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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외국어라고 쉽게 뱉은 말로 알게 된 불편함

한국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활동을 할 때까지도 한국어 이외의 언어는 전혀 구사하지 못하던 내가 이제는 일본어라는 언어를 제법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언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뿌듯하고 기쁜 일인지, 그리고 언어를 연구하는 내게 있어 얼마나 큰 장점이 되는 지 새삼 느끼곤 한다. 
물론, 여전히 많이 틀리고, 표준어 사이로 사투리가 톡톡 튀어나와서 일본인 친구들에게 놀림도 당하지만, 매년 조금씩 늘고 있는 내 일본어에 가끔은 나도 놀라곤 한다. (참고로 오늘 글은 식사중에는 절대로 읽지마세요~)

그렇다고는 해도 그 말이 가지고 있는 느낌이나 뉘앙스가 한국어 만큼 100% 다가오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처음에는 낯선 말인데도 사용하면 할수록 익숙해져서 그 말이 주는 느낌이 생동감있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떤 말은 아무리 익숙해지려고 해도 본래 그 말이 주는 의미와는 생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어는 아무리 익숙해져도 어디까지나 나에게 있어 외국어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였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어라면 창피해서 잘 꺼내지도 않는 말들이 일본어로는 쉽게 나올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초콜릿 아이스크림이나 쿠키를 보면 아주 쉽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 저 아이스크림 꼭 응코(ㄸㅗㅇ)같다. " (표현하기 뭐한 단어만 일본어로 바꾸어 말함)
 
쿤 역시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나의 저런 표현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이렇게 대꾸한다.

" 그러네. 응코 같네...ㅋㅋ 그것도 특대 응코...으흐흐 "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일본인 친구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렇다.

" 다다다, 적나라게 응X 라고 할 것 까지는 없잖아...(--). 그 말을 들으니까, 왠지 저 아이스크림 먹기 싫어 진다.(--)"

나의 초딩 일본어 발언에 똑같이 장단을 맞춰주는 쿤과 달리, 내 일본 친구들은 웃으면서도 '윽'하는 반응을 보이며 약간은 신경질적인 표현도 한다. 나에게 응코는 '똥'의 이미지를 완화시켜주는 말하기 좋은 단어인데, 그들에게는 일본어의 적나라한 응코 그 자체로 다가오는 것이다. 

매우 적나라하고 창피할 수 있는데도 외국어라서 본래의 느낌이 완화되는 것은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한때, 일본의 모방송에서 송혜교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일본의 한 여배우는 한국어로 방귀가 뭐냐고 물었고, 송혜교는 얼굴을 붉히며 모기만한 소리로 대답했다. 그녀의 대답을 듣고 일본인 여배우가 큰소리로 "방구(거의 반구로 발음함)? 와~~ 발음이 정말 귀엽네요..."라고 했었다. 

그러한 반응은 나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 친구들도 같았다. 한국어의 '방구(방귀)'라는 단어는 들으면 들을 수록 참 귀엽다며, 일본의 '오나라(방귀)'와는 다른 느낌이란다. 하긴 나에게 있어서도 오나라는 귀엽기만 하다(그들은 귀엽다고 말하면서도, 대놓고 입으로 표현하지는 않는 깍쟁이들이 많다.)


가끔은 어디서 들었는지 일본인 학생이 수업 중에 직접 질문을 하기도 한다.

"다다다 선생님, 저~~기 어디선가 들었는데요, 한국에 가서는 일본어의 '쟈-지(추리닝, 즉 운동복)'를 쓰지 말라는데 정말 쓰면 안 되나요?" (이 질문은 때가 되면 한번씩 받는 단골 질문이다.)

" 네..???!! 아~~~ ㅎㅎ 그렇죠.. 그게 한국어로 하면...어쩌구저쩌구...이런 의미거든요"

설명을 하면서 나는 몇번이나 저 단어를 내 입으로 말해야 했다. 상대방이 한국인이라면 입에 담기 불편했을 단어인데, 일본인이다보니 대놓고 저 단어를 직접 언급하면서(발음의 차이까지 곁들여 -.-) 설명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껏 살면서 가장 많이 저 단어를 언급한 날이 아닐까 싶다. 

설명을 들은 일본인 친구는, 

" 어머!! 그래요...?? 한국 사람들 앞에서 쓰면 안 되겠네요...호호호"

그런데 참 재미있는 건, 한국인들 앞에서는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본의 아니게 저 말이 튀어나오곤 한다는 것이다. "지하철역은 어떻게 가지요?" 라는 말을 하는데, '가' 대신 '자'로 발음을 하는 경우가 그렇다. 한국어를 읽을 때 더듬더듬하는 수준이다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그러다보니,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던 일본어의 '추리닝' 발음이 심심치 않게 등장할 수 밖에...
어느 학생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누군가가 "또 먹어요?" 라는 말에 'ㄴ'을 첨가해 "똔 먹어요?" 라고 했을 때는 그동안 쉽게 내뱉던 나의 응코 발언에 대한 복수처럼 느껴졌다. ( T.T )

그때 느낀 게 하나 있다.
편하다고 쉽게 내뱉는 내 '응코' 와 같은 발언이 일본인들에게는 거부감을 부를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의식하지 못한 채, 내 뱉는 한국어에 나 역시 작은 불편함을 느끼고 흠칫흠칫 놀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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