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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사는법

데이트 때마다 같은 티셔츠 입고 나오는 남친의 비밀

어제는 정말 기분이 최악이었기에 오늘은 분위기 전환을 해봅니다.
저는 우울할 때, 재미있는 옛날 추억 자주 떠올리거든요. ㅋㅋ 
문득, 건조대에 걸린 티셔츠 한 장을 보니 갑자기 웃음이 나더군요.

유럽 여행 중, 독일 뮌휀에서...맥주먹는 쿤 

바로 이 파란 줄무늬 '테디베어 티셔츠' 랍니다. 
 
오늘은 쿤과 다다다의 연애 시절 있었던 '데디베어 티셔츠'에 얽힌 추억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쿤과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합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서로 얼굴도 모른 채 인터넷에서 싸웠던 우리는, 한국 나오는 쿤의 제안으로 화해도 할 겸 한국에서 만나게 되었답니다. 치열한 언쟁이었기에 서로 흑심같은 건 전혀 없었지요. 오히려 둘다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인지 그 잘난 얼굴? 좀 보자.' 는 심리가 강했답니다.

얼굴은 모르고 007작전으로 서로의 복장을 설명하며 만났지요. 쿤이 바로 저 파란 줄무늬 테디베어 티셔츠를 입고 나왔더군요. 처음 만났을 때의 이미지는, 딱 공부만 할 것 같은 유학생 분위기에 다소(솔직히 매우) 촌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흐흐..그나마 좀 봐줄만했던 것이 바로 저 테디베어 티셔츠였지만 그 나이에 입고 나올만한 복장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상당히 인상적이긴 했답니다.

재미있는 것은, 저는 남자를 만날 때 외모를 굉장히 좀 따지는 쪽인데, 촌스러웠던 쿤의 첫인상이 5~6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호감으로 바뀌어 가더군요. 한국과 일본이라는 나라에 살다보니, '친구'라고 칭하는 관계가 되었지만 언젠가는 흐지부지 잊혀질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랜 시간 슬픈 감정에 사로잡혔던 저를 기억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역시 인연이었는지, 몇 달 후 커플이 되었답니다. 
장거리 커플이다보니 사귀면서도 첫 데이트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고요.
서로 점점 사랑에 빠지고 있었으니,  얼마나 보고 싶었겠습니까?

손가락 발가락까지 꼽으며 기다리던 첫 데이트가 돌아왔고, 쿤은 설렘에 잠도 못 잤다며 눈이 벌개져서 나타났지요. 그런데..글쎄 쿤이 테디베어 티셔츠를 입고 나온 겁니다. 좀 어이없었지만, 옷이 이것 밖에 없나보다 하고 말았지요. 자주 못 만나다보니 그런 걸 따질 겨를도 없이 그 시간이 마냥 즐거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다행히 테디베어 티셔츠는 아니었답니다. 밥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가서 쿤이 코트를 벗었는데, 테디베어 티셔츠가 짠하고 나타나더군요. T.T

아무튼 첫 만남부터 그 뒤 서너번 연속으로 테디베어 티셔츠만 입고 온 쿤을 기억합니다.
저는 쿤이 데이베어 티셔츠만 한 3~4장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답니다. 보통 남자들이 테디베어 티셔츠를 스스로 사는 경우는 없기에 전 여친이 남긴 소중한 물건인가 뭐 그런 생각도 했고요.

어느 날 기숙사에 들렀을 때 옷장부터 좀 살펴본 적이 있었는데 티셔츠가 20장은 있더군요. 
점점 의문이 들었지만...알 수는 없고..그렇게 테디베어 티셔츠는 미궁 속으로 빠져 버렸지요....

결혼을 하고 나서 비로소 의문이 완전히 풀렸답니다.
유학 시절 공부며 알바며 하루 24시간을 정신없이 보내던 쿤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빨래를 해서 티셔츠를 개놓고 순서대로 입었다고 하네요. 딱히 순서를 정한 건 아니지만, 하나만 몰아서 입으면 그것만 금방 헤지니까 빨래는 자주해도 남아있는 티셔츠를 입고 새로 빤 것은 나중에 입는 뭐 그런 기준이 있더군요. (순서대로 입는다니 여자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죠? ㅋㅋ)

그러니까..쿤이 저를 만날 때마다 테디베어 티셔츠를 입은 건, 그냥 그날 그걸 입는 순서였던 겁니다. 그래도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러 가는데, 저 같음 뒤적뒤적 할 것도 같은데...쿤은 별로 외모에 신경쓰지 않는 타입이라 지금도 제가 챙겨주지 않으면 순서대로 입는답니다. T.T 

가끔 제가 놀리거든요.

왜 나 만날 때마다 테디베어 티셔츠 입고 나왔어?

그랬어? 기억 안 나는데
...(그러면서 제가 입고 나온 옷은 기억하더군요...)

테디베어 티셔츠만 입고 나와서 자칫 잘못하면 나한테 차일 수도 있었던 거 알아?

야...다다다...잘 생각해 봐. 일년에 너를 만난 게 고작 서너번인데...
게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티셔츠가 20장이고..그 확률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해...
자, 계산해볼까...어쩌구 저쩌구.. (뭐든 수치화 하는 걸 좋아하는 우리 쿤 ㅡ,ㅡ;;)

아..됐거든..머리 아파..

암튼..쿤의 주장은 그렇습니다. 그 확률을 생각하면 테디베어 티셔츠는 운명의 티셔츠라고요. (증말, 입만 살았다.)

쓰다보니 옛 추억도 떠오르고 어느새 우울 다다다가 발랄 다다다가 되어 있네요. 여전히 마음은 무겁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발랄 기분으로 가 보겠습니다. 여러분도 기분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