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 부부가 사는법

대청소하다가 발견한 17년전 러브레터

지난 토욜, 일욜에는 모처럼의 주말을 반납하고, 다다다의 진두지휘하에 봄맞이 대청소를 했습니다. 간만에 하는 대청소였던지라, 무지 힘들더군요.
휴~~
겨울내내 묵혀두었던 옷장 속의 봄/여름 옷을 꺼내고, 겨울 옷을 집어 넣는 것으로 끝을 내려 했지만, 일본집 특유의 곰팡이를 발견하고는 구석구석 청소를 했답니다.

기분전환도 할 겸 가구도 재배치하고, 오래되서 색이 바랬거나 작아서 못 입는 옷도 정리하고, 안 보는 책, 프린트, 냉장고 청소에 빨래까지..... 묵은 때를 벗겨내니 마음이 홀가분하네요.
청소를 하느라 집안의 물건들을 다~~ 끄집어 내니, 오래된 추억들이 여기저기서 마구 쏟아져 나왔습니다. 유학 때의 추억이 담긴 사진, 각종 지방신문이나 팜플랫에 실려있는 유학 때 활동들이 새롭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다다다가 뭔가를 발견했습니다.(다다다 : 이거 머야~~?)
가만히 보니 17년 전에 모르는 사람에게 받았던 쿤의 인생 첫 러브레터였습니다.(쿤 : 허걱..!! 그게 왜.. 거기..에 있을까~~? ^^;;;)

                                                                             쿤이 받은 첫 러브레터

 

 

                                                                     편지 뒷면 구석에 있는 받은 날짜

 

다다다 : 이 편지 누가 준거야? (이실직고하렸다..!!)
   쿤     : 글쎄.. 이름만 알고, 성은 몰라~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나이다~ 제~발 목숨만...)
다다다 : 그럼 누군지도 모른다는 거야?
   쿤     : 응.. 우연치 않게 한번 이야기 한 적은 있는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 이제는 얼굴도 기억이 안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상 취업을 했던 쿤은 야간에 학원을 다니면서 대학진학을 노렸습니다. 
그리고, 94년 6월 21일에 학원수업이 끝난 교실에서, 어떤 학생이 부탁받은 것이라며 편지를 주고 가 버렸습니다. 사람 얼굴을 잘 기억 못하는 쿤은 그 편지를 준 사람조차 기억을 못해서, 편지의 주인공이 누군지도 몰랐답니다.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아는 친구의 도움으로 편지의 주인공을 찾을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 날은 학원 수업이 밤 10시가 넘어서 끝났던지라, 이름만 물어보고 헤어졌는데, 편지의 주인공은 이후 학원에 나타나질 않았습니다.(그 주인공은 편지를 전하고 3개월 동안 쿤의 주변에 앉아서 공부를 한 것 같은데, 둔한 쿤은 전혀 몰랐습니다.) 답장을 기대한다고는 했지만, 누군지를 몰라서 답장을 못 썼고, 누군지 알고나서는 만날 수 없어서 답장을 못 전했더랬죠.
뭔가가 확실히 매듭지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편지를 가지고 있게 되었고, 화일 사이에서 17년을 보내게 되었네요.. 다다다와 주고 받은 편지는 곤~히 잘 보관하고 있는데, 저 편지는 17년 동안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이 어쩌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다다다의 따가운 눈초리에 뜨끔!!  죽여주소서~~!!)

봄맞이 대청소를 빙자하여 간만에 대대적인 청소를 하다가 저 편지가 툭~하고 튀어나와서 다다다 앞에서 무지 쫄았습니다(!_._!). 하지만, 덕분에 17년 전의 힘들었던 당시의 저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었고, 그로부터 17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도 금방 흘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랍니다.
사람의 인생을 70년으로 잡는다면, 이미 전환점을 돌아버린 시점이지만, 남은 인생도 정말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저에게 편지를 주셨던 저 분도 어디선가 열심히 살고 계시리라 믿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