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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일본 지진 후 이틀 간 우리는...

지난 11일..
지진과 쓰나미가 있었던 지역으로 부터 수~백 키로 떨어진 곳에 사는 나는, 한국 언론에서 떠들어 댈 때까지도 지진과 쓰나미가 온 줄도 몰랐다. 블러그 이웃 님이 걱정 댓글을 남겨주셨을 때도 여유롭게 과자를 먹으며 '일본 원래 자주 그래요..^^ ' 라고 답글을 달았고, 외출 준비를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티비를 틀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볍던 기분이 불길함으로 다시 공포로 바뀐 그 순간, 한국으로 부터 전화가 빗발쳤다. 회사에 있는 쿤에게 문자를 보내고, 가까운 가족들에게 전화해 안심을 시켰다. 한 시간 후에 쿤에게 전화가 왔는데 전혀 상황을 모르고 있었고, 이상해서 휴대폰을 살펴보니 쿤에게 보냈던 문자에 발송 실패라는 표시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오후에는 친구와 약속이 있었던 나는 시내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 티비에서 봤던 영상이 거짓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었다. 평온한 지하철, 시끌벅적한 쇼핑몰, 용무로 분주한 사람들...10여년 전에는 이 곳 역시 지진의 큰 피해를 겪었던 지역이기에 그 평범한 그 모습에서 과거의 아픔을 교차시켜보았다. 동시에 같은 시각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떠올리고는 생의 극과 극을 느끼며 상념에 젖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갔는데, 친구들이 없었다. 약, 한 시간을 배회한 후 간신히 친구 한 명과 만났는데, 알고 보니 4시간 전에 '약속을 취소한다'는 문자를 2번이나 보냈다는 것이었다. 내가 대답이 없자 그 뒤로도 문자를 두어 번 더 보냈다고 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친구에게 '지금 나가고 있다' 고 문자를 보냈고, 그 문자를 제대로 받은 친구는 집에 가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친구와 한참 지진과 쓰나미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친구가 보냈다는 문자 4개가 일시에 도착했다. 4시간 30분만이었다.

문자 뿐만이 아니었다. 낮부터 동경에 사는 친구가 걱정이 되어 전화를 시도했지만, 아무리 해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몇 번을 걸어도 음성으로 조차 넘어가지 않았고, 나중에 다시 걸라는 말만 반복되었다. 문자를 보내도 오류 메시지와 함께 되돌아왔다. 새벽이 지나 겨우 친구랑 통화가 되었다. 집을 떠나 안전한 지역에서 대기 중이라고 했다. 한국 가족들하고는 아이폰 카카오톡(?)으로 연락하고 있다고 했다. 유일하게 그것만 연결이 되어 연락이 되더란다. 알고보니 금요일 내내 전화고 문자고 원활하게 소통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패닉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쿤 친구 중 한 명은 지하철에 4시간이나 갇혀 있다가 '죽음'을 목전까지 경험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전화 상태가 안 좋다보니, 그나마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인터넷이었는데, 금요일부터 너무 느려져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인터넷 전화 역시 연결되었다 안 되었다 그랬다. 그래도 걱정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을 위해 놓을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티비를 통해 뜬 눈으로 밤을 새며 상황을 지켜 보았다. 봐도 봐도 믿겨지지 않는 것들 뿐이었다. 자연의 무서움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다시 한번 느꼈다. 어제는 상황이 조금 진전되어선지, 흘러간 집터에서 가족을 찾는 사람, 가족과 만나 우는 사람, 형태조차 찾기 힘든 쑥대밭같은 마을을 넋나간 듯이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연이 할퀴고 간 아픔은 가볍게 끝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베 한신 지진의 아픔을 여전히 안고 사는 이 곳 사람들처럼 말이다. 

여전히 몇 만 명의 사람들이 피난 장소에서 물과 화장실이 부족해 고생하고 있고, 지원 또한 원활하지 못하여 추위와 배고픔과 싸우고 있다. 자연 재해에서 목숨을 건지고도 그 이후 지병과 돌림병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던 지난 지진의 뒷이야기가 자꾸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직도 알 수 없는 원전에 대한 공포, 화산 폭발....무섭다.

사람 마음이 다 같은 것은 아닌지, 여러 가지 소문이 난무하고 있기에 걱정이 된다.
일본 방송에서는 '참 많은 정보가 떠돌고 있지만, 정부와 공적 기관이 발표한 것만을 믿고 냉정한 판단력을 놓치지 말 것' 을 거듭 당부하고 있다.

자연 재해의 공포가 사라지기도 전에, 더 무섭고 잔인한 것이 인간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지울 수 없다. 할퀴고 간 자리에 상처를 더하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구조 활동이 계속되는 가운데, 생사가 확인 안 된 사람들의 수를 셀 수 없는 상황이다. 어제까지 연락이 안되어 불안하다고 고백하던 이웃, 독자 님들의 말이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기쁜 소식이 전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오늘은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았지만, 무엇이라도 써서 살아 있음을 남기라는 말에 끄적여 본다. 볼 수록 힘만 빠지는 티비를 끄고 잠시 쉬어야 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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