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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의 일본 유학기

말 한마디로 치유되었다는 성폭행의 아픔

2010년 12월 18일.. 저녁 6시 38분..
집에서 티비를 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공중전화...?
'공중전화로 전화하는 사람이 누구지?' 하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쿤    : 여보세요~
상대방 : 쿤상~?
   쿤    : 그런데, 누구세요~?
상대방 : 아~~ 연결되서 다행이다, 저에요. 오카짱..!!
   쿤    : 오카짱? (머리 속에서 검색중)오카짱..오카짱..오카..짱.... (눈 번쩍)아!! 생각났다. 호텔알바 오카자키 OO..!!!
상대방 : 와~ 이름도 기억하고 있네요~~ ^^

8년만에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오카자키(예명:오카짱)이라는 친구는 올해 37살의 일본여자이고, 고2 때, 자기 방에서 40살 도둑에게 성폭행을 당한 친구입니다. 그런 오카짱이 8년만에 전화를 한 것입니다.

오늘은 성폭행을 아픔을 씻고, 밝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일본인 친구. 오카짱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본 글에서는 오카짱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오카자키라는 성만 공개하겠습니다.)

오카짱과의 만남

2002년 5월 경부터 2005년 3월말까지 쿤은 교토의 유명 호텔에서 객실청소 알바를 했습니다.

2002년의 가을..
알바를 하러 갔는데, 신입 알바생이 들어왔습니다.

(호텔알바 출근했던 어느 날)
책임자 : 쿤아~ 오늘부터 같이 일할 오카자키 상이다. 특실 담당인원이 부족해서, 특실로 배속시킬테니까, 잘 좀 가르쳐줘~
   쿤    : 견습없이 바로 특실 배속이에요~~? (외소한 오카짱을 쳐다보며)상당히 힘들텐데 괜찮을까요~~??
책임자 : 단계를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시작해도 그려러니~ 하고 익숙해 질거다. 여자라고 꼬실 생각하지 말고 잘 가르쳐~~ 아!! 오카자키상은 영어도 좀 한다.. 고급인력이야..-.*b
오카짱 : 오카자키 OO 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게 오카자키(오카짱)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오카자키의 첫인상은 웃음이 없었고, 얼굴에서는 왠지 모를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쿤은 그런 오카자키를 데리고 다니며 특실 청소를 가르쳤습니다.

오카자키상. 오늘은 첫날이니까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제 뒤에 따라다니면서 제가 하는 행동과 움직임을 잘 보세요~그리고 내일은 직접 해 보시는 거에요..
예~ 알았어요..

그렇게 첫날의 연수가 끝났습니다.
오카자키는 첫 날의 연수로 전체적인 흐름을 알았다며, 내일은 직접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둘째 날이 되었 오카자키는 어제 본 대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쿤은 그런 오카자키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잘못된 부분만 수정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행동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왼손을 쓰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왼손으로 물건을 들거나, 왼손의 힘을 필요로 하는 일을 오른손으로 하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실에 들어가는 물품은 종류와 수량도 많아서 남자인 저도 한아름 끌어안고 두 번을 왕복해야하는데, 오카자키의 행동으로는 최소 4번을 왕복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었습니다.

쿤은 보다 못해, 오카자키의 행동에 간섭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카자키상. 한번에 많은 물품을 가져가는 것이 왕복 횟수를 줄일 수 있어요. 팔을 뻗어보세요..

쿤은 오카자키의 양팔에 객실 물품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물품을 올릴 때마다 오카자키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살짝 손이 닿거나, 팔에 충격이 가해질 때면 "아야(짧은 아픔의 탄식)"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습니다.

죄송해요.. 되도록이면 손이 안 부딪치게 조심을 하는 데 닿네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런 상황이 수 차례 반복되었고, 참다 못한 쿤은 오카자키의 왼쪽 손 목을 잡았습니다.
그 손목에는 자살을 하려했던 흔적과 손 바닥에는 칼로 그은 자국이 여러 곳 있었습니다. 쿤은 말 없이 그 손을 내려놓았죠.

