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일본유학 관련의 글을 올리면서 일본유학에 대한 질문 메일을 받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쿤의 유학생활, 첫 알바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본어가 안 되었을 때, 어떤 알바를 했는지를 궁금해 하십니다.
오늘은 쿤이 일본에 적응 못하던 시절.. 일본어도 못하고 알바도 안 구해지고.. 그런 쿤의 일본 첫 알바에 대해 소개해 볼까 합니다.
98년 4월,, 히라가나도 모른채 일본이라는 낯선 땅에 도착했던 어리버리 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통장의 잔고가 물 빠지듯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다시 한국으로 가야 할 날이 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귀국 비행기표를 들고 고개를 숙이고 좌절하던 쿤의 모습이란 참...)
쿤은 주변 친구에게 알바 소개를 의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일본어 실력이었죠. 새로운 외국어를 시작해서 두 달이 조금 넘었을 때니 자세히 말씀 안 드려도 아실 겁니다. 동문서답은 기본이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이 턱 막히는 그런 상태였죠. 이런 쿤에게 누가 선뜻 알바를 소개해주겠습니까?
그런데 구세주가 나타납니다. 한국어를 잘하는 일본인 친구가 일손이 부족하여 하루 땜빵을 할 사람을 찾는데, 와 주지 않겠냐고 말을 걸었습니다. 시간당 1,000엔과 교통비로 추가 1,000엔을 받는다는 것이 조건이었답니다.
비록 하루 땜빵이었지만, 그렇게 시작한 쿤의 일본생활 첫 알바...
그것은 백화점 천장에 종이 간판을 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교토에 있는 다이마루 백화점 지하 1층과 지상 7층에는 이벤트 행사장이 있습니다. 그 행사장에서는 일주일 단위로 먹거리, 풍물전, 가구전, 명품전 등등 하나의 테마를 정해서 이벤트를 열고, 많은 업체들이 자신들만의 부스를 준비하고 일주일 간의 행사에 들어가곤 합니다. 그때 쿤이 했던 일은 각 부스의 이름이 적혀져 있는 종이간판을 부스 앞 통로를 기준으로 일정 높이에 달아 놓는 것입니다.
천장에 호치키스 핀을 하나 박고, 거기에 낚시줄을 고정시키죠. 그리고, 통로기준 185cm 정도까지 낚시줄을 내려서 가로 60~200cm, 세로 20~40cm 짜리 종이 간판을 답니다. 7명이 100 여장을 달아야 했던지라 1인당 10~20장을 할당받고, 2m짜리 철사다리를 가지고 도면에 있는 부스를 찾아다니면서, 약 5시간에 걸쳐 간판을 달았습니다. 그날 하루 땜빵으로 무려 6,000엔(8만원)을 벌게 되었습니다. (없는 살림에 6,000엔은 일주일 생활비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어를 그리 많이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었던지라, 오너 되시는 분이 다음주에도 나올 수 있냐고 물어보시더군요. 그래서 나올 수 있다고 했더니, '다음주에도,, 다음주에도,,,, 또 다음주에도' 를 반복하는 사이 쿤도 모르게 그 일의 정식맴버가 되어 정기적으로 알바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저 알바를 처음 시작할 때는 일주일에 한 번뿐이었습니다. 그 알바에 대해 유학 선배님이 충고를 해주시더군요.
"일주일에 한번 가서 일한다고? 그거 돈 되겠니? 매일매일 나가서 할 수 있는 걸 찾아야지...ㅉㅉ"
쿤은 군대에 있을 때 줄이나 끈 묶기를 많이 했던지라 낚시줄을 이용하여 간판을 다는 것이 의외로 쉬웠습니다. 쿤의 낚시줄 만지는 법을 본 다른 일본 친구들이 보더니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보길래 가르쳐 주기를 수차례 했었죠. 그럴만도 하던것이 그 친구들이 단 간판은 높낮이 조절이 안 됐지만, 쿤이 단 간판은 10cm 정도의 높낮이 조절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서 언제든 수정이 가능하도록 했거든요. 쿤은 물 만난 물고기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알바에 빠지지 않고 나가다 보니, 간판 한 두장의 장소 변경으로 맴버 한명을 필요로 할 때, 오너되시는 분이 연락을 주시더군요. 화요일 저녁에는 5~7시간씩 일을 했지만, 그 이외의 요일에는 한 두장의 장소변경으로 30분 정도만 일을 했습니다. 시작 후 2시간까지는 2,000엔+교통비 1,000엔을 받았습니다. 그 알바에 들어가면 최소 3,000엔은 보장해 주는 것이었죠. 게다가, 백화점 특별 행사가 잡히기라도 하는 날에는 오너는 더 자주 연락을 하기 시작했고, 주 1회의 알바는 주 3~5회 정도 나가게 되는 알바로 바뀌어 버렸답니다.
