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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일본에서 냉장고 사러 갔다가 직원에게 들은 잔소리

지난 주말에 갑자기 우리집 냉장고가 아프다고 골골대기 시작했다. 냉동실에서는 아이스크림 등이 녹아 물이 줄줄 나오고, 냉장실에서는 냉기가 나왔다 안 나왔다 그랬다. 다음 날이 일요일인지라 서비스센터가 와 줄지도 의문이고, 수리비가 어느 정도 나올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지만,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친정이나 시댁에서 가져온 우리의 귀중한 양식을 못 먹게 될까봐 하는 것이었다. 천만다행으로 간헐적으로 나오는 냉기로 몇 시간은 더 버티어 줄 것 같았다. 일요일 아침이 되자 부랴부랴 쿤이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했고, 월요일 쯤에 방문을 하겠다고 했다. 출장비만 5,000엔(약 75,000원), 고장 여부에 따라 15,000엔(23만원)에서 28,000엔(35만원)까지 수리비가 들 수 있다고 했다.

우리집 냉장고는 2년 전에 같이 근무하던 동료 선생님이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주고 간 것이었다. 2005년도에 제조되었지만, 3~4인의 가정집에서 쓸 수 있는 용량 415리터의 냉장고였다. 이전까지는 쿤과 유학생활을 함께 보냈던 소형 냉장고를 사용했는데, 한국에서 먹을 것을 가지고 올 때마다 다 안 들어가서 급하게 먹어치우고, 가끔은 상해서 버리는 경우도 있어 바꾸려던 참이었다. 그런 찰나에 조금 큰 냉장고를 무료로 받게되어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친정 엄마에게 냉장고 이야기를 했더니 하시는 말씀이..

" 415리터..?? 에게게...그게 뭐가 커. "
" 엄마 일본에서는 이거 큰 편에 속해..."

엄마의 저런 반응이 이상할 건 없다.
일본 냉장고는 400~500정도가 대형에 속하기 때문이다. 냉장고의 모양도 길쭉하게 생겨서 냉장,냉동,야채실로 3, 4단으로 나뉜 경우가 많다.

                                               

    
                                                   400여 리터의 대형(?) 냉장고 모습

일본은 집 구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집 크기에 비해 부엌이 좁은 경우가 많다. 게다가 현관에서 거실이나 부엌까지의 연결 통로가 복도식으로 좁고 길게 된 경우가 많아서 큰 냉장고는 넣기도 어렵고, 막상 좁은 부엌에 넣어도 사용하기 불편하다고 한다.

쿤은 냉장고를 공짜로 받아 2년 간 잘 썼으니, 그냥 하나 사자고 했고, 냉장고를 보러갔다. 신제품 출시 기간이 임박해서인지, 올해 봄에 출시된 제품이 대폭 할인 행사 중이었다. 이리 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매장에서 자사 냉장고 판촉을 벌이는 50대 아저씨(매장직원이 아님)가 말을 걸어왔다. 우리가 보고 있는 냉장고에 대해 설명을 해 주더니...지금 쓰는 냉장고가 어디 회사 것인지, 얼마나 썼는지, 왜 바꾸려고 하는지 등을 물어왔다. 망가진 냉장고 처분까지 생각하고 있던 쿤은, 냉장고 고장이라는 말은 하지 않고, 이러이러한 냉장고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아저씨가 대뜸하는 말이...

아저씨 : 둘이 살면서 뭐 그리 큰 냉장고를 써요. 전기세 많이 나오겠네요.
다다다 : 415 리터가 크다고요..?? 하나도 안 커요. 오히려 작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아요.
아저씨 : ???
쿤       : 사실, 김치전용 냉장고가 하나 더 있어요.
아저씨 : 뭐요? 김치만 넣는 냉장고가 있다고요..?? 두 사람이 사는 집에 냉장고가 두 개라...허허...
            둘이서 얼마나 먹는다고 냉장고가 두 개나 있어요?
(일본에서 냉장고 2개인 경우는 아주 드물다.)
            아니 그런데, 이번에 하나는 또 바꾼다고요?? 그 냉장고도 6년 밖에 안 됐다며...
            내가 냉장고 판촉을 하고 있지만, 지금 바꾸면 다~~ 돈 낭비예요..
            그러니까, 4년 더 쓰고 바꿔요..
다다다 : 사실, 냉장고가 지금 상태가 안 좋~~~
(이 때 쿤이 내 말을 가로 막으며)
쿤       : 쉬, 그런 말 하지마.
 
(왜 그러냐고 하니, 냉장고 값도 깎고, 기존 냉장고 처분을 맡길 때 돈을 내야 하는데, 무료로 해달라고 하려는 참이란다. 6년 밖에 안 쓴 냉장고로 협상이 잘 될 것 같은데, 그런 와중에 고장이라는 말을 하면 가격 협상에 아무래도 불리할거라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일시적으로 기존 냉장고 무료 처분 행사를 하기도 했는데, 우리가 살 때는 그런 행사가 없었다.)

일본인들의 식단은 그때그때 만들어 먹는 경우가 많고, 과일을 매일 사다 먹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소량을 먹기로 유명한 사람들인지라 쌓아놓고 먹지도 않으며, 많은 종류의 김치를 담아서 보관하며 먹는 문화가 없어서인지 김치 냉장고나 냉장고를 2대 동시에 놓고 쓰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또, 집 구조상 큰 냉장고가 안 맞기도 해서인지 600 리터 이상의 냉장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400 리터대 냉장고를 사고, 현관이나 부엌 문에서 걸려 결국 다른 모델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일본의 상황이 이런지라, 우리는 일본인 아저씨에게 생각없이 돈을 흥청망청 쓰는 젊은 부부처럼 보였고, 한 소리 들은 것이다. 기분 나쁜 잔소리가 아니었던지라 대화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잔소리 덕분에 냉장고 고를 때의 주의사항이라든지, 일본에서 냉장고는 어떤 브랜드를 사야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들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매장 점원까지 가세를 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가격도 큰 폭으로 깎을 수 있었다. 물론 쿤의 바람대로 기존냉장고 처리비용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480리터짜리 냉장고를 샀다. 그것도 양문으로...헤헤..(일본의 냉장고는 그리 크지 않아서인지 양문이 참 앙증맞다.)

냉장고를 사자고 먼저 제안했던 쿤이지만, 가계부를 쓰며 한숨을 쉬더니 오늘 또 명언을 남긴다.
쿤의 명언은 대개 "나 홀로 유학의 처절함" 에서 나오곤 한다.

내가 일본에서 14년을 살면서, 냉장고를 물려쓰고 바꿔쓰면서 5~6대 정도 쓴 것 같은데, 내 돈주고 냉장고 산 것은 오늘이 처음이야..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ㅋㅋ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다다다입니다. 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쁜 거 끝나면 자주 블로깅 할게요. 날씨가 급변하는데 감기 조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