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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의 일본 유학기

신칸센이 달리는 한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신칸센 교토역 청소

신칸센은 일본을 상징하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북쪽으로는 아오모리(青森), 남쪽으로는 큐슈의 가고시마(鹿児島)까지 달립니다.. 그리고 그 중간 쯤에 있는 교토(京都)역은 많은 관광객이 승하차하는 역으로 유명합니다.. 일본 간사이 지방의 관문이 간사이 공항이라고 한다면, 교토의 관문은 신칸센 교토역이라는 표현도 합니다.. 

 

지금부터 12년 전인 2000년 1월...

쿤은 한국인 친구의 소개로 신칸센 교토역 플랫폼 청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하는 야간알바였지만, 시급이 1,600엔이나 되는 고액(?)알바였습니다... 5시간 알바로 8,000(당시 11만원)을 벌 수 있었고, 한 달에 20일을 출근해야 했기에 월급으로 16만엔(당시 210만원)을 받을 수 있었죠..

교토역 청소 아르바이트는 당시의 쿤에게는 최고의 아르바이트였습니다.. 위에서 말한 금전적인 면도 있었지만, 마음이 맞는 한국인 유학생들과 웃으며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청소작업을 감독하는 일본분은 모든 작업을 우리에게 위임하고 사소한 지시나 말참견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우리 세상이었죠. 자유로운 분위기라서 게을리 할 수도 있었지만, 같이 일했던 한국인 유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11 53분의 오사카행 하행선 막차가 지나가면, 본격적으로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열차에서 내린 손님들이 역을 빠져 나가면, 신칸센 플랫폼을 빗자루로 쓸고, 세제를 풀어서 닦고, 전동 수세미로 구석구석 밀고 다녔습니다.. 30m 짜리 호스를 끌고 다니며, 전동 수세미로 밀고 다닌 곳의 비눗물을 제거하고, 물기가 남지 않도록 걸레로 다시 닦아냈죠... 바닥에 붙은 껌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긁어 버렸고, 타일에 진하게 남은 사람들의 구두 자국도 표백제를 사용해서 제거하였습니다..무식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우리의 모습에 관리 아저씨들은 적당히 쉬어가면서 하라고 하면서 음료수도 뽑아주시고, 간식도 가져다 주시곤 하셨습니다.. 게다가, 한국인 유학생들이 교토역을 청소하면서 도쿄~오사카에 사이에 있는 17개(당시)의 신칸센역 중에서 교토역이 가장 깨끗하다는 말을 듣는다며 좋아하곤 하셨습니다..

 

야간에 일하고 오전에는 학교를 가야하는 생활이었기에, 몸은 피곤했지만, 그런 고생을 하는 것으로 공부를 할 수 있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기쁨은 수업료를 내지 못해서 고등학교 졸업식에 못 가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이 일을 했던 한국인 유학생들은 일본에 신칸센이 달리는 한 교토역 청소 아르바이트는 영원할 것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우리의 교토역 알바는 2003년 3월 31일부로 끝을 맺었습니다.. 계약기간이 만료된 것도 아니고, 사고를 쳐서 잘린 것도 아닙니다.. 교토역 알바가 사라진 이유는, 일본 사회에 의인으로 남은 이수현 씨의 죽음으로 교토역에 추락방지 구조물인 바리케이트가 설치되면서 물청소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죠.. 이수현씨의 사고로 일본의 주요역에는 스크린 도어나 추락방지 구조물이 설치되었는데, 교토역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같이 일했던 한국인 유학생들은 알바가 없어지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살신성인의 이수현씨를 기리고, 한 사람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는 일본사회의 움직임에 칭찬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위에 있는 사진은 카메라폰이 대중화되지 않은 당시의 유일한 사진인데요, 저 사진 하나가 참으로 많은 추억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고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 때를 돌이켜 보니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집을 떠나서 공부하시는 분들...!! 일본 유학생 분들...!!

지금의 고생은 훗날 큰 추억이 된다는 것을 잊지마시고, 오늘도 힘찬 하루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