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친구하고 전화로 이야기합니다
가 : 여보세요? 거기 '나' 씨 집이지요
나 : 네, 전데요.
가 : 안녕하세요? 저, '가' 입니다.
나 : 아, '가' 씨, 무슨 일 있어요?
가 : 김 선생님 전화 번호 좀 가르쳐 주세요.
나 : 네, 잠시만요.
가 : 여보세요? 거기 '나' 씨 집이지요
나 : 네, 전데요.
가 : 안녕하세요? 저, '가' 입니다.
나 : 아, '가' 씨, 무슨 일 있어요?
가 : 김 선생님 전화 번호 좀 가르쳐 주세요.
나 : 네, 잠시만요.
위의 글은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한국어 교재의 대화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내 글을 읽기 전에 혹시 이상한 점은 없는지 찾아보기를 바란다.
모르긴 몰라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한국에서 평범하게 자란 한국인이라면 한국어 교재상 있을 수 있는 약간의 어색함을 제외하고는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그런데, 저 평범한 대화가 일본인들에게는 아주 이상하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일본인들에게 있어 저 두 사람은 상식이 없는 사람으로 느껴지기 쉽다.
그 이유는, 한국와 일본의 전화문화가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상황을 짚어보자.
위의 두 서람은 김 선생님의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는 제자이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한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짚어봐도 아주 평범한 상황이다.
그럼,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 '가'라는 사람이 '나'라는 사람에게 전화번호를 묻는 것이 문제가 된다.
'가'라는 사람이 선생님과 통화를 원하는 이유는 알 수는 없지만, 둘 간의 관계와 전화하려는 이유를 막론하고 당사자가 아닌 사람에게 전화번호를 묻는 것은 실례가 된다. 아니, 실례가 된다기 보다는 일본에서는 상식적으로 하지 않는 행동이다. 어차피 전화번호를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아도 알려주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기 때문에 애초에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둘째, '나'라는 사람이 선생님의 전화 번호를 가르쳐주려고 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만일 '나'가 일본인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럼, 제가 선생님께 전화번호를 알려줘도 되는지 여쭤 보고 다시 문자드릴게요.' 한국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 3자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볼 수도 있고, 또, 어떻게 전화번호를 얻었는지 잘 설명을 한다면 그냥저냥 통하는 걸로 알고 있다. 더구나 같은 학급에서 공부하는 친구이거나 학생이라면 당연히 알려줄 수 있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셋째, 애초에 저런 일로 뜬금없이 전화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의 상황이 이상하다.
일반적으로, 일본인들은 저런 일로 전화를 하지 않는다.
관계에 따라서 차이는 있겠지만, 일본인들은 용건이 있어 전화를 할 경우, 먼저 문자를 보내 '지금 전화통화가 가능한가?' 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 또, 일할 때 혹은 지하철에서 전화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보다는 전화가 가능한 범위가 좁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전화를 받는 대상이 지금 일을 할 수도 있고, 지하철을 타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불쑥 전화를 하는 것 자체가 실례가 될 수 있다.
넷째, 일본 사람들은 전화번호를 쉽게 알려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전화 번호를 알면, 문자도 보낼 수 있는 걸로 안다. 그런데, 일본의 휴대폰은 같은 통신사가 아닌 이상, 전화번호를 알아도 문자를 보내지 못한다. 즉, 문자 주소와 전화 번호가 별로도 운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둘 다 알려주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메일만 알려주거나 하는 식으로 본인이 편한대로 설정하여 운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냥 잠시 안면을 튼 정도로 손쉽게 휴대폰 전화번호를 서로 교환하는 한국의 문화가 일본인들에게는 놀랍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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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전화문화의 차이로 실수도 많이 했고, 오해도 했고, 또 기분이 상한 적도 많다.
한 번은, 인근 모대학의 대학원생으로 있는 일본인 친구가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자기 후배가 논문 데이터를 위해서 나에게 부탁할 게 있는데, 내 연락처를 후배에게 알려줘도 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러라고 했고, 얼마 뒤에 후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주 장문의 부탁 문자였다. 일본에 온 지 얼마 안 된 나는 그 문자를 받고, 기분이 좀 안 좋았었다. 사람이 기본적으로 뭔가를 부탁할 때는 전화를 해야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뭐, 일본인들은 대개 이런식으로 한다기에 그냥 넘어가기도 했지만, 그래도 혹시 하고 물어보니, 그들이 하는 변명이라고는 바로, 혹시 내가 전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일까봐 그랬다는 것이다. ㅋㅋ
웃긴 건, 같은 한국인끼리도, 휴대폰 번호나, 문자 주소를 골라가며 알려주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살면서 나도 일본인스럽게 바뀌어가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럴 때, 살짝 빈정이 상하곤 한다.
(참고 사항 : 일본에서는 휴대폰 문자를 메일이라고 부른다. 실제로도 컴퓨터 메일 대용으로 많이 쓰고 있어 장문으로 보낼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컴퓨터 메일을 이용할 때, 일본인들은 대다수 휴대폰 메일을 이용하여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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