작년 여름에 교토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그 모임에 백화점 알바를 같이 했던 친구들 몇명도 있었습니다. (전 기억을 못하는데 다다다가 말해주길래 부끄럽지만 써봅니다.)
"다다다씨.. 다다다씨는 정말 결혼 잘 한 거예요.. 알바 하나로 사람을 평가하기는 좀 그렇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 알바에서의 쿤은 신이었어요. 똑같이 일하는데 여유도 있으면서 속도도 무지 빨랐어요. 손가락을 슈슉 움직이면, 마술처럼 착착 간판이 달리는데,, 그 간판의 각이랑 줄이 정말 기계로 맞춘 것 같았거든요. 아무리 따라할래도 할 수가 없었어요. 서로 쿤과 팀이 되려고 안달이었거든요"
하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말도 잘 못하는 외국인이 인정을 받으려면, 다른 뭔가로 두각을 보여야 하기에, 더 잘하려고 노력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저만의 요령을 터득하게 되었고, 백화점 행사가 잡히기라도 하는 날이면 저는 1순위로 호출되었고, 가장 많이 호출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수입이 팍팍 늘더군요.
처음에 저에게 충고를 하던 선배님이 몇달 후에 갑자기 전화하더니 그럽니다.
"저기~ 쿤, 그 알바 어떻게 나도 좀 해보면 안될까??? ㅋㅋㅋㅋ "
저 알바를 얼마동안 했냐구요? 교토생활이 7년이었는데 6년 10개월 했습니다. 학교를 옮기면서 그만두었죠.(참고로 쿤은 한번 알바를 시작하면, 쿤이 쓰러지든지, 가게가 문을 닫던지 둘중에 하나가 될 때까지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장기 알바가 많았습니다.)
1. 작은 알바라도 무시하지 마라.
쿤이 백화점 알바를 하게 될 때, 위의 형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란 "야~ 그거 일주일에 하루 나가는 걸로 돈 되겠냐?" 였습니다. 그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주급으로 만엔 이하의 금액을 받아봐야 월 4만엔도 안 되기 때문에 생활이 안 된다는 말이었죠. 하지만, 주급이 아니라, 매주 용돈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일주일에 용돈으로 만엔을 받아, 그 만엔으로 일주일을 살아간다는 생각을 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물론 집세나 공과금, 학비는 논외대상입니다.) 동시에 다른 아르바이트도 뛰면서 그렇게 벌게 되는 돈은 저축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벤트 회화의 사원이었던 오너와 친분이 생기자, 백화점 알바이외에 교토 시내에서 이런 저런 이벤트가 열릴 때면, 쿤에게 알바거리를 주었답니다. 교토에서 7월 17일에 열리는 기온마쯔리!! 그 마쯔리의 의자깔기 알바도 했었답니다. 비록 단기알바였지만, 시급은 5,000엔 정도였답니다.(한 여름날, 땡볕 아래에서의 의자 깔기란 한시간만 하면 일사병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것을 감안한 알바였기에 시급이 쎄답니다. 일본의 보통 알바는 시급 800엔~1,000엔입니다.)
2. 한번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라.
쿤이 백화점 알바를 할 때 6명이 일본인이었고, 한국인은 쿤 한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두명의 일본인이 그만두게 되었고, 오너는 추가 인원을 필요로 하게 되었죠. 그럴 때 마다, 쿤은 유학생을 데려오겠다고 했고, 오너는 성실하고 꾸준히 나와준다면, 국적은 필요없다고 했습니다. 한 두명의 일본인이 그만둘 때마다, 외국인(한국인, 터키인)의 비율이 늘어났습니다. 쿤이 그 알바를 그만둘 때 일본인은 한 명뿐이었고, 한국인과 터키인으로 6명의 외국인이 있었습니다.(터키인도 한국인을 형제로 생각하더라구요. 근데 누가 형인지..)
3. 성실함으로 승부해라.
쿤이 백화점 알바를 하면서 내 세울 수 있는 것은 단 두가지.. 시간약속과 성실함, 그 뿐이었답니다.
그 두가지가 주 1회(5~7시간)에서 주 3~5회(총 약 10시간 정도)로 일하는 횟수도 늘렸고, 수입도 늘려줬습니다.
한 사람의 외국인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른 많은 유학생 친구들에게 일자리가 생깁니다. 일본유학을 하시는 여러분이 어떤 일이라도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일본에서 유학하는 다른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쿤의 유학생활, 첫 알바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본어가 안 되었을 때, 어떤 알바를 했는지를 궁금해 하십니다.
