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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사는법

내 남편의 기억력 극과 극을 경험하며...

내 남편(쿤)의 별명 중 하나는 '인간 계산기' 이다.
쿤의 유학기를 보신 분들은 이미 알겠지만, 쿤은 숫자에 대한 계산이 빠르고 능숙하며, 수학(본인은 산수란다)도 굉장히 잘한다. 없는 형편에 나 홀로 유학을 하며 터득한 쿤만의 생존전략의 하나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초딩때부터 산수를 아주 잘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쿤은 숫자 기억을 놀랄 만큼 잘한다(다다다 기준일지도).

가계부를 쓰는 쿤은, 어떤 물건을 사고 영수증을 받지 못해도 몇 시간후에 용케도 그 가격을 기억해낸다. 그 정도 쯤이야~ 라고 말 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물건의 가격을 기억하는 게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유는 소비세가 포함되면서 1엔 단위까지 숫자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번은 같이 마트에 가서 이것 저것 물건을 사는데, 계산할 때 갑자기 쿤이 계산원에게 한 마디를 한다.

" 양파 이거 198엔이던데 왜 258엔으로 계산하시죠? "

알고보니, 진열대와 계산대의 가격이 일치하지 않은 것을 잡아낸 것이다.(쿤보다 먼저 산 사람들은 60엔씩 더 주고 샀다는 말이 된다.) 


쿤은 날짜도 아주 잘 기억한다.

예를 들어 여행에 대한 대화가 시작되었을 때 쿤과 다다다를 비교해보자.

다다다 : 한 2~3년 전에 우리가 이스라엘하고 요르단에 다녀왔는데요. 
          그때 전쟁이 났었대요.

            
쿤       : (다다다가 말한 후 덧붙이길) 정확히 말하면, 2008년 12월 28일에 대한항공을 탔는데,
            전날 이스라엘이 가자를 공격했다는 걸 비행기에 타고 신문을 보면서 알았죠.
            이거 다시 집에 가야 말아야 하나~~ 어쩌구 저쩌구~~

옛날 추억을 이야기할 때를 보자.

다다다 : 내가 일본에 처음 온 건 대학교 졸업하고니까 20대 중반 쯤 되었을 때지...아마..

쿤       : 아직도 기억나. 내가 일본에 처음 온 건 1998년 3월 31일 10시 30분 아시아나였지.

쿤은 빡빡한 스케쥴속에 살면서도 다이어리가 없다. 그 모든 날짜와 시간, 약속 장소와 내용등을 머릿 속에 기억하고 다닌다. . 

또, 티비에서 우리나라의 '세계테마기행'과 같은 방송이 나오면 순간적인 화면만 보고도

" 아~~ 나 저기 알아. 그때 우리 프랑스에서 지나갔던 그 골목? 이잖아. 노틀담 그 옆길...알지알지?"

심지어는 첨탑의 끄트머리 혹은 어떤 건물의 측면만 보고도 단번에 어디인지 금방 알아낸다.
하지만 당시 동행자 다다다는 모른다. 눈을 씻고 봐도 본 기억이 없다. 사진에 찍힌 나의 모습을 보면서도 의심을 한다. 내가 가긴 갔었나 본데... 아흑..

쿤이 퇴근하면 항상 다다다에게 전화를 하는데 그때 하는 말은 항상 이런식이다.

"지금부터 집에 가면 7시 12분 +/- 2분 정도에 도착할거야."

쿤의 회사에서 집까지는 45km의 거리이고, 차로 달리면 1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라한다. 근데, 처음에 말한 시간에서 정말로 전후 2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질 않는다. 가~끔 늦는 날이 있어서 전화를 하면, 집앞에 있는 철도 건널목에 걸려서 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단다.



그런데 그런 쿤에게도 단점이 있었으니, 사람과 이름을 잘 기억 못 하는 것이다.. 아니 사람과 이름을 각각 알고 있으면서 매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인물일 경우 그 정도는 심각해진다.



                              http://movie.daum.net/tv/detail/main.do?tvProgramId=43001
                                맨 오른쪽 뽀글이 남자가 '오마에('너'의 막말)' 라고 부르면 '오오마에데쓰(오오마에예요)'라고
                                이름을 수정하는 그 대사가 참 유명한 드라마죠.


위 드라마는 쿤과 다다다가 매우 재미있게 본 드라마 중 하나이다. 일본에서는 2007년 방영했지만 작년에 다시 재방송을 해주었다. 재방송까지도 꼭꼭 챙겨보며 이미 다 아는 내용에 다시 배꼽을 쥐고 웃을 만큼 쿤은 저 드라마와 주인공 배우(시노하라 료우코)를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니 정확히 말해서 재방송을 본 그 다음날이었다.
CF에서 시노하라 료우코의 화장품 광고가 나오자 쿤이 매우 심각하게 티비를 보면서 그런다.

" 어~~~이상하다. 어디선가 많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단 말이지..."

"어제 봤잖아. 파견의 품격에서~~"

"아~~ 저 여자가 그 여자야?..."


또 어느 날, 어디서 봤는지 '아야세 하루카'가 너무 이쁘다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며 다다다의 속을 긁었다.


                                               http://horipro.co.jp/talent/PF061/


그날 저녁 마침, 쇼프로그램에 '아야세 하루카'가 출현했다. 불과 몇 시간전까지 저렇게 깜찍한 배우가 다 있었냐고 난리를 치던 '아야세 하루카'를 보더니 쿤이 하는 말..

" 쟨 누구야? 오호~!! 좀 귀여운데........"

" 뭐?? 아까까지는 이뻐서 팬클럽까지 한다며??? "

"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쟤를 보고??? 그럴리가~~ 난 지금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처음에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배우도 아니고 " 깜찍하다" 고 이제부터 "팬"이 되겠다고 노래를 부를 땐 언제고 그새 까먹은 것이다.
하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나도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았는데, 아마, 여자 배우들의 특징이 그렇듯, 자주 바뀌는 헤어 스타일과 화장,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미지가 다양하다보니 헷갈려서 그러는 것 같다.


아무튼, 그 와중에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천만다행인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다다다는 한 눈에 알아본다는 것이다.
쌩얼 다다다, 변장한 다다다, 머리 자른 다다다, 파마한 다다다, 추리닝 입은 다다다, 멀리 있는 다다다
다다다가 어떤 모습을 보여도 쿤은 다다다를 알아본다. 

어떤 영화를 보니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리고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리는 여친?에게 자신을 기억시키기 위해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하던데(첫 키스만 50번째??)... 다다다 만큼은 철썩같이 잘 기억해주니 안도의 한숨으로 가슴을 쓸어내리지 않을 수 없다.

이쁜 여배우가 나와 '이쁘다' 고 하면 속이 쓰리다가도 쿤의 여배우 기억상실증을 생각하면 이제는 " 실컷 좋아해도 돼" 라는 여유를 부리는 다다다..

" 그리고 다 잊어버려도 좋다~~나, 바로 나!!! 다다다만 기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