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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의 일본 유학기

일본유학 알바로 또 한명의 어머니가 생겼습니다.

오랜만에 일본유학 이야기 올립니다.
오늘 드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일본에 와서 두번째로 시작한 알바 그리고 그때 맺어진 소중한 분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메일을 주셨습니다.

쿤님은 능력이 있어서 페이가 센 알바를 하신거 같은데요,
가장 시급이 적었던 알바나, 다른 분들이 많이 하는 일본유학의 일반 알바 이야기가 듣고 싶어요.


일본에 유학와서 6개월 정도가 지났을 시기에 지인의 소개로 한국분이 경영하는 야키니쿠 가게에서 알바를 하게 되었습니다.(그 야키니쿠의 오픈멤버였습니다.) 시급은 800엔이었답니다. 주 4회~ 5회, 근무시간은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9시간,,, 테이블 5개의 비교적 작은 가계였지만, 고급의 이미지가 풍기는 곳이었죠. 주인 아주머니(한국인이심 이하 마마)와 알바생 두명이 하루 9시간 씩 일을 했습니다. 시급에 대한 불만요? 버벅대는 일본어를 구사하던 쿤이었던지라 일을 하게 해 주신 것에 감사했습니다.

시급은 적었지만, 야키니쿠 알바를 6년 넘게 했던 이유

다른 알바는 시급 1,000엔부터 가장 비싼 것은 2시간에 3만엔짜리도 했었는데, 왜 시급 800엔 짜리 알바를 거의 7년 동안 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유학을 하시거나 집을 나와서 혼자 사시는 분들은 끼니 해결의 번거로움을 아실 겁니다. 쿤 역시 먹는 것에 대한 귀차니즘이 있었던지라, 한번의 알바로 2회의 식사 해결이 가능했다는 것은 1석 2조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다른 일본인 가게는 식사비로 300~400 엔을 공제하지만, 제가 일했던 곳의 마마는 그런 쪼잔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정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알바하는 가게였지만, 제 가게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사소한 일에 인정을 받았다.

야키니쿠의 알바에서 주방을 담당하다 보면, 요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설거지나 야채 다듬는 것은 물론이고, 주방청소나 냉장고 청소도 합니다. 때로는 환풍기와 에어컨도 떼어서 닦기도 하고, 화장실 청도도 하고, 하수도 청소도 해야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당연히 해야할 일이지만, 대부분의 알바생들은 기피하거나, 내일 나오는 사람에게 떠넘기기 십상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케케묵은 냄새도 나지만, 누구하나 나서서 하질 않더라구요.
그러던 어느날 주방에서 엄지손가락 만한 바퀴벌레를 발견했습니다. 일본와서 처음 보는 무지막지한 바퀴벌레를 보고 심장이 멎는 줄 알았지만, 밥 먹는 식당에서 바퀴벌레라니... 마마에게 이야기를 하고 주방 구석구석에 약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손님이 없거나, 밤 12시가 넘어가는 늦은 시간이 되면, 쿤은 하나하나 청소를 시작했습니다.(같이 일하는 또 다른 알바생이 인상파가 되었지만, 나이로 눌러버렸죠) 그랬더니, 마마가 그럽니다.

"그래.. 청소하라고 말 꺼내기가 미안해서 못하고 있었는데, 알아서 해 주니까 고맙다."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야키니쿠 알바생은 총 5명 있었습니다. 한국인 유학생이 2명 조선족이 3명이었죠.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가 알바시간이었고, 알바생들은 타임카드를 찍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쿤은 항상 시작 5분 전에 알람을 맞춰놓고 타임카드를 찍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도 밥을 먹고 가자는 마마의 말에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새벽 3~4시가 되는 것은 금방이었죠.. 그래도 타임카드는 새벽 2시 경에 찍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제외한 알바생들은 가게에 발 디디면 타임카드 찍고, 알바가 끝나는 2시 이후의 밥 먹는 시간, 잡담하는 시간을 다 보내고 나서 타임카드를 찍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하지만 저는 밥까지 먹여주고, 음료도 공짜로 먹으며 이야기 하는건데, 그 시간까지 넣어 카드 찍는 것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한번은 손님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바람에 카드 찍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녁 8시 쯤(3시간 후)이 되어 카드를 안 찍었다는 것을 알았죠. 타임카드 제때 못 찍은 제 잘못이라는 생각에 저녁 8시에 찍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월급을 계산하시면서 마마가 묻습니다.

쿤아~ 니 왜 저녁 8시에 카드를 찍었니? 그날 늦게 왔니?
늦게 온 건 아닌데요, 제가 좀 띨띨해서 카드 찍는 거 잊었어요.
다음부터는 볼펜으로 적어라~ 니는 출근카드 늦게 찍고, 퇴근카드 일찍 찍어서 손해 보는 것도 많을텐데, 이런데서까지 손해 보면 안 된다.
예~ 다음부터는 잊지 않고 찍을게요.