오늘은 쿤이 일본에 적응 못하던 시절.. 일본어도 못하고 알바도 안 구해지고.. 그런 쿤의 일본 첫 알바에 대해 소개해 볼까 합니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 구세주가 나타나 시작한 쿤의 첫 알바
98년 4월,, 히라가나도 모른채 일본이라는 낯선 땅에 도착했던 어리버리 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통장의 잔고가 물 빠지듯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다시 한국으로 가야 할 날이 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귀국 비행기표를 들고 고개를 숙이고 좌절하던 쿤의 모습이란 참...)
쿤은 주변 친구에게 알바 소개를 의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일본어 실력이었죠. 새로운 외국어를 시작해서 두 달이 조금 넘었을 때니 자세히 말씀 안 드려도 아실 겁니다. 동문서답은 기본이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이 턱 막히는 그런 상태였죠. 이런 쿤에게 누가 선뜻 알바를 소개해주겠습니까?
그런데 구세주가 나타납니다. 한국어를 잘하는 일본인 친구가 일손이 부족하여 하루 땜빵을 할 사람을 찾는데, 와 주지 않겠냐고 말을 걸었습니다. 시간당 1,000엔과 교통비로 추가 1,000엔을 받는다는 것이 조건이었답니다.
비록 하루 땜빵이었지만, 그렇게 시작한 쿤의 일본생활 첫 알바...
그것은 백화점 천장에 종이 간판을 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교토에 있는 다이마루 백화점 지하 1층과 지상 7층에는 이벤트 행사장이 있습니다. 그 행사장에서는 일주일 단위로 먹거리, 풍물전, 가구전, 명품전 등등 하나의 테마를 정해서 이벤트를 열고, 많은 업체들이 자신들만의 부스를 준비하고 일주일 간의 행사에 들어가곤 합니다. 그때 쿤이 했던 일은 각 부스의 이름이 적혀져 있는 종이간판을 부스 앞 통로를 기준으로 일정 높이에 달아 놓는 것입니다.
천장에 호치키스 핀을 하나 박고, 거기에 낚시줄을 고정시키죠. 그리고, 통로기준 185cm 정도까지 낚시줄을 내려서 가로 60~200cm, 세로 20~40cm 짜리 종이 간판을 답니다. 7명이 100 여장을 달아야 했던지라 1인당 10~20장을 할당받고, 2m짜리 철사다리를 가지고 도면에 있는 부스를 찾아다니면서, 약 5시간에 걸쳐 간판을 달았습니다. 그날 하루 땜빵으로 무려 6,000엔(8만원)을 벌게 되었습니다. (없는 살림에 6,000엔은 일주일 생활비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어를 그리 많이 필요로 하는 일이 아니었던지라, 오너 되시는 분이 다음주에도 나올 수 있냐고 물어보시더군요. 그래서 나올 수 있다고 했더니, '다음주에도,, 다음주에도,,,, 또 다음주에도' 를 반복하는 사이 쿤도 모르게 그 일의 정식맴버가 되어 정기적으로 알바를 하고 있었습니다.
땜빵으로 시작한 알바가 7년 간의 생활비를 충당해줄 줄이야~!!
제가 저 알바를 처음 시작할 때는 일주일에 한 번뿐이었습니다. 그 알바에 대해 유학 선배님이 충고를 해주시더군요.
"일주일에 한번 가서 일한다고? 그거 돈 되겠니? 매일매일 나가서 할 수 있는 걸 찾아야지...ㅉㅉ"
쿤은 군대에 있을 때 줄이나 끈 묶기를 많이 했던지라 낚시줄을 이용하여 간판을 다는 것이 의외로 쉬웠습니다. 쿤의 낚시줄 만지는 법을 본 다른 일본 친구들이 보더니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보길래 가르쳐 주기를 수차례 했었죠. 그럴만도 하던것이 그 친구들이 단 간판은 높낮이 조절이 안 됐지만, 쿤이 단 간판은 10cm 정도의 높낮이 조절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서 언제든 수정이 가능하도록 했거든요. 쿤은 물 만난 물고기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알바에 빠지지 않고 나가다 보니, 간판 한 두장의 장소 변경으로 맴버 한명을 필요로 할 때, 오너되시는 분이 연락을 주시더군요. 화요일 저녁에는 5~7시간씩 일을 했지만, 그 이외의 요일에는 한 두장의 장소변경으로 30분 정도만 일을 했습니다. 시작 후 2시간까지는 2,000엔+교통비 1,000엔을 받았습니다. 그 알바에 들어가면 최소 3,000엔은 보장해 주는 것이었죠. 게다가, 백화점 특별 행사가 잡히기라도 하는 날에는 오너는 더 자주 연락을 하기 시작했고, 주 1회의 알바는 주 3~5회 정도 나가게 되는 알바로 바뀌어 버렸답니다.
