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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의 일본 유학기

일본유학 알바에도 한일전은 있다.

유학을 하는 나라에서 알바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나라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유학을 하는 수 많은 나라중에 일본은 알바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나라 중 하나다. 학기중에는 주 20시간, 방학 때는 주 28시간의 알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학생은 생활비와 학비문제를 생각하고, 부모님의 지원부담을 줄이고자 그 이상의 시간을 알바에 투자한다. 쿤의 경우 주 60~70시간 했던지라, 20시간이니 28시간이니 하는 시간의 설정은 의미가 없는 시간이다.
(공부 안한고 알바만 했냐고? 공부도 열심히 했으니 걱정은 안해도 된다.)

쿤이 쓰는 글을 보면서 일본 유학을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 유학문의 메일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고, 메일에는 일본 유학 내용에 대해 더 포스팅을 해 달라는 분들도 있다. 그 분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 중에 하나가 알바다. 어떻게 알바를 구하고, 어떤 일을 할 수 있으며, 한국인이라 차별은 없는지, 월급은 제때 나오는지, 이런 저런 알바를 하고 싶은데, 시급은 어떻게 되는지,,, 그 질문도 가지가지다. 그런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하다보면, 포스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알바 관련 글을 올린다.

알바에 굶주린 한국인이 모였다. 

1999년 봄...
일본에서는 포켓 몬스터가 대유행을 했었다. 삐카츄의 10만 볼트의 전기공격 모습에 일본의 어린아이들이 광기로 병원에 실려가는 것이 심각한 문제였다.(삐카츄~~ 10만볼트다~~ 찌리릿~~)

그 시기에 단기 알바가 하나 들어왔다. 일의 내용은 포켓몬스터 카드 섞는 작업..!!!
4장 단위로 인쇄된 카드를 48장 한 묶음으로 섞는 작업이었다. 작업량은 무려 30만장...!!!!!!!
쿤도 소개 연락만 받고 갔던지라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랐다...(오호~~ 단기라고 해도 한달은 버티겠는데~~ㅋㅋ)

   쿤    : OO 씨한테 소개받은 쿤입니다.
담당자 : (악수를 하며) 반갑습니다. OO 씨가 어지간해서는 사람 소개를 안하는데, 책임감이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쿤    : (으쓱하며)별 말씀을 다 하세요~ 근데 제가 할 일이 뭔가요??
담당자 : (얼굴 표정을 바꾸며) 사실은 저희가 좀 상황이 급합니다. 하는 일은 간단한데 일손이 부족해요. 
   쿤    : 일손요? 어떤 일이기에...
담당자 : 포켓몬 카드 섞는 작업이에요. 4장 단위로 인쇄된 카드를 48장 한 묶음으로 섞는 작업인데, 30만장을 16일 안에 끝내야 해요.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15명 정도는 모였는데, 그 인원으로는 택도 없는 상황이랍니다.
   쿤    : 제가 15명 정도는 데려올 수 있는데요.
담당자 : (구세주를 만났다는 얼굴로)그래요??? 내일부터라도 시작할 수 있을까요? 
   쿤    : 예, 일단 내일까지 15명 정도를 모아보겠습니다.

쿤은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한국인 유학생들이었다.

난데, 알바 들어왔다. 단기전인데 카드 섞는 작업이래. 애들 많으면 좋다니까 니가 2명만 책임져라~

혼자 모으자니 벅찬 감이 들어서 5명에게 전화를 해서 2명씩만 책임지고 모으라고 했다. 비상연락망 가동이었다. 다음날 예정된 시간에 모여보니 11명 밖에 없는 것이었다. (아뿔싸~~ 4명이 다른 사람한테 연락을 받아서 겹치고 말았던 것이다.)
시간이 없어서 일단 11명이 알바를 하는 곳으로 갔다. 담당자가 무지 놀란다. 인원이 많아서가 아니라 모인 사람이 전부 한국인 일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단다. (쿤도 상대가 일본 사람이라는 걸 잊었다. 흐미) 담당자는 카드 섞는 작업에 국적이 무슨 소용이냐며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이 안 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기가 수소문 했지만, 두명 밖에 못 모았단다. 총 13명...
알바비의 설명을 들은 후 바로 일을 시작했다. 폭 30센치, 길이 5미터의 컨베어가 두개있는 창고였다. 카드 섞는 방법, 컨베어 가동법, 창고 사용방법 등 설명이 이어졌고, 해 보라고 한다. 13명은 머리를 맞대고 효율성을 올리기 위해 아이디어를 짰다.

