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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비로소 피부로 다가오는 일본 지진의 여파

일본 지진이 발생한 지 20일....

테레비를 통해 지진과 쓰나미의 무서움에 놀라고 떨었던 기억도 잠시, 나는 망각의 동물 '인간'을 증명이라도 하듯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나나 내 주변 사람들이 직접 그 피해를 입거나 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처음부터 너무 충격적인 장면을 봐서인지 웬만한 언론의 영상 매체를 통해서는 움찔하지 않을 만큼 간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한 동안은 매우 우울했던 적이 있다. 만약 극한 상황이 오면 무엇부터 할 것인지 쿤과 같이 이야기하던 날이었다. 그런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기만을 기도하면서 하루 종일 떨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내가 시나브로 무뎌지기 시작한데는, 내가 그토록 떨던 그 때에도 주변 일본 사람들은 너무 태연하다는 데 있었다. 걱정은 되지만 '이 곳은 멀어서 괜찮다', 라는 사람, '지진 나고 3일 만에 도쿄 출장도 다녀왔다', 라는 사람, 지진 발생 2틀 째인데 '일주일 후 손호영 생일 파티 겸 콘서트라서 한국 간다는 사람'......만나는 일본인들의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모습에 안도감을 내쉬고, 평상시처럼 일을 하다 보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었던 것 같다. 방상능 문제에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지진은 나와 그렇게 멀어지는 것 같았다.

일본 지진이 발생한 지 20일...지진의 여파가 내 주변인들에게도 미치기 시작했다.

거래처와 연락이 끊어진 아이다 씨

생선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아이다 씨, 거래처가 다 해변에 있다고 한다. 한번도 레슨을 빠지지 않던 사람인데 지진 이후 레슨을 빠지기 시작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지진으로 갑자기 거래처가 사라졌고, 심지어는 거래처 사람과 2주째 통화가 안되기 때문이란다. 할 수 없이 다른 거래처를 뚫어야 해서 출장이 잦아졌단다. 거래처 사람은 어떻게 된 거냐고 하니, 자기도 알 수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 전화를 한다는 거 자체가 '실례'가 될 것 같아 어느 순간부터는 연락조차 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보조금 받을 수 없어 일을 접은 하라다 씨

하라다 씨는 유치원 선생님이다. 어느 날, 보육원을 차린다며 분주히 뛰어나녔다. 일하랴 보육사 자격을 취득하랴 잠도 제대로 못 자는 것을 나는 작년부터 지켜봐왔다. 한신 지진으로 폐허가 된 적이 있던 고베의 일부 지역은 가게나 교육 시설을 세울 때 나라에서 보조금이 나온다고 한다. 하라다 씨는 큰 건물을 빌려서 보조금 신청을 하고 4월에 보육원을 오픈할 계획으로 진행중이었지만, 이번 지진으로 보조금 지급이 불허 되었다고..이미 유치원에는 퇴직을 고했고, 건물은 빌려놨고, 돈은 없고...설상가상, 진퇴양난에 빠졌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가게 문을 닫고 한국으로 간 친구

빚을 내어 동경에 큰 가게를 차린 한국인 친구. 요식업을 하고 있는데 물건 조달이 어려운데다 조달된다고 해도 방사능 문제가 있어, 아예 가게 문을 닫고 한국에 갔다. 가계세며, 장사 못해 얻는 손해하며..게다가 방사능에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간 배신자 취급까지 받는다니..속상해 죽겠다는 친구...가게가 잘되어 한국 갈 시간도 없다더니, 지금은 장기 휴식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4월에는 14일만 출근하는 우리 쿤

쿤에게 이번 지진으로 회사에 별 일 없냐고 물었을 때, 부품 거래처가 관동 지방에도 있어서 영향은 있는데 어떻게 될 지 모른다고 했었다. 그러더니 어제 회사에서 긴급 발표가 있었다. 관동 지방 쪽에서 부품 조달 문제로 일부 제품은 생산을 중단해야 하기 때문에 4월 부터는 토일 외에 평일 중 하루를 더 쉬라는 것이었다. 제품 생산도 중단된 마당에 연구원들의 실험과 평가가 웬 말이냐는 것이 주요 이유였다. 
 (다행히 아직은 월급이 깎이거나 하지는 않는단다. 하지만...이후는..알 수 없으니 불안하다. ) 4월 말에서 5월 초까지 골덴위크로 또, 15일 정도를 쉬는 쿤은..이렇게 회사에 다녀도 되는 건지...라며 불안감으로 인한 쓴 웃음인지 일단 노니까 좋다는 진짜 웃음인지..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두어달 전 두 곳의 출판사에서 우리 블로그 이야기를 출판해보고 싶다며 연락해 왔다. 한 곳은 반응이 약간 미지근했지만, 다른 한 쪽은 적극적으로 컨셉 진행에 대해 의논해왔다. 그런데 이번 지진으로 한 곳은 아예 연락이 없고, 다른 한 곳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고 했다. 이 또한 기약없는 약속이 되어버린 것이다.

음식점이나 편의점, 슈퍼 등에는, 관동 지방의 지진으로 재료나 상품이 유입되지 않아 죄송하다고 써 붙인 글귀를 여기 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또, 숙박 업체는 여행객이 줄어 한숨만 쉬고 있다고..(지금의 문제는 일본 및 한국 그 외의 국가에까지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 있는 여행사, 항공사, 그 외에도 한 일간 사업을 하는 개인 사업가, 크고 작은 기업.....환율의 영향, 그로 인해 물가의 영향을 받는 서민.....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방사능...T,.T

잠시 둔해졌던 나의 걱정은 다시 시작될 것 같다.  
모쪼록 큰 피해없이 지금의 이 시련을 극복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