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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일본 우체국에 가서 눈총받은 사연

제작년 쯤의 일로 기억한다.

 

급히 귀국하는 한국 가족의 부탁으로 대신 택배를 배달하게 된 다다다. 제법 무게가 나가는 가전 제품으로 유럽에 있는 친구에게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박스에 담겨 가볍게 테이핑까지 되어 있어 그냥 우체국 가서 보내기만 하면 됐다.

 

택배를 보내기로 되어 있던 날. 나는 예상보다 일이 늦게 끝났고, 보육원에서 콩이를 데려온 다음에 우체국 가려던 애초의 계획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우리집 근처에는 제법 큰 우체국이 있다. 시 중앙 우체국은 아니지만 이쪽 지역 작은 우체국을 통괄하는 우체국 본부이다. 바쁜 와중에 한국 가족의 부탁을 받아들인 것도 이렇게 큰 우체국이 5분 거리에 있기 때문이었다.

 

콩이를 데리러 가는 걸 잠시 미루고 간 우체국에는 그날 따라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사람들이 조금 많았다. 접수를 하고 무게를 확인하고 항공편으로 박스를 부치면서 직원에게 가전 제품이니까 망가지지 않게 잘 보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내 물건이 아니라서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박스를 맡기고 가려던 찰라..아무리 봐도 마음이 안 놓이는 것이었다. 망설이던 끝에 더 테이프로 보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맡기려던 박스를 돌려 받아 입구 쪽으로 이동했다.

 

내가 망설였던 이유는 콩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콩이는 당시 만 2살이어서 시간의 개념은 몰랐지만, 매일 매일 반복되는 보육원 스케줄을 기준으로 엄마가 언제쯤 오는 지는 흐름으로 알고 있었다. 늘 같은 시간에 데리러 간다는 걸 알고 있던 콩이는 조금 늦어지면 불안해하거나 슬퍼하거나 했기에 나의 마음은 초조했고 급해지기만 했다.

 

박스를 포장할 수 있는 곳은 우체국 입구 오른쪽에, 우체국 창구를 등지고 있었다. 나는 돌려받은박스를 들고 뛰어 가서 테이프를 쭉쭉 찢으며 여기 저기 테이핑을 시작했다. 우체국 마감 시간에 대한 압박과 콩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는 조바심이 나를 빠르게 움직이게 했다.

 

한 5분쯤 지났을까?? 

 

다 마치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쉰 나는 박스를 들고 뒤를 돌. 았. 는. 데....

 

이게 웬일인가.

 

우체국 직원을 비롯해 볼 일을 보러 왔던 모든 일본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순간 뒤를 돌아 본 나에 놀라 각자 딴청을 부리는 게 아닌가...그냥 쳐다본다고 하기에는 너무 차갑고 불편한 시선이었다.

 

좀 마음이 쓰였지만 콩이를 데리러 가야한다는 마음이 컸기에 직원에게 박스를 넘겨주고 밖으로 나갔다. 그 짧은 동선에도 많은 시선들이 나를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좀 시끄러워서 그랬나보다라고 예상은 하면서도 설마..설마..했다.

 

며칠 뒤, 나는 우리 학생들에게 내가 겪은 일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학생들이 웃으면서 그런다.

 

" 사실 일본에서는 택배를 보낼 때, 거의 집에서 다 테이핑 해서 가는 경우가 많아요좀 테이핑이 부족했을 때 보강 차원 정도로만 가볍게 우체국 테이프를 쓰지요. 선생님은 보강이라고는 하셨지만 거의 새로 테이핑 하는 수준으로 우체국에서 택배를 하셨던 것 같아요. 시간이 촉박해서 테이프를 뜯는 소리가 5분 정도 우체국 안을 울렸던 것 같은데, 일본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에요아마 치열하게 테이핑 하는 모습에 모두가 놀란 것 같은데요" 라고요.

 

사실, 나는 한국에 살 때 집에서 테이핑을 해서 부치기만 한 적도 있지만, 아예 물건을 들고 가서 우체국에서 테이핑을 한 적도 있었다. (이거 한국에서는 되지 않나요?) 당연히 테이프 찢는 소리는 컸고 테이핑 시간도 꽤 걸렸던 것 같다. 나 뿐만 아니라 주변에는 나와 같이 테이핑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로 인해 눈총을 받은 적도 내가 눈총을 보낸 적도 없었다. 왜냐면 거기는 우체국이니까. 우체국은 그렇게 해도 되는 곳이니까...

 

그런데 일본은 달랐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한달에 몇 번씩 우체국에 가지만,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치열한 테이핑의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우리 일본 학생이 말해준 것처럼, 집에서 포장해 오거나 조금 부족하면 우체국에서 조용히 조심스럽게 테이핑을 하는 정도인가 보다.

 

나의 치열한 테이핑의 모습은 일본에서는 당연한, 그래야만 하는 정적과 고요함의 규칙을 깼고, 일본에서는 낯선 그런 나를 보고 그들은 눈으로 답해 준 것이었다.

 

일본에 익숙해져가는 하루 하루지만,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일지라도' 일본의 고즈넉함을 깨는 데는 상당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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