오카짱의 성폭행 고백

한 동안의 침묵이 흘렀고, 쿤의 눈치를 살피면서 오카자키가 먼저 말을 했습니다.

오카짱 : 궁금하지 않아요?
   쿤    : 뭐가요?
오카짱 : 제 손에 있는 칼자국요..
   쿤    : 글쎄요.. 뭔가 사연이 있는 거 같은데, 제가 물어보면 그 때의 아픔이 생각날거 같아서 못 물어보겠어요.

(또 다시 침묵..)

오카짱 : 저~ 고 2 때 집에 들어온 40살 정도의 도둑에게 강간당했어요. 그 충격으로 자살하려 했는데, 미수로 그쳤답니다.


오카자키의 고2 당시, 오카자키의 집은 3층짜리 집이었고, 1층에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병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학교에 다녀와서 계단을 통해서 2층 집에 들어갔는데, 오카자키의 뒤를 따라 도둑이 들어왔다네요. 집에서 훔쳐갈 것을 찼다가 로렉스 시계를 건졌지만, 그에 만족하지 않고 현금을 내 놓으라고 했답니다. 집안의 현금 상황을 모른다는 오카자키의 말에 도둑은 오카자키의 방에서 몹쓸 짓을 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1층에 계시는 부모님은 전혀 그런 상황을 몰랐고, 오카자키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자살을 시도했지만, 미수로 끝났다고 하더군요.
쿤은 뭐라고 말을 해 줘야 할지 몰랐고 오카자키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말을 이어갔습니다.

오카짱 : 여자에게 있어서 첫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 추억이 되는지 알아요? 저에게 첫 경험은 40살 도둑이었어요. 악몽과 같은 시간이었고, 이후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죠.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놀림의 시선이 느껴져서 학교를 그만두었고, 제 나이 29에 지금까지 남자친구도 한 명 없답니다.

(---- 오카자키의 신세한탄 중략 ----)

   쿤    : 오카자키상.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첫키스를 말로 정의하자면, 오카자키상은 뭐라고 정의할 거에요?
오카짱 : 지금 저 가지고 놀리는 거죠?
   쿤    : 아니요.. 저는 지금 상당히 진지하답니다. 오카자키상이 생각하는 첫키스를 말로 정의해 보세요.
오카짱 : 움~ 남자와 처음으로 하는 입맞춤...? 그게 첫키스에요. 
   쿤    : 그래요?? 움~~ 그럼 오카자키상에게 있어서 첫키스의 상대는 40살 먹은 도둑놈이 아니라 아버지예요.
오카짱 : (어이 없다는 표정) 이거보세요. 내가 쿤상에게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아요? 외국인이라면,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저를 바라 볼 줄 알았어요. 근데, 첫키스의 상대가 아버지라고요? 어이가 없네요.
   쿤    : 생각해 봐요. 오카자키상 처럼 예~쁜 딸이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남자인 아버지가 입맞춤 정도는 하셨겠죠? 남자와 처음으로 하는 입맞춤이 첫키스의 정의라면, 오카자키의 첫키스 상대는 아버지가 되는 거에요..
오카짱 : (화가 나 있음) 그럼 제가 물어볼게요. 쿤상은 첫키스를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쿤    : 움~~ 오카자키상이 생각하는 정의와 똑같지만, 남자 앞에 '사랑하는'(남녀 간의 사랑) 이란 수식어가 붙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즉, 남자와 처음으로 하는 키스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와 처음으로 하는 키스.. 그게 첫키스인거 같아요.. 물론 저는 어디까지나 제 3자이고, 오카자키의 마음을 겪어보지 못한 남자라서 쉽게 말 할지도 모르겠지만, 성관계에 있어서 첫 경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거 아닐까요? 억지로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오카자키상은 아직 첫경험은 없다고 해도 되지않을까요? 좋은 남자를 만나서 진심으로 사랑을 하게된다면, 그걸 첫 경험이라고 봐야 할 거 같아요.


