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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사는법

일본 교수님에게도 들통난 불량주부 '나'

나는 현재 대학원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있다.
일주일에 3~4번은 편도 2시간 전철을 타고 학교에 가고,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는 수업 준비를 한다. 게다가 밖에서는 프리랜서로 집에서는 주부로서의 역할까지 있다보니 나의 하루는 늘 전쟁과 같고, 제대로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연구자로서의 면모가 보이는 우수한 학생은 아닌데다, 그저 그 날 필요한 만큼만 하는 그정도의 학생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럼에도 집이 멀다는 이유로, 일과 가정을 꾸린다는 이유로 교수님들은 부족한 발표에도 '다다다 상은 집이 머니까, 일도 하니까, 남편도 있으니까..' 라며 이런 저런 형편을 봐주시기곤 하셨다.

그 중에 A 교수님은 학교에 올 때마다 도시락을 싸오는 나를 보고, 
"다다다 상은 남들보다 2~3시간 먼저 집을 나올텐데 매번 도시락도 싸오네요. 오~~대단한 주부예요. " 라고 몇 번이나 칭찬을 하셨다.  사실은 일본 도시락이나 식당이 별로 입맛에 안 맞기 때문이었다. ㅋㅋ
  
지난 학기에 나는 그 교수님의 언어 이론 관련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교수님이 반 쯤은 이론을 설명 하시고, 반 쯤은 대화에 담긴 의미를 찾아 토론을 하는 수업이었다. 수업을 듣는 학생은 5명으로 그 중에 3명은 주부이다.

어느 날의 일이었다. 교수님께서 갑자기 수업을 듣는 학생들(그 중에서도 3명의 주부들)에게 질문할 게 있다며 말을 꺼내셨다. 

나도 언어를 전공한 사람이지만, 제 아내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있어요. 다른 가정도 그렇겠지만 우리집 쓰레기는 제가 버립니다. 결혼한 지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한결같이 해 오던 일이죠. 그런데, 쓰레기를 버려야 되는 날이 되면 꼭 제 아내가 저에게 "오늘 바쁜데 쓰레기 버릴 수 있겠어요? 괜찮겠어요? "  라고 하는 겁니다.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이고 해 온 일인데, 저런 말을 매번 들으면 괜히 좀 화가 납니다. 그렇다고 아내가 쓰레기를 버릴 생각으로 하는 말은 아니잖아요? 그냥 하는 말 아니겠어요..그래서 화를 내면 "괜히 미안해서.." 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사실, 여기에는 쓰레기를 버리는 남편에 대한 미안함이 묻어있기 때문이지요. 해봤자 본전도 못얻고 오히려 저에게 핀잔을 듣기 일쑤지만, 그렇게 말해야 아내는 마음이 편해지는 거죠. 언어란 때로는 이렇게 역효과를 내기도 하는데도 무리해서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그냥 화가 나곤 하는데요, 여기있는 주부 세 분은 어떠신가요? 

일본 주부가 먼저 말을 꺼냈다.

하하하하, 정말 공감해요. 저도 똑같아요. 어차피 남편이 버리는 걸 알지만, 바쁜 출근 길에 쓰레기 버리려고 하는 모습 보면 괜히 미안해져서 꼭 "괜찮냐고" 묻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남편한테 "언제는 내가 안 버렸나..새삼스럽게" 라면서 핀잔을 듣는데..핀잔을 들어도 저 말을 해야 제 마음이 편하답니다. 앞으로도 계속 말할 것 같습니다.

일본 주부의 말 끝마다 "맞아요, 정말 그래요" 를 반복하던 다른 한국 주부가 말을 이었다.

호호호 저도 똑같아요. 남편이 버리는 걸 알지만 그거 말해야 편하죠. 정말..욕먹어도 전 꼭 말해요..

공감하는 두 주부들을 보고 교수님은 "역시, 역시..." 고개를 연방 끄덕끄덕 하시더니 나에게도 같은 대답을 요구하는 듯한 표정으로 

다다다 상은 어떤가요?

음..........전 좀 다른 것 같아요...아하하하...한번도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어서...
아......그렇군요...훔....예외도 있군요. ㅋㅋㅋ 다다다 상. 의외네요...허허허허허..

우리집도 쿤이 일주일의 두번 씩 두툼한 쓰레기 봉투를 들고 출근길에 버린다. 여기까지는 여느 집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다른 주부들과 달리 나는 "오늘 버릴 수 있겠어? 괜찮겠어? 힘들지...괜히 미안하네..." 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없다. 아니 할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심지어는 그냥 으례 '이건 쿤의 일이니까..' 라고 당연시 하고 무관심하기까지 했다.
몇달 전, 딱 한번 쿤이 출근길에 전화를 해서는
"다다다야, 오늘 쓰레기 버리는 거 깜빡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다다다가 버려주면 알될까? " 라는 말에 "힘들어, 자기가 나중에 버리면 안돼" 라고 한 사실도 떠올랐다. (T,,T)

교수님과 다른 두 주부의 공감대에서 벗어난 게 너무 어색해서 수습을 해보려고 말을 덧붙였다.

" 제가 일본 온 지도 별로 안되었고요. 외국인이잖아요. 또, 고베는 쓰레기 버리는 방법이 좀 복잡하고 엄격하거든요. 처음 왔을 때 남편이 잘못 버리면 큰일 난다고 그냥 두라고 해서..그냥 그러다가 남편이 하게 되고 미안해 하지도 않게 된 것 같아요. 아마, 제가 한국에 살았으면 다른 주부들이랑 같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때 같은 한국인 주부가 눈치없이 한마디 거들었다.

ㅋㅋ 근데 다다다 씨네는 빨래도 남편이 다~~한다면서요...

그랬다. 우리집은 빨래도(??) 쿤이 한다. 세탁기 만져본 지가 언제인지..끙..

교수님과 눈이 마주쳤다.
헤.헤.헤..

그냥

웃었다. 

쿤~! 먄~! 

!!!!!!!    다음뷰 해외 생활 발행이 또 안되네요. 벌써 몇 번째인지... 국제로 올려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