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쿤의 일본 유학기

일본 대학에서 아닌 것을 아니라고 했다가 눈총받은 사연

대학에 다니다 보면 학기초에 수강신청을 합니다. 학교에 따라 다르겠지만, 1학기 때 1년치를 신청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학기마다 신청하는 학교도 있습니다.
한국과 다른 일본대학의 수강신청을 말하자면, 한국은 인터넷 신청이 대세이지만, 일본은 아직도 OMR 용지에 일일이 수강번호를 적어서 신청하는 학교가 많다는 점일 것입니다.

대학교 3학년 때...
교양과목 학점이 하나 모자르던 상태였던지라 뭘 들을까 망설이고 있는데, 같은 한국인 유학생 형이 쿤에게 괜찮은 과목이 있다며, 추천을 해 주더라구요.

쿤아~~ 계절학기(일본명 : 여름집중강의)에 철학 수업 어떠냐..?? 이 수업은 수업을 듣고 마지막에 레포트 하나 내면 되는데, 그 레포트도 벌써 수~년째 주제가 똑같다더라.. "죽음이란 무엇인가..??" ㅎㅎ 어때..?? 들을 거 없으면 이거나 듣자...

계절학기라...
철학의 계절학기 수업 커리큘럼을 보니까, 300엔인가 500엔짜리 책 한권이 교재였고, 수업 내용은 세상 사는 이야기였던지라 옛날 이야기 듣는다는 마음으로 들으면 괜찮겠다 싶습니다. 게다가 하루 6시간 씩 일주일(5일)만 들으면 되니까 수업의 조건으로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등록을 했었죠..

그리고 8월의 계절학기 시즌이 돌아왔고, 한국인 유학생 형과 같이 강의실에 갔었습니다. 약 200명은 족히 넘을 학생들이 있더군요.. 계절학기로 인기있는 수업인 것 같았습니다.

50대의 교수님이 수업을 시작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번 계절학기에는 지금까지 해 오전 수업을 조금 바꿔보려합니다. 지금까지는 수업을 하고 마지막에 레포트를 내는 것으로 평가를 했는데요, 올해는 레포트 대신 시험을 보려합니다. 그리고, 교재도 다른 책으로 바꿔보려 합니다. 이미 책을 사신분들은 서점에 가셔서 책을 바꾸도록 하세요...

레포트에서 셤... 게다가 교재도 바꾼답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강의실이 술렁거렸지만, 그 누구도 불만을 말하는 이가 없었습니다.(절대로 나서지 않는 일본 학생들의 특징이죠).  그 때,,!! 앞에서 세 번짼가 네 번째에 앉았던 쿤의 손이 살짝 올라갔습니다.(내 손이 왜 맘대로 올라가지..??)

교수님..!! 어떤 이유로 평가 방식과 교재를 바꾸시는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옆에 있던 형이 괜히 긁어서 부스럼 만들지 말고 앉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쿤은 따질 건 따져야 겠다는 생각에 말을 이었습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계절학기의 커리큘럼을 보고 이 수업을 등록한 사람들입니다. 과목명, 수업하는 교수, 교재명, 수업내용, 평가방식등 커리큘럼에 나와있는 것을 보고 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즉, 그 커리큘럼은 도장만 안 찍었지, 공인된 계약서와도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첫날 첫수업의 첫마디가 교재와 평가방식을 바꾸신다고 하셨는데, 엄밀히 따지면 계약위반 아닌가요..??

(사진은 일본 대학의 커리큘럼의 한 예로 본문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강의실이 썰렁해 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교수님이 답변을 하시더군요..
 
수업에 관련된 내용은 바뀔 수 있습니다. 교수의 재량이라 할 수 있죠. 질문을 한 학생은 외국인인거 같은데, 일본의 문화라고 생각해 주면 어떨까요..?

쉽사리 남득은 되지 않았지만, 일본 학생들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순간, 내가 말을 꺼내고 바보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교수님은 말을 이었습니다.

외국인 학생의 의견도 있었으니 이렇게 하겠습니다. 시험 한번으로 평가를 하지 않고, 매일 같이 15분 정도의 쪽지 시험과 레포트로 하겠습니다. 쪽지 시험은 출석의 의미로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재는 오늘 알려드린 교재로 바꾸겠습니다.

헉...!! 매일같이 쪽지 시험을...??  (그건 아니잖어~~)
교수님의 말씀이 끝나자 400개 눈의 시선이 저를 노려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i~c 그냥 조용히 있을 껄~~).

결국 빡시게 수업 받고 쪽지 시험보고, 게다가 장문의 레포트까지 썼는데, 제가 받은 학점이란 바로....C

아닌 걸 아니라고 했다가 눈총받았던 것은 물론 완전히 개피 본 상황이 된 거죠... c$ ( ←말 뜻을 아실런지...-- )

철학의 C 학점은 대학 교양과목중에서 유일한 C 였습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시면 무조건 따르고, 설사 학생이 의견을 낸다 하더라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은 한국과 다르지 않더군요. 용기를 내어 의견을 말한 제가 죄인이 되고 눈치까지 봐야하는 상황을 보면서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한국보다는 좀 덜하지만 교수님의 보수적인 사고 방식이나 권위 주의는 이후 유학 생활에서도 심심치않게 겪을 수 있는 일본 대학의 모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