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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일본인 동서로 인한 8월 15일의 변화

8월 15일은 일본의 추석(오봉:お盆)이다. 음력으로 추석을 쇠는 한국과 다르게 일본인들은 양력으로 추석을 쇤다. 그리고, 오늘(08/17)로 일본의 추석 연휴도 끝난 것 같다. 고향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피곤함을 지닌 채 출근을 하고, 가게 문을 열고, 아이들은 밀린 방학숙제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일본에서 살고는 있지만, 일본의 추석은 우리의 명절도 아니고, 또 양력으로 쇤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쉰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었다. 짧은 일정으로 여행을 다녔을 정도였다. 그런데, 도련님이 일본인과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나니, '명절'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5명이 모여서 뭔가를 만들어 먹고, 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니, '조촐하다'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도 났다.

굳이 연휴가 아니더라도 한달에 한 두번 정도는 만나다 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이번 연휴를 통해 감지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동서가 '일본인'이라서 생긴 작은 변화였다. 


 일본의 추석보다 먼저 생각나는 한국의 광복절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식민지에서 벗어나 우리의 주권을 되찾은 경축일이다. 하지만, 일본 정치권이 8월 15일에 야스쿠니 신사참배 하는 모습을 TV나 신문으로 볼 때면, 답답함과 씁쓸함을 느끼곤 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지만, 참배하는 정치인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다.

그런데, 이번 8월 15일 일본의 추석에는 일본인 동서가 함께한 자리여서 그런지 쿤도 그렇고 서방님도 그렇고 물론 나도 그렇고..굉장히 조용했다. 아무것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 동서에게 객관적으로 다가가려는 노력이 엿보였다고 할까? 쿤은 8.15 광복절에 대해 덤덤하게 동서에게 설명해주려고 했고, 그 기회를 틈타 시동생도 설명을 곁들였다. 자연스럽게 서로 알려주고 토론하는 시간이 되었다. 한국인 3명에 일본인 1명이라 잘못하면 일방적인 설교가 될 수도 있는데, 우리들의 대화는 지루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싫다는 불평없이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기를 약 30분 정도 했을까? 동서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들은 이야기는 자신이 일본인으로서 알고 있던 이야기와 많이 다르다 했다. 한국에서는 식민지 해방을 말하지만, 일본에서는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자폭탄을 부각시켜 '일본=피해국'의 인식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흐미 -.-;;)


일본인 동서에게 나는 요리 잘하는 형님

시동생네 가족이 오면 나는 늘 한국 음식을 준비한다. 이번에는 '명절'이라는 이유로 왔기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한국이라면 송편이라도 빚겠지만...(설사 만들수 있다 한들 우리 추석도 아니고..)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먹을지 며칠동안 고민을 했다. 이렇게 고민을 한데는 유독 한식을 좋아하는 서방님에게 오랜만에 한식의 맛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한편으론 한국 음식의 맛을 알아가며 배우려고 노력하는 일본인 동서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늘 밝혀왔던 사실이지만, 나는 요리 솜씨가 그리 좋지 않다. 자칭 "불량주부"라 말하기도 한다)
다행인 것은 변변치 않는 나의 요리 솜씨가 쿤, 시동생, 동서가 모였을 때는 큰 힘을 발휘한다. 쿤은 워낙 먹성이 좋아서, 시동생은 한식에 굶주려 있어서, 동서는 한식이 신기해서 라는 저마다의 이유로 내가 만든 한식은 어설픈 맛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좋다.

일본인 동서는 부엌을 들락거리며 음식 만드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배워도 되냐고 묻곤 한다. 처음에는 정말 부끄러워서(어설픈 칼질, 허둥대며 양념 맛 조절하는 모습) 거절하고 싶었지만, 동서는 '아~~이렇게 하는 거구나' 라고 하면서 감탄을 하기도 하고, 국물 맛 내는 비법이 뭐냐고 묻기도 한다. 그렇게 함께 만들고, 먹기 전에는 열심히 사진도 찍는다. 본인 블로그에 올려서 자랑하려고 한다고 시동생이 귀뜸해 준다(그걸 좀 미리 말했으면, 예쁘게 신경써서 담을걸...)

이번 연휴 때는 육개장을 끓였다. 동서 입에는 좀 맵겠다 싶어서 걱정했는데 잘 먹는다. 소식(少食)을 하는 동서가 한 그릇 더 먹어도 되냐고 물어봤다. (유후~!!) 

8월 15일이 추석이라며 우리 집에 놀러온 동서...
동서가 일본인이다 보니 평범한 한국 음식도 부족한 나의 요리 솜씨도 맘껏 뽐낼 수 있는 자랑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진정한 한식의 맛을 알게되면, 내 솜씨가 들통날 것 같은 불길함도 밀려온다.....T.T

8월 15일을 추석이라고 하는 일본...
하지만, 나에게 있어 8월 15일은 여전히 광복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