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 부부가 사는법

지진발생 2주 뒤에 느낀 뒤늦은 섬뜩함

2011년 3월 25일 새벽 1시가 다 되어갑니다.(늘 밤에만 글을 쓰네요.) 일본에서 지진이 발생하고 어느덧 2주가 지났습니다.
사태가 안정되어 가는 것인지, 아니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상황을 숨기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쿤(글쓴이)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3월 24일 오후 6시가 땡 침과 동시에 퇴근을 하고, 오는 길에 과일을 사서 집에 왔습니다. 집에 오니 7시가 조금 넘었고, 퇴근시간에 맞춰 다다다가 준비해 준 저녁을 먹었습니다. 밥을 먹은 뒤에 샤워를 했고, '잡학왕(雜學王)' 이라는 tv 퀴즈방송을 보면서, 보내주신 메일에 대한 답장을 보냈습니다.(메일이 많아서 이틀 정도 밀려있습니다.)
그리고, 9시 54분부터 시작하는 아사히 방송의 뉴스를 보고 있는데, 톱뉴스는 여전히 발전소와 지진 소식입니다. 수돗물이 방사선에 오염되어, 어린 아이가 그냥 마시기에는 기준치를 오버한 양이니 절대로 수돗물을 그냥 마시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센다이 지방의 지진 복구 작업을 하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뉴스를 보면서 다다다가 이런 말을 하네요...

다다다 : 근데, 자기 취업활동할 때, 센다이쪽 회사에 면접간다고 하지 않았나?
    쿤     : 센다이? 센다이라~ 아!! 그러네, ㅇㅇㅇㅇ 회사... 그게 센다이에서 남쪽으로 전철로 20~30분 정도 거리에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다다다 : 멀리 바다도 보였다고 했지..?? 아닌가?
    쿤     : 바다? 아~ 맞다.. 있었다..
다다다 : 우리가 그쪽으로 이사를 갔다면,,, (도리도리도리)아~ 생각하기도 싫다..
    쿤     : 헉?! 그러네...

와~ 정말이지 상상할 수 없는 공포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어떤 회사에 지원을 했는지 하나하나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일본 지도를 펼쳐놓고, 5년전에 입사를 지원했던 회사를 하나하나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찾는 회사의 위치를 확인할 때 마다, 등꼴이 오싹해짐을 느꼈습니다. 그 기분이란, 영화 "구니스"에서 주사위를 굴리는 기분이라 할까요? 쿤의 얼굴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보고, 다다다가 왜 그러냐고 물어옵니다.

                                                     (자료발췌 : 구글지도, 빨간 동그라미가 쿤이 지원했던 회사입니다.)

    쿤     : 이거 봐봐. 센다이 말고도 그 밑에 후쿠시마에 있는 회사.. 최종면접 기권한 곳이잖어..!! 발전소 근처..
다다다 : 뭐..?
    쿤     : 그리고, 지바현 남쪽에 태평양 휴양지 같다는 곳 말야.. 그게 여기야..
다다다 : 어머머.. 이번에 쓰나미 경보가 났던 곳이네..
    쿤     : 게다가 대지진 이후에 후지산 근처 지진 났던데,, 거기 회사 두 개랑 수돗물 오염됐다고 하는 동경지역 4개...
다다다 : ......(-o-);;;
    쿤     :  그 많은 회사 다~~ 포기하고 서쪽에 뚝 떨어진 이 곳에 왔으니,, 이걸 뭐라고 해야하지? 
다다다 : 와~~ 10분의 1을 고른거네.. 괜히 무서워 진다..
    쿤     : 지금 다니는 회사 보다 월급이 더 많은데도 있었는데, 그걸 포기하고 왔으니..

 

그렇습니다. 쿤은 10분의 1의 선택을 하고 이곳 고베로 온 것이랍니다.
일본에 살면서 지진에 안전한 지역이 어디있겠냐마는 이런 생각을 하니, 등꼴이 오싹해지고, 섬뜩함까지 들더군요.(거기서 사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제 입장에서 입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을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으나,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머리를 스쳐갑니다.

저는 지금 생각해 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은 정말 작은 기적의 하루가 이어지고 이어져서 누리고 있는 행복이라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