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일본을 다니다

추모제를 대신하는 일본 고베의 루미나리에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화려한 불빛이 생각이 납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각종 백화점의 연말 할인행사 판촉에도 많이 쓰이지만, 요즘에는 각 지자체의 관광품으로도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화려한 불빛 행사를 추모제로 치르는 도시가 있습니다.
바로 일본 고베(오사카에서 30분거리)의 루미나리에입니다.

고베 루미나리에의 유래

'루미나리에(luminarie)'라는 말은 이탈리아어로 전구 장식을 뜻하다고 하는데요. '루미나리에' 하면 일본 고베의 것을 떠올릴 만큼 시작부터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고 지금까지도 일본의 유명한 행사로 자리잡고 있습니다.(서울시에서 가져다가 만들기도 했죠?) 이것은 애초에 한신 지진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빛을 선사하고자 시작된 일종의 추모 축제입니다.

더 정확히 말해, 고베 루미나리에는 1995년 1월 17일에 발생한 한신 즉, '아와지 대지진'으로 희생된 6,434명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행사입니다. 고베 루미나리에가 시작된 시기는 지진이 발생했던 그 해인 1995년 12월 이었으며, 이후 매년 12월에 약 10일 정도의 루미나리에 행사를 열고 있답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간략 소개>
- 발생시기 :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 46분 52초.
- 진원지    : 아카시 해협(아카시대교가 있는 곳)
- 지진진도 : M7.3
- 인명피해 : 사망 6,434명, 행방불명 3명, 부상자 43,792명
- 재산피해 : 약 10조엔(약 140조원)



고베 루미나리에의 모습

'루미나리에' 영상으로 감상해보시죠.

고베 루미나리에 2010 (행사기간 : 2010/12/02~2010/12/13)

사진으로도 준비해봤습니다.
루미나리에를 보기 위해서는 정해진 길로 들어선 뒤, 줄을 맞춰 이동해야합니다. 출발 지점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끝까지 빼도박도 못한 채로 따라가야 하지요. 그 시간이 짧게는 40분에서 1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렇게 지루하게 걷다보면 아름다운 루미나리에의 전등이 펼쳐진 길목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일단, 저 골목에 들어선 순간부터는, 기다린 시간이 아쉽지 않을 만큼 천국에 온 듯한 착각이 들정도로 눈부신 불빛의 황홀경을 경험할 수 있지요. 게다가,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괜히 센치멘탈해지기까지 합니다. 




고베 루미나리에를 바라보는 일본 사람들의 인식

쿤과 다다다가 함께 처음으로 루미나리에를 보러 간 것은 2009년입니다. 점등되는 순간을 보기 위해서 전등이 있는 통로 안에 앉아서 불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오후 4시 45분...
방문 인원이 많아서 조금 빠른 점등이 될 거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고, 그 방송이 끝나고 1분 정도가 지나자 음악과 함께 루미나리에 전등에 불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눈 앞에서 벌어지는 너무 뜻밖의 상황...
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이거 추모제인데..). 그 중 많은 20대의 연인들은 서로 끌어안고 키스를 하는 사람도 보였고, 밝은 얼굴로 V 를 하면서 사진을 찍는 커플도 많았습니다.

일본 사람들에게 고베의 루미나리에는 추모제는 하나의 즐기는 축제로 바뀌어 가고 있는 듯하게 보였습니다. 서양에서는 추모제도 하나의 축제처럼 밝은 분위기로 치룬다고 들었는데요. 그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은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했었죠. 음악은 경건하고 엄숙했지만, 사람들 얼굴에서 16년 전의 대지진은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베 루미나리에는 현재 재정의 악화로 존폐위기에 놓여 있다고 합니다.
1995년 1번째 개회 이후 올해로 16번째를 맞이했지만, 고베 루미나리에를 찾는 관광객 수는 매년 감소하고 있고,  견디다 못한 고베시는 개최비용을 위해 100엔 모금운동(혹은 기념 복권 판매)을 벌입니다. 올 해의 모금액은 6,396만엔(약 8억) 이었다고 합니다. 


고베 도시의 재건과 부흥 그리고 희생된 이들과 상처를 안고 남겨진 이들을 위해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빛이 되고자 시작된 루미나리에. 더이상 볼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