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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사는법

남편의 잔소리를 자상함으로 바꾸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의 이상형에는 집안일을 도와주는 남자 가 꼭 포함되곤 한다. 요즘같이 맞벌이가 많은 시대에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현상이고, 또 말을 바꾸면 자상한 남자가 좋다는 말이기도 하다는 측면에서 시대를 초월하는 이상형이기도 하다.

나 역시 한 때 같은 이상형을 꿈꾸었다.
일본 유학 생활 10년을 바라보는 쿤과 연애하던 시절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자취를 오래 한 사람일수록 절대 요리도 빨래도 안하는 경우가 많다 는 말에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해서 보니 도와주고 안하고를 떠나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자 살면서 익숙해지다 못해 고착된 쿤만의 생활 습관이 있었던 것이다.
설거지는 이런 식으로, 청소는 이런 식으로, 빨래는 이런 식으로.....

결혼 전에, 집안일이라고는 거의 하지 않았던 나에게는 엄마와 다른 쿤의 생활 습관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 방식을 강요하는 듯한 잔소리가 은근히 싫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건 빨래였다.
내 딴에는 한다고 하는데, 쿤에게는 나의 빨래하는 모든 단계가 다 신경쓰였던 모양이다.

이거랑 이거는 같이 빨면 안되는 건데...
양말은 짝을 맞춰서 널어야지 그래야 갤 때도 안 힘들고 분실 위험도 없어.
수건을 널 때는 수건의 가운데를 접어 널면 바로 집어서 동그랗게 말 수 있어서 편하지.
.............(이하 생략..다 쓰자면 정말 많다....T.T)

한 두번은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라고 웃으며 넘어갔지만, 비슷한 말을 자꾸 들으니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가끔 마음에 들면 칭찬(?)을 해주기도 했지만 그 칭찬조차 그리 기쁘지는 않았다.

가볍게 토라지기를 반복하다, 급기야 폭발을 해버렸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거든. 나는 나름대로 노력하는데 자꾸 잔소리 들으니까 하기가 싫어져.

하지만, 토라지기와 폭발은 결국 내 손해라는 생각에 작전을 바꾸었다.

내가 자기 하는 거 보고 배울 테니까 이제부터 자기가 해 봐.


그리고 쿤이 회사를 다녀와서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빨래의 신을 보는 것 같았다.
빨래 바구니에 분리하는 작업부터 시작해 빨래 양을 조절하는 것은 물론...너는 기술(옷이나 옷걸이 방향이 일정하게 정렬되어 빨래 군대 같음) , 개는 기술(티셔츠 공장에서도 알바를 한 적이 있어 전문가 처럼 갬)까지 내 눈에는 하나의 퍼포먼스 같았다. 기회는 이 때다 싶었다.

쿤, 빨래하는 솜씨 진짜 예술이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렇게 못할 것 같아.
이제부터 쿤이 빨래를 하고 내가 청소랑 요리를 하면 어떨까?

(고개 무한 설레설레설레~~~) 아냐아냐...이제 잔소리 안할게. 그냥 다다다가 해

요렇게 처음에는 쿤이 거절했다. 어설퍼도 좋고, 시간이 지나다 보면 요령이 생기니까 하면서 실력을 늘리는 게 좋지 않냐는 말과 함께.

다시 내가 빨래를 하자, 쿤은 말은 못하고 신경은 쓰이고....
그러다가 내가 편도 2시간 걸리는 학교로 출근을 하게 되고, 퇴근 길은 물론 주말까지 강좌랑 레슨으로 바빠지자, 조금씩 도와주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자 아예 쿤이 빨래를 하게 되었다. 

나는 다시 또 이때다 싶어 친구나 엄마에게 전화할 때 '쿤이 빨래를 해주는데, 보통 남자들과 달리 그 솜씨가 끝내준다'고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

결혼 4년 차, 지금은 역할 분담이 되어 쿤이 빨래를 담당하고 있다. 가끔 쿤이 바쁠 때는 빨래를 걷어 개는 것을 도와주는데, 쿤이 나를 도와주던 상황에서 내가 쿤을 도와주는 역전된 상황을 떠올리고 혼자 웃곤 한다.

동시에 그런 쿤은 내게 있어 빨래도 해주는 자상한 남편이 되었으므로 해피엔딩~!! 아닐까?

전에 한 포스팅([우리 부부가 사는법] - 일본 교수님에게도 들통난 불량주부 '나')을 본 분들이 빨래해주는 남편 별로 없다며 칭찬을 많이 해주신 걸로 안다. 그 칭찬 또한 쿤의 어깨를 으쓱하게 했고, 다다다의 작전 수행에 큰 힘?이 되었다.

쿤을 팡팡 띄어주는 나의 '쿤 비행기 태우기 포스팅'에는 의도된 꼼수가 있다는 것을 아실런지...헤헤 

아무튼, 요즘도 쿤이 집에 오자마자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아, 오늘 빨래 하는 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