작년 여름에 교토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그 모임에 백화점 알바를 같이 했던 친구들 몇명도 있었습니다. (전 기억을 못하는데 다다다가 말해주길래 부끄럽지만 써봅니다.)
"다다다씨.. 다다다씨는 정말 결혼 잘 한 거예요.. 알바 하나로 사람을 평가하기는 좀 그렇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 알바에서의 쿤은 신이었어요. 똑같이 일하는데 여유도 있으면서 속도도 무지 빨랐어요. 손가락을 슈슉 움직이면, 마술처럼 착착 간판이 달리는데,, 그 간판의 각이랑 줄이 정말 기계로 맞춘 것 같았거든요. 아무리 따라할래도 할 수가 없었어요. 서로 쿤과 팀이 되려고 안달이었거든요"
하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말도 잘 못하는 외국인이 인정을 받으려면, 다른 뭔가로 두각을 보여야 하기에, 더 잘하려고 노력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저만의 요령을 터득하게 되었고, 백화점 행사가 잡히기라도 하는 날이면 저는 1순위로 호출되었고, 가장 많이 호출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수입이 팍팍 늘더군요.
처음에 저에게 충고를 하던 선배님이 몇달 후에 갑자기 전화하더니 그럽니다.
"저기~ 쿤, 그 알바 어떻게 나도 좀 해보면 안될까??? ㅋㅋㅋㅋ "
저 알바를 얼마동안 했냐구요? 교토생활이 7년이었는데 6년 10개월 했습니다. 학교를 옮기면서 그만두었죠.(참고로 쿤은 한번 알바를 시작하면, 쿤이 쓰러지든지, 가게가 문을 닫던지 둘중에 하나가 될 때까지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장기 알바가 많았습니다.)
쿤의 첫 알바를 통해서 일본 유학생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 3가지
1. 작은 알바라도 무시하지 마라.
쿤이 백화점 알바를 하게 될 때, 위의 형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란 "야~ 그거 일주일에 하루 나가는 걸로 돈 되겠냐?" 였습니다. 그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주급으로 만엔 이하의 금액을 받아봐야 월 4만엔도 안 되기 때문에 생활이 안 된다는 말이었죠. 하지만, 주급이 아니라, 매주 용돈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일주일에 용돈으로 만엔을 받아, 그 만엔으로 일주일을 살아간다는 생각을 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물론 집세나 공과금, 학비는 논외대상입니다.) 동시에 다른 아르바이트도 뛰면서 그렇게 벌게 되는 돈은 저축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벤트 회화의 사원이었던 오너와 친분이 생기자, 백화점 알바이외에 교토 시내에서 이런 저런 이벤트가 열릴 때면, 쿤에게 알바거리를 주었답니다. 교토에서 7월 17일에 열리는 기온마쯔리!! 그 마쯔리의 의자깔기 알바도 했었답니다. 비록 단기알바였지만, 시급은 5,000엔 정도였답니다.(한 여름날, 땡볕 아래에서의 의자 깔기란 한시간만 하면 일사병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것을 감안한 알바였기에 시급이 쎄답니다. 일본의 보통 알바는 시급 800엔~1,000엔입니다.)
2. 한번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라.
쿤이 백화점 알바를 할 때 6명이 일본인이었고, 한국인은 쿤 한명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두명의 일본인이 그만두게 되었고, 오너는 추가 인원을 필요로 하게 되었죠. 그럴 때 마다, 쿤은 유학생을 데려오겠다고 했고, 오너는 성실하고 꾸준히 나와준다면, 국적은 필요없다고 했습니다. 한 두명의 일본인이 그만둘 때마다, 외국인(한국인, 터키인)의 비율이 늘어났습니다. 쿤이 그 알바를 그만둘 때 일본인은 한 명뿐이었고, 한국인과 터키인으로 6명의 외국인이 있었습니다.(터키인도 한국인을 형제로 생각하더라구요. 근데 누가 형인지..)
3. 성실함으로 승부해라.
쿤이 백화점 알바를 하면서 내 세울 수 있는 것은 단 두가지.. 시간약속과 성실함, 그 뿐이었답니다.
그 두가지가 주 1회(5~7시간)에서 주 3~5회(총 약 10시간 정도)로 일하는 횟수도 늘렸고, 수입도 늘려줬습니다.
한 사람의 외국인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른 많은 유학생 친구들에게 일자리가 생깁니다. 일본유학을 하시는 여러분이 어떤 일이라도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일본에서 유학하는 다른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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