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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일본인 남편이 한국인 아내에게 던진 복수의 한마디

두어 달 전 새롭게 시작한 한국어 강좌가 하나 있다.
20명이 훨씬 넘는 수강생의 대부분은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중년의 여성들이다.
남자 수강생은 딱 4명 뿐인데,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T 씨라는 일본인이 있다.

T 씨가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아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내는 일본에서 유학을 해서 일본어가 유창하지만, T 씨는 그런 아내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 싶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몸소 느끼고 싶어서 한국어를 배운다고 했다.

첫 날 수업이 끝나자 T 씨가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죽을 때까지 당신만을 사랑하겠습니다. ㅇㅇ씨!"

깜짝 놀라서 보니 , 한국인 아내에게 했던 프로포즈란다. 당시에는 이 여자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문법도 의미도 제대로 모르는 말을 외워서 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더듬더듬 글자를 읽을 줄은 알아도 모르는 의미가 더 많은 초급 학습자다. 

글자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T 씨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선생님, 바보가 뭐예요? "
"네? 바보요? 움~~ 일본어로 하면 바카(バカ), 간사이 말로 하면 아호(アホ) 정도예요.." 
"하하~~그랬구나.. 지금까지 매일 들으면서도 뜻을 몰랐네요..."
"매일 듣다니요??"
"아내가 저에게 화나면 바보라고 해요."


강의실은 이내 웃음바다가 됐다.

그 다음 주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T 씨는 메모된 것을 보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도~에지(ドゥエジ)가 뭐예요?"
"도에지요?  혹시, 돼지 말씀하시는 거예요?  돼지라면 일본어로 부타(ブタ)예요.."
"헉...그게 맞는 것 같아요... 돼지였구나..." (주먹 불끈)
"선생님, 그럼 '나가~~~'는 뭐예요?"
"아..데테이케~~~(出ていけ)?"
"아..'나가'라는 말이었구나. 손가락으로 문 가리키며 나가라고 하는데 못 알아듣고 문 쳐다봤더니..바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날은 그 전 주에 배운 자음과 모음을 가지고 읽기 연습을 했다.

여우, 여자.....

단어를 읽는데, 학생 중 한 명이 한국에서는 여우의 이미지가 어떠냐고 물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곰형 인간과 여우형 인간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 때, T 씨가 손을 번쩍 들더니,


" 선생님, 곰도 칠판에 좀 써 주세요. "
" 아, 네. 그러죠."


그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다음 수업에 나타난 T 씨는 내가 강의실로 들어서자마자 다급하게 말을 걸었다.


"선생님, 요즘 아내가 저랑 말도 안하고, 밥도 안 해줘요."
"아니, 무슨 일 있으세요?"
"지금까지는 싸울 때마다, 아내가 한국말로 해서 약올랐거든요. 그러다 이번에는 지난 주에 배운 한국어로 저도 반격을 했어요. "
"뭐라고 했는데요?"
"또, 바보라고 하길래, 한국어로 이 곰여자(헉, 그래서 곰을 물어봤던거야? 듣는 순간 정말 귀여운 반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의 발음은 이 고무요자 가까웠다.)~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잠시 깔깔대고 웃고는 얼굴 표정 바꾸고 방에서 나가더니, 밥도 안해주고 말도 안해요. 한국에서는 곰여자가 그렇게 심한 욕인가요?"

'그게 무슨 욕인가요? 이 미련 곰탱이야 정도는 되어야죠'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점잖게~~
"아무래도 동물취급을 받으면 기분이 좋진 않죠..이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제가 아름다운 한국어 많이 가르쳐 드릴게요."


그 날 수업이 끝나고 나는 T 씨의 화해 편지를 쓰는 것을 도왔다. " 사랑하는 나의 공주님~" (공주님이 발음이 안될텐데 라는 걱정을 하면서.. 나의 곤준님~T.T) 으로 시작하는 닭살 편지였다. 얼마 후, 화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다행히 읽지 않고 테이블 위에 놓았단다. 휴우~)  화해 소식을 전해주던 그 날은 T 씨도 기분이 좋았는지 한국인 아내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나는 감탄을 연발했다. 뒤이어 아내의 가족에게 받은 한국어 편지도 꺼내 자랑을 했다. 매우 사랑받는 일본인 사위이자 제부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짐작했던대로 그들의 부부 싸움은 애정이 가득한 사랑 싸움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