물론 3시간 손해 본 것과 그 이상을 월급으로 주셨습니다. 공돈이라는 생각에 아이스크림도 사서 나누어 먹고, 어버이날에는 카네이션도 사다드리고, 생신 때는 작은 꽃도 가져다 드렸습니다. 그럴 때 마다 유학생이 무신 돈이 있냐면서 꾸중하시면서도 그 꽃들이 말라서 비틀어질 때까지 보관해 주시고, 먹을 것도 챙겨주시면서 집에 가서 출출할 때 먹으라고 하시더군요.

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일본에서 양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3년 정도 일을 했을까요? 새벽에 일을 마치고 가려고 하는데, 마마가 술을 한잔 달라고 합니다.(피곤해 죽겠는데, 술을 드시네...) 소주 딱~~ 한잔만 하고 가자고 했는데, 이야기 하다 보니 한병을 다~ 드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쿤아~ 니는 꿈이 머냐~?
꿈요? 착한 남자요..^^
콱!! 내 안 취했다.  니~ 내 딸(미국유학중) 알지..
니를 잘 따르는 거 같더라..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니~ 내 딸 잘 꼬셔서 결혼하지 않을래?
(옴마야~) 결혼요?? ㅎㅎ 저 같이 능력없는 놈 어딜 보고 그런 말씀을...
그래, 니가 지금은 능력없을지 몰라도, 나는 니 미래가 보인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마마, 지금 취하셨어요. 내일 아침에 일어나시면 지금 하신 말 후회하실 걸요??
그래, 고만 가자~ 그리고, 취한 김에 한 마디만 더 하자. 니는 박사 받을 수 있으면, 박사 받아라. 그러면, 한국에 교수자리 하나는 얻어 줄 수 있다. 대학 기부금 같은 거 걱정마라. 대신 내 아들 아니면, 사위 된다고 생각해야 한다. 알았재?

 
그 전부터도 그랬지만, 마마는 물심양면으로 쿤을 챙겨주셨습니다. 대학 4학년이 되면서 졸업논문으로 시간이 없어서 알바를 못하게 될 상황이 되자, 마마는 주 1회 토요일에 오라고 합니다. 남자 혼자 살면 제때 못 먹는다, 아들이 굶는데 애미가 그 꼴을 우째 보겠냐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또 다른 유학생이 이런 말을 합니다.

"마마가 참 이상해요. 매~주 금요일만 되면, 육계장 해야 된다, 고기좀 더 시켜라, 김치 담궈라, 깍두기 하자.. 매~번 뭔가를 더 하고, 그걸 토요일에 형이 오면 먹어요."

가슴 구석에서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았답니다.

2005년도에 교토에서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쿤은 매년 연말이 되면, 가게 대청소겸 망년회에 초대되었습니다. 밤 10시부터 새벽 3시 정도까지 대청소를 하고, 아침까지 먹고,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답니다.
그리고, 마마는 쿤이 결혼을 할 때, 축하한다는 말을 안 하신 분입니다.(딸과 결혼하라는 말이 정말이었나..??)

그런 마마가 작년에 일본 생활을 청산하시고, 한국으로 영구 귀국을 하셨습니다. 딸이 미국에서 학업을 마쳤기에, 더 이상은 일을 안해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하셨기 때문이죠. 재산은 어마어마하게 많았지만, 자식이 어머니 이야기를 할 때, "어머니는 먹고 논다"는 말을 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로 가게를 운영하셨던 겁니다.(세상에는 말 못할 사연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포스팅하자니 생각도 나고 해서 오늘 한국에 계신 마마에게 전화를 넣었습니다.
쿤에게는 '우리 아들' 이라고 하고 다다다에게는 '우리 며느리' 라는 말을 쓰십니다.
저랑 통화를 하시다가 잠시 다다다를 바꾸어 달라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 아들 내가 쿤박사 만들지 못한 게 한이다. 지금은 돈 번다고 저러고 있지만 언젠가 내가 박사 만들끼다. 며늘아가 우리 아들 잘 챙겨줘서 고맙대이~! 엄마가 여거서 너네 손주 낳으면 다 와서 잘 수 있도록  큰 집 짓고 있으니 어여 하나 안겨주라."

일본유학 알바를 통해서 저는 또 한분의 어머니가 생긴 것입니다.

유학은 새로운 인생 도전이며, 도전은 경험을 만들고 사람과의 인연을 맺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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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바에 대한 포스팅을 한 것을 보고 어떤 분은 그러더군요.

"요즘은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 포스팅 도움 안되거든요. 자국민 챙기느라 유학생은 뒷전이죠"

그냥 한번 웃고 말았습니다.(그렇게 말하면, 경기 좋을 때 온 유학생은 100% 다~ 성공했어야 합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죠.)
능력있는 외국인이 있는데, 자국민 챙기겠다고 능력이 떨어지는 자국민을 쓰는 기업이 있을까요? 경기가 좋고 알바 자리가 많다고 해서 알찬 유학이 되고 소중한 인연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알찬 유학을 만드는 것은 본인 자신이며, 환경과 조건만으로 지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 환경과 조건이 열악할 수록 그것을 딛고 일어섰을 때의 결실과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주어진 환경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유학의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고 확신합니다. 일본 유학 중이신 분들 뿐만 아니라, 유학을 준비하시는 분들은 자신의 마음 가짐부터 살피고 다지실 것을 거듭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