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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일본판 도를 아십니까를 아십니까?

몇년 전 모처럼 쉬는 날, 콩이를 데리고 인근 마트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한 여성(40대 초반)이 다가와 말을 건다. 

 

" 어머니,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인근에 이렇게 어린 아이 키우는 엄마들 모임이 있는데 참가해 보지 않으실래요? "

 

" 아~죄송해요. 제가 일을 해서요. "

 

" 아..네..알겠습니다."

 

총총히 발길을 돌린 그녀.

그날 저녁, 장보다 빠뜨린 물건이 있어 다시 들른 마트에서 같은 여성이 똑같이 내게 말을 거는 것이 아닌가. 내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 했다. 그로부터도 많은 다른 여성 혹은 여성들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고 육아 모임에 참가 권유를 했다. 사실, 처음 이런 일을 겪었을 때도, 본능적으로 뭔가 경계심이 생기고 선뜻 모임에 나가고 싶다는 기분은 안 들었지만, 반복적으로 겪으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우리 한국어 학생들에게 말하니, 대번에 나온다.

 

" 선생님, 그거 종교 모임이에요. 친근하게 아이들 모임으로 시작하는 듯 보이지만 본색은 종교 권유를 하는 것이죠. 육아에 지치고 외로운 여성들이 간혹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선생님도 조심하세요. "

 

한국에 살 때, 종로 광화문에서 자주 겪던 일이 떠올랐다.

 

" 도를 아십니까? "

 

혹은 

 

" 뭔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요. 잠시 시간 내 주시면 좀 더 깊이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그뿐인가?

결혼 전 한국 친정에 살 때, 집에서 혼자 뒹굴거리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 누구세요? "

 

" 봄이 엄마예요. "

 

봄이 엄마가 도대체 누구지? 나는 모르지만 혹시 엄마가 아시는 분인가 싶어서 냉큼 현관 문을 열자, 아줌마와 아저씨 한명이 현관 안 쪽으로 들어와 종교 권유를 시작했다. 종교를 떠나서 현관문을 열게 하려고 저런 방식까지 쓰는 것에 몹시 불괘감을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서너 달 전 한국에 갔을 때의 일이다.

전철에서 잠든 콩이를 안고 환승역으로 이동하고 있을 때 다가온 한 분.

힘들어 보인다며 국구 사양하는 내 짐가방을 뺏어서(?) 들어주셨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환승하고 나서부터 종교 권유가 시작되었다. 친절하게 해주신 분이라 매몰차게 할수도 없었고, 콩이를 안고 있어서 도망갈 수도 없어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묵묵히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일본에서는 종교 권유가 그렇게 적극적이지는 않다.

지하철 역 앞에 가끔 종교 활동으로 나오는 몇 분의 중년의 여성들을 본 적이 있는데, 전단지를 손에 들고 서 있는 것이 전부이다. 나눠 주려고 손을 내밀긴 하지만 그 손길도 상당히 소극적이다. 

 

한국에서처럼 집을 방문하기도 한다. (우리 집에도 거의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오는 것 같다.)

일단 초인종을 누르고 대꾸가 없으면 목례를 하고는 사라진다. 내가 조금 깜짝 놀랐던 것은 이들이 내 또래의 주부들이 많고, 땡볕에 유모차나 아이들을 대동하고 온다는 것이다. 한국처럼 대놓고 ' 나 누구 엄마요' 라고는 하지 않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옴으로써 친근함을 표시하는 것이다. 대게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무시를 한다. 가장 곤란할 때는 콩이가 같이 있을 때이다. 상황을 모르는 콩이는 초인종 소리를 무시하는 다다다나 쿤을 재촉하곤 한다. 무시하라는 쿤의 말에 신경이 쓰인 콩이가 거실 커튼을 젖혀 손을 흔들고 인터폰 앞에 서 있는 여성과 눈이 마주쳐, 인터폰에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인터폰으로 대답을 하면 별다른 권유 없이 이렇게 말하고 사라진다.

 

" 한번 쯤 읽어보시면 좋을 내용이 있어서 그런데 우편함에 넣어 놓고 가도 될까요? "

 

그러라고 하면 넣어놓고 조용히 사라진다. 어떤 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종교 권유 전단지를 허락없이 넣으면 안되는 지 꼭 허락을 받고 넣는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마트에서 내가 겪었던 것처럼 육아 모임 해 보지 않겠냐고 말을 거는 경우도 있다. 지금 바쁘다거나 일을 한다거나 대충 둘러대면 바로 유유히 사라진다. 

 

한국에서처럼 다짜고짜 현관 안으로 쳐들어오거나 하지는 않으니 내가 무시하면 그만인 정도랄까. 그런점에서는 한국보다는 편하고 낫다 싶었다.

 

 

그런데~!!!!

 

아까 글 서두에 썼던 저 여성. 같은 날 두 번이나 내게 종교 권유를 했던 저 여성.

 

일 끝나고 돌아와 부재중 인터폰 기록이 있길래 누군가 하고 녹화된 화면을 열자.

 

저 여성이 '뙇' 찍혀 있는 게 아닌가. (마트도 모자라 집까지?? 그녀는 나도 우리집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를 기억했다.) 

 

조용한 섬뜩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