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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일본식 한국어 썼다가 낭패본 친구 이야기

다다다의 한국어 학생이자 친구인 카이바라 씨(50대).

한국어를 배운 지 꽤 된 그녀는 한국 문화와 한국 음식을 완전 사랑해서 일년에 몇 번씩 한국에 가곤 한다. 그런 카이바라 씨가 어느 날, 손에 붕대를 감고 나타났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스쿠터를 타고 가다가 넘어졌다고 했다. 평소에 차로 공부를 하러 왔던 그녀였기에 갑자기 왜 오토바이를 탔냐고 했더니, 차가 막히거나 차로 가기 곤란할 때는 종종 스쿠터를 탔다고 했다. 그것도 10년 이상. 그 날은 길이 미끄럽지도, 비가 오지도 않았는데 멀정한 길에서 그냥 넘어져서, 10년 무사고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그녀는 바로 다음 주에 남편하고 한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가야할 지 말아야할 지 모르겠다며 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나는 오히려 기분 전환를 위해서 가는 게 좋지 않냐고 조언했고 그녀는 '역시 그렇죠?' 라며 한국에 잘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3박 4일 동안 한국에 다녀 온 그녀가 수업에 와서 한국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이건 제가 지금도 좀 이해가 안 돼서 선생님에게 꼭 확인하고 싶었던 건데요서울에 가서 남편하고 찜질방에 갔어요목욕하고 탈의실에서 드라이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분이 다가 와서 손이 많이 불편해 보인다며, 드라이를 직접 해 주시겠다고 하시는 거예요그래서 저는 너무 고마워서, 감사한 마음으로 도움을 받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 분이 그냥 쌩~가버리시는 거예요.. 너무 민망해서 할 말이 없었어요. 지금도 뭐가 잘못 됐는 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가 한 실수는 바로 이 표현이었다.

한국사람 : 제가 머리 드라이 해 드릴까요?

카이바라 : 괜찮아요?

카이바라 씨는 문장 끝도 확실히 끌어올렸다며, 2-3번 재연까지 했지만, 저 상황에서의 "괜찮아요"는 문맥상 거절의 표현으로 들렸을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럼, 카이바라 씨는 저 상황에서 왜 "괜찮아요?"라는 말을 했을까? 그건 일본어식 표현을 했기 때문이었다.

한국 사람  :  ドライしてあげましょうか。     

                   드라이 해 드릴까요?

카이 바라  :  いいですか。                      

                   그래도 괜찮겠어요? 


일본 사람들은 누군가가 호의를 베풀었을 때, 상대방이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거나, 양보 받았을 때, 그냥 뭔가 가볍게 받았을 때도,  '그래도 괜찮겠냐'고 물어보는 습관이 있다.

다 다 다  : 이거 한국에서 가져온 깻잎이에요. 좀 드셔 보세요.

일본사람 : 그래도 괜찮겠어요?


다 다 다  : 이거 하나 드실래요?

일본사람 : 그래도 괜찮겠어요?

일본 사람들의 이런 표현은 고마운 마음에 앞서 미안한 마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에도 이런 표현이 있기 때문에 '그게 뭐가?' 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에서는 조금 다른 표현을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가볍게는

어 진짜요? 와~나 이거 완전 좋아하는데...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거절할 목적이 아니라면 흔쾌히 받아들이고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게 일반적이고...좀 거리감 있는 사이에 좀 염치를 따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머.....이런 거 받아도 되나 몰라요. 미안해서..어떡해..

정도가 아닐까 싶다.

물론 한국에서도 제한된 상황에서 "그래도 괜찮겠어요?" 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어처럼 이 표현만 달랑, 그것도 첫 마디에 쓰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어떠한 상황과 관계를 막론하고 가장 처음 나오는 말이, 나와야 될 말이 바로 "그래도 괜찮겠어요? "이다.

이러한 표현을 즐겨 쓰는 일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어떤 호의를 덥석 받아들이는 것은 약간 뻔뻔하게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 아무리 소소하고 작은 것일지라도 그래도 괜찮겠냐고 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예의 바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표현적 차이로 인해 카이바라 씨는 일본식으로 대답했다가 낭패를 본 경우였다. 그래서, "괜찮아요? " 가 아닌 "그래도 괜찮겠어요?" 라고 했다면 별 문제없이 드라이를 해 주셨을 거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일본어의 'いいですか'라는 표현은 사전적 의미로 '좋아요?',' 괜찮아요?' ,'좋아해요?' 정도로 해석되는데, 이게 끝이 아니라 '그래도 되겠냐' 는 뜻도 갖고 있다고 했더니,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주먹을 불끈 내 보였다. 그리고, 이제야 이유를 알아서 속이 시원해 졌다며, 속상한 마음도 없어졌고 오해도 풀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나는 가끔 우리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한국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어떤 호의를 베풀었을 때 그냥 쿨하게 '감사합니다' 라고 해도 돼요. 어떻게 보면 그런 모습들이 한국 사람들에게는 조금 더 친근하고 기분 좋은 일일 수도 있어요. "

하라고 해도 절대 못할 우리 학생들임을 알기에

" 정 힘드시면 그냥 정중히 한번은 그래도 되겠냐고 물어보세요.  단~!!  한번만 하시면 충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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