오카자키는 일을 하다말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참~ 어이가 없었죠. 내가 그런 말을 들려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궁금해 한 것도 아니었는데, 왜 이런 상황에 직면해야하는지 제가 더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오카자키는 호텔 알바에 나오지 않았답니다.
노심초사한 쿤은 청소 책임자 분께 오카자키의 근황에 대해 불어봤고, 사정이 있어서 알바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오카짱의 변화

그렇게 한달 남짓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오카자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오카짱 : 쿤상? 오카자키에요.
   쿤    : (뭔가에 한대 맞은 듯한 느낌) 아~ 오카자키상. 호텔에서 정말 미안해요. 화나게 할 뜻은 없었어요.
오카짱 :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니, 고마워요.
   쿤    : 고맙다뇨? 저 때문에 알바도 그만 뒀는데, 정말 미안해요.
오카짱 : 아니에요. 저는 쿤상 말에 다시 태어난 느낌이에요. 쿤상을 만나기 전까지 저는 늘 피해의식 속에서 살았어요. 그리고 이런 저를 보면서 사람들은 손가락질만 했답니다. 그 누구도 저에게 그런 말을 해 준 사람이 없어요. 쿤상 말대로 저는 첫키스도 첫경험도 없는 여자에요. 물론 그런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은 바꿀 수 없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피해의식 속에서는 살 수 없는 거 같아요.
   쿤    : 네???!!!! 그렇다면이야 다행이지만......
오카짱 : 참, 저 유학가기로 했어요. 예전부터 부모님께서 병원을 이어보라며, 미국 메디컬 스쿨 유학을 권하셨는데, 삶의 의미가 없다면서 거절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쿤의 말을 듣고 유학가겠다고 하니까 부모님이 굉장히 좋아하시면서, 쿤이 누구냐면서 감사의 말이라도 전해달래요.
   쿤    : 감사까지야..
오카짱 :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전화번호 바꾸지 말아요. 제가 일본으로 돌아오면 저의 변화된 모습을 들려줄게요. 그리고 일본 유학생활 여러모로 힘들다고 했는데요, 힘들다고 포기하거나 절대로 쓰러지면 안되요. 쿤의 이야기로 열심히 사는 사람이 있는데, 쿤이 쓰러지면, 오카자키도 쓰러질지 모르거든요.^^ 마지막으로 제 이름은 오카자키 OO이고, 가족이나 친한 친구는 오카짱이라고 불러요... 기억해 주세요..
   쿤    : 아!! 네~~


그게 오카짱의 마지막 통화였습니다.
그리고 8년의 세월이 흘렀고, 어제(12월 18일) 저녁에 8년만의 전화를 받은 것이죠.

오카짱의 8년만의 전화

오카짱은 일본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쿤에게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과연 연결될까~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불안함과 기대감을 가지고 전화를 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지난 8년간의 이야기를 전화로 들려주었습니다. 미국 생활이야기와 공부이야기 그리고 사는 것이 정말 재미있다는 것도 느꼈다고 하네요.
일본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일부러 한국을 경유하는 비행기를 탔고, 한국에서 스탑오버를 하면서 쿤이 태어난 한국을 3일간 경험했다고도 했습니다. 
쿤이 결혼했다는 말에 자기는 아직도 미혼인데 치사하다는 농담도 하더군요.
지나간 일에 얽매이면서 빠져나올 수 없는 자기 최면에 걸리기 보다는 죽을 각오로 열심히 사는 것도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고 합니다.
쿤의 말 한 마디에 자기의 아픔은 깨끗히 치유됐고, 새롭게 태어나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살겠다고 합니다.
이제 다시는 전화하는 일 없겠지만, 힘이 되어줘서 고맙다고 하네요..

전화를 끊고 나니, 쿤은 뭔가에 홀린듯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오카짱이 지난 8년간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알았습니다.

" 오카짱!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