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만난 일본인의 한마디에 기분이 상한 한국인 친구
유럽에서 유학을 하는 친구가 메신저로 말을 걸어 왔다. 여자들 특유의 수다가 시작된 것이다.
친구는 유럽의 한 대학에서 오랫동안 유일한 동양인 재학생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일본 유학생이 새롭게 들어왔다고 한다. 같은 동양인이었고, 한국과 가까운 일본인이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기분이 상하는 일이 생겼다고 했다.
그 일본인 유학생은 일본에서 같은 전공으로 학부를 마친 상태였다. 그래서 편입이 가능했지만, 1학년으로 입학을 해야만 전액 학비 면제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친구가 다닌 학부는 일반 학부보다도 2년이나 더 긴 학과였고, 나이가 30이 다 된 일본인에게 돈이 들더라도 빨리 졸업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자 일본인은 돈이 없다고 했다. 친구는 학비가 생각보다 비싸지 않으니까, 부모님에게 도움을 청해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했다. 그러자, 일본인 유학생은 버럭 화를 내며,
그래~! 너네 한국 애들은 부모한테 돈 받아서 공부하는 게 흔히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다 큰 성인이 부모에게 손벌리고 용돈받는 것은 안하거든.
친구 역시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다시 6년 학부 과정을 힘들게 이수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충고를 한답시고 말을 꺼냈다가 찬물을 뒤집어 쓴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부모에게 의지를 안한다.
일본에서는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하면,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용돈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회인이 되면, 그 독립성은 더욱 뚜렷해진다. 해외 연수를 하거나 결혼을 하게 되어도 본인의 힘으로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집이 부자거나 가난하거나의 문제와는 관계가 없다.
모 중소기업 사장 아들인 일본인 A 씨가 이런 말을 했다.
아버지 회사의 한국 거래처 사장 아들이 일본에서 유학을 한 적이 있는데, 부모님에게 고스란히 돈을 다 받는다고 하더군요. 공부에만 집중하기 위해서 도움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걸 자랑처럼 말하는 것을 보고 좀 놀랐습니다. 결혼할 때는 집도 받고 결혼 비용도 다 부모님이 내셨다는데, 일본에서는 다 큰 성인이 부모에게 도움을 받는 건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일본인 A 씨는 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을 생각으로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결혼도 했고, 틈틈이 시간을 내서 한국어도 배우고 있지만, 아버지에게서 받는 돈은 월급뿐이라고 했다.
뉴욕에서 어학 연수를 하고 돌아온 내 한국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내 룸메이트가 일본 애였는데, 뉴욕에 오기 전에 일본 백화점에서 신발 파는 알바를 했대.. 그래서, 알바해서 돈 버느라 고생 많이 했나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꽤 잘 사는 집 딸이었더라고.. 곱게 큰 애가 이런 저런 알바해서 뉴욕에 온 거 보고 정말 놀랐다..
내 한국 친구들도 알바나 직장 생활을 통해 돈을 모아 해외 연수를 다녀온 케이스는 많이 있다. 그렇지만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은 경우가 더 많았다. 그에 비해 일본 친구들은 자력으로 해외 연수를 가는 경우가 많다. 온전히 다 부모의 도움을 받은 경우는 내게 한국어를 배우는 대기업 사장의 딸 S 씨가 유일했다.
한국과 일본은 상황이 다르다
한국은 일본만큼 일할 곳이 충분하지가 않다. 게다가, 받을 수 있는 시급의 수준도 비교가 안된다.
[관련 포스팅 [일본생활/일본문화/쿤이 보는 일본] - 한국과 다른 일본 최저임금의 실상]
그리고, 한국 남자들은 군대까지 다녀와야하고, 사회인이 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이렇게 주어진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부모에게 의존하는 면이 있다고 해서 마냥 비난할 수도 없는 문제인 것이다.
[일본생활/일본문화/쿤이 보는 일본] - 일본에서 1시간 알바비로 할 수 있는 것들
쿤의 포스팅에 달린 댓글이다. 미국 유학생활을 통해 많은 일본 친구를 가진 유지영 씨의 댓글은 나 또한 매우 익숙한 이야기이다.
환경이 달라도 생각해봐야 할 것은 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 많은 것을 스스로 일구어 인생을 꾸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 부터 한국인들은 공부에서 결혼에 이르기까지 부모님에게 의존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친구 신랑은 결혼할 때 부모님께서 집 구하라고 주신 1억을 놓고 " 우리 부모님이 이러실 줄 몰랐다. 이렇게 조금 밖에 안 해주실 줄 몰랐다" 며 원망을 하더란다. 또, 지난 직장에서 함께 근무하던 음악 선생님은 음대 다니는 딸이 어느 날, " 왜 아빠는 능력이 그것 밖에 안되어서 나는 다른 애들처럼 해외 유학도 못가냐?" 며 울며불며 원망하더라며 한숨을 쉬셨다.
일본의 부모와 비교하면 한국의 부모는 자식을 위해 참 많은 것을 해준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도 그런 부모를 향해야 할 죄송함과 감사함은 왜 점점 더 큰 욕심으로 바뀌고 있는 걸까?
좋은 환경에서 자라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건 누구나 가질 수 없는 행운으로 감사해야 할 마음에서 끝나야지, 자랑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부모에게 돈 받는 것을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하는 일부 한국인들을 보고 내 일본 친구들은 놀랍다는 말을 한다. ) 혹, 넉넉한 환경이 아니라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해도 원망할 일도 창피할 일도 남과 비교할 일도 아니다. 더욱더 노력해서 인생을 꾸려나가면 되는 것이다. 후자가 인생의 당연한 수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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