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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사는법

남편의 옛 여친에게 온 메일을 보고

한 열흘 쯤 전의 일입니다.
몸이 아파 포스팅도 못하던 때였죠.
쿤이 아픈 몸을 일으켜 노트북을 가져다가 엎드려서 메일 체크를 하더군요. 얼핏 모니터를 봤는데, 쿤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합니다.

난 아무 잘못도 없어..난 아무 짓도 안 했다고..난 억울해..

메일 체크하던 사람이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나 했었죠. 그래서 쿤의 메일을 자세히 보니, 익숙한 한 여자의 이름이 보입니다. 그녀는 저를 만나기 전에 사귀었던 옛 여친으로 일본 유학 추억의 일부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위에 있는 억울하다는 말은 그녀가 메일을 보낸 영문을 모른다며 쿤이 했던 말인 것이죠.(오호~ 딱 걸렸어.. 뭔가 찔리는게 있는 게지...)

쿤은 메일을 지우려고 했고, 저는 보낸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읽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마누라랑 알콩달콩 잘 살고 있나?

옛 여친일지라도 다른 여자의 남자에게 반말을 하는 데 제 기분이 상해버렸습니다.
둘만 알고 있는 교토의 이야기라든가. 교토의 지인 이야기라든가..추억을 끄집어 내어 말하는 부분을 보니 점점 빈정이 상하더군요.

마지막은 더 가관입니다. 

내가 우째 사는 지 궁금하지도 않았나? 진짜로 섭섭하다.
가끔은 사는 소식 좀 전해주고 그래라.

쿤이 왜 그녀에게 소식을 묻고 소식을 전해줘야 하는 걸까요?

저는 쿤의 가슴 아픈 첫사랑도 알고 있고, 외국인을 사위로 맞을 수 없다는 이유로 헤어져야만 했던 오죠사마(부잣집 딸을 지칭) 일본인 여친 등등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알고 있습니다. (뭔가 툭툭 튀어 나올 때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고해성사를 하더군요. T,,T). 하지만, 유독 제가 그녀만 싫어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와 쿤의 연애 시절, 그녀는 잊을만 하면 한번씩 눈치없이 끼어들기를 잘 했으니까요. 저의 장거리 연애를 더 슬프고 아프게 한 장본인이니까요. 쿤과 함께 유학을 했고, 유학 친구를 공유하고 있으니 그녀의 끼어듦은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고 지쳐가던 어느 날 쿤에게 이별을 고했답니다. 장거리도 서러운데 헤어진 여친이 같은 일본에 살면서 서로 연락하고 그러는 거 감당 안 된다는 게 이유였죠. 헤어짐을 먼저 고하는 여자를 잡아본 적이 없다는 쿤이 저를 잡았답니다. 만약 그 손길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그녀가 몇년 만에 또 말을 걸어온 것입니다.
옛 여친과 편한 친구처럼 연락하며 지내는 게 옳은지....그게 바로 요즘 흔히 말하는 쿨하다는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제 기준에서는 결혼도 해서 살면서 연락을 하는 그녀의 태도가 이해는 안됩니다.
그러면서 제 망상이 시작됩니다.

쿤이 그리운 걸까요?
그녀는 현재 결혼 생활에 불만이 있는 걸까요?
그녀에게 있어 쿤은 가족의 일부처럼 남은 걸까요?

제 망상은 점점 심해져서 쿤에게 화살을 돌려봅니다.
남자들이 흔히 헤어질 때 하는 말 있죠?

우리 헤어지더라도 친구처럼 지내자~!!

이런 말들...다 이런 말들이 뿌린 씨앗은 아닐까요? (쿤 한번 흘겨보고~!)

그런데 쿤을 보고 있자면 부질없는 망상이라는 걸 느낍니다. 일본에서 알고 지내는 수 많은 사람들... 그 중에는 한국인도 있고, 일본인도 있고, 타 국적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상당 수 있습니다. 10대 후반부터 80대 초반까지 연령층도 다양합니다. 누구를 만나든, 누구와 전화를 하든, 꼭~ 다다다를 끌어들이고, 소개를 하고 이야기를 해 줍니다. 덕분에 저도 아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갑니다.

메일 하나에 망상이 들기도 했지만, 이내 웃고 맙니다.

그런 망상을 버리고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비로소 제가 무엇을 해야할 지 보입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쿤에게 더욱 사랑스런 아내 다다다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현실속에서 함께하는 저, 다다다만 바라보고 챙기려는 쿤의 마음을 알기에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침 좋은 타이밍이 찾아왔습니다.. 발렌타인데이...ㅋㅋ
작년보다 제작년보다 훨~씬 큰 초콜릿롤케이크를 사왔습니다.
쿤이 좋아라하는 딸기도 슝슝 박혀 있지요.
짠~!!



케이크를 접시에 담아주며 전 강조를 했지요.
역시 쿤에게는 다다다밖에 없지? 그치~~~~그치~~~~그치???

쿤 왈,

근데, 왜 초콜릿이 아니고 롤케이크야?.....이거.... 너가 먹고 싶었던 거지?

.......................헉....(눈치챈겨?)............들...켰...다.....(^ㅡ^);;;.

망상이고 뭐고 다 필요없습니다. 메일은 그냥 삭제되었고...답없는 메일의 의미를 그녀도 알아채겠죠.
어찌되었든 쿤은 제 옆에 있으니까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