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답니다.

 

" 다다다...블로그에 이런 댓글을 누가 남겼는데...다다다에게 하는 말인 것 같은데 대답 정도는 해 줘야 되지 않을까...내가 대신 대답할 수는 없는 것이기도 하고.."

 

" 글쎄...음..........."

 

부부 공동의 블로그였지만, 쿤은 포스팅만 할 뿐, 블로그 친구나 그 밖의 관리는 거의 제가 담당하고 있었기에 제가 블로그에 손을 놓은 상태에서 쿤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쿤이 저에게 블로그를 쓰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블로그에 남겨진 이야기나 친구들, 이웃들, 소식들은 전해 주었답니다. 그때마다 저는 침묵으로 대답하거나 회피했어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답니다.

 

 

그런데 바로 올해 초 1월

 

 

 저의 이런 무기력한 의지와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리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소개하기에는 너무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이지만 저에게는 큰 반향이 되었답니다.

 

하루는 쿤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러더군요.

 

" 다다다...내가 어제 잠을 자려고 하는데 진짜 잠이 안 오는 거야..."

 

사실, 쿤은 ' 나 잔다' 그러고 3초 안에 잠드는 잠꾸러기입니다. 그 뿐인가요?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도 저녁에 나 언제 잤냐는 듯 드르렁 잠이 드는 잠보지요. 작은 걱정이 생기면 세상의 근심 걱정 다 짋어진 사람처럼 잠 못드는 다다다와 달리, 쿤은 '일단 자고 나서 생각해 본다'는 긍정 마인드로 언제든 쿨쿨 잘 수 있는 세상에서 제가 제일 부러워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쿤이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잠이 안 오더랍니다. 

그러더니 이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 뭘 해도 잠이 안 오고 어떻게 하지..하다가 우연히 우리 블로그에 들어간 거야. 처음에는 그냥 하나 둘 지난 포스팅 읽기 시작했어. 근데, 진짜 재밌더라. 거짓말 안하고 300개 넘는 글을 다 본 거 알아? 나는 우리 블로그 글이 그렇게 재미있는 지 처음 알았어..."

 

 

재.미.있.다.

 

남편의 저 한 마디가 계속 제 마음에 남더군요. 생각해 보면, 저는 블로그를 열심히 쓰던 5년 전에도 지난 글은 거의 읽지 않았답니다. 그냥 앞만 보고 달리면서 새로운 글을 써 나 갔지요. 쿤의 말 때문이었을까요..그날따라 호기심이 생겼어요. 나는 5년 전 어떤 글을 썼을까..?

 

읽어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5년 만에 처음 저는 블로그를 열고 몇 개의 글을 읽어 보았답니다.

근데, 이렇게 저 스스로 말하기에도 좀 쑥스럽지만... 쿤의 말은 사실이었어요. 되게 재미있는 글이 많더군요. 

 

블로그 글을 읽는 동안 미소짓다가 웃다가 하면서 행복했어요. 그리고 갑자기 속이 상하더군요. 내 잃어버린 5년 간의 기록들 말이에요. 콩이와 함께한 그 소중한 일본 생활을 저는 남기지 못했으니까요. (하나씩 기억을 되살려 쓰고는 있습니다. 제 글이 몇년 전, 이런 식으로 시작되곤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저는 올해 2월 초에 다시 블로그를 시작했답니다. 

저는 일본통도 아니고 일본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에요. 오죽하면 제 별명이 초보 다다다겠어요. 같은 한국에 살아도 다 다른 삶을 살고 다른 관점에서 다른 것을 느끼듯이...같이 일본에 살아도 일본을 겪어 봤어도 다 느낀 점이 다르지요.제 블로그는 딱 그만큼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쿤의 포스팅은 좀 다르지만요.)

 

저는 앞으로도 그냥 제가 보고 느끼는 글을 쓰고 싶어요. 그리고 이런 기록들이 먼 훗날 저의 좋은 추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우리 콩이도 같이 읽고 싶어요. 엄마가 이렇게 살아 왔단다라고 보여줄 거예요.

 

우리 잠꾸러기 쿤이 어느 날 또 잠이 안 와 블로그를 찾았을 때 밤새도록 읽을 수 있도록 우리의 행복한 기록도 많이 남기려고 합니다.  

 

쿤...이제 당신의 질문에 대답이 되었나요?  

 

 

추신!!

우리 쿤은 결혼 때 '여행만큼은 실컷 하게 해 줄게'라는 약속 지금도 열심히 지키고 있습니다. 이번 주 주말부터 여기는 황금연휴에 들어갑니다. 눈치 채셨나요? 잘 갔다 올게요. 좀 긴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또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