<작전>
컨베어를 하나만 쓰고, 그 하나의 컨베어를 6명씩 마주보고 서서, 각각의 멤버가 4장의 카드를 담당한다. 
자기 앞에 지나가는 카드위에 자기가 담당하는 카드를 쌓아 올리고, 마지막 사람이 48장씩 쌓인 카드를 긁어 모은다.

처음하는 작업이다 보니까 손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2시부터 8시까지 작업을 했지만, 4000 장도 못했다.
담당자의 얼굴이 굳어졌고, 착잡한 심정으로 말을 잇는다. 

담당자 : 또 다른 그룹은 15명이 7000 장 정도 했습니다. 이 상태로는 16일 안에 하는 것은 도~ 저히 무리인것 같아요. 사람들 더 모아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런데, 30만장 섞는데 할당된 돈이 정해져 있습니다. 300만엔 정도랍니다. 30명이 작업을 하면 1인당 10만엔 정도에요. 사람이 많아지면, 일의 양도 줄고 받는 금액도 줄어들겠죠.. 그래도, 저희로서는
(이때, 담당자의 말을 끊는 한국인 유학생이 있었다.)
용감남 : 야~ 우리가 오늘 처음이었는데, 시작할 때랑 비교하면 많이 익숙해 졌잖아. 2~3일 정도만 하면 하루 만장 이상은 할 것 같지 않냐?
(다른 유학생도 동의하고, 3일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해서 안 되면 그때 더 모으자고 했다.)

첫 날은 이렇게 끝났다. 일을 끝나고 나오면서 또 다른 그룹은 어디서 일하는지 물어봤다. 옆 건물에서 일하는데 전부 일본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헉,,, 일본애들이라고??? 왠지 모르게 끓어오르는 이 사명감이란...)


카드 섞기에도 한일전이 있다?? 

둘째 날.. 한국인 유학생들은 또 다른 그룹을 의식하고 있었다. 일본인이라는 점,,두 사람이 많다고는 하지만, 우리보다 빠르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카드 섞기에 같은 카드가 2장 들어가는 불량을 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손놀림은 빨라져갔다. 처음에는 카드와 카드의 간격이 30센치 정도였던 것이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2~3센치의 정도로 좁혀져 있었다.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 한계를 넘어서자 수다를 떠는 여유로움까지 나타났다.
그렇게 해서 13일만에 15만장의 카드 섞기가 끝났다.  

담당자 : 와~~ 15만장을 13일에 끝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어요.
           더욱 놀란 것은 여러분이 섞은 15만장의 카드중에서 2장이상 들어가는 불량이 0 였다는 겁니다. 감탄했어요. 정말 수고하셨어요.. 알바비는 한 사람당 10만엔이 조금 넘습니다. 
유학생 : 다른 팀은 어떻게 됐어요?
(눈치없기는...ㅉㅉ 근데, 나도 그것이 알고싶었다.ㅎㅎ)
담당자 : 그 얘기를 좀 해야 하는데요. 다른 곳은 12일까지 10만장 정도 밖에 못했습니다. 불량이 몇장 나오다 보니, 진척이 안 됐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혹시라도 시간이 된다면, 내일도 나와서 도와줄 수 있습니까?? 물론 그에 따른 금전적 보상은 해 드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틀 더 카드 알바를 했고, 13명이 15일 동안 18만장을 했다.
쿤을 포함한 다른 한국인 유학생은 14만엔 정도를 받아들고 흐뭇해 했다. 그 흐뭇함이란 비단 돈에 연연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일을 빠르고 깔끔하게 마무리 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담당자의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담당자 : 처음에 한국 학생들이 몰려왔을 때 내심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잘~~ 할 수 있을까? 
           이상한건 말이죠. 한국 학생들은 작업을 하면서 수다와 웃음이 끊이지 않더군요.
           그에 비해, 일본 학생들은 일을 할 때 한마디도 하지 않죠.
           제 우려와 달리, 한국 학생이 불량이 제로고 일본 학생들은 불량이 꽤 나왔다는 겁니다. 비결이 뭘까요??? 수다도 능률인가요?


마지막으로 그 담당자가 데려왔다는 두 명의 정체를 밝힌다. 쿤이 컨베어 가장 앞에 섰고, 두 사람 중에 한 명이 쿤의 앞에 섰다. 나이는 쿤보다 10살 정도는 많아 보이는 여자였다. 한국인 유학생들 끼리 수다를 떠는데 쿤 앞에 있는 여자가 웃는다. 타이밍을 보니까 이해하고 웃는 듯 했다. 쿤이 물었다.

   쿤     : 한국말 아세요?
  여자   : 네~ 알아요...
   쿤     : 그런데 왜 말씀을 안 하셨어요??
  여자   : 글쎄요~ 꼭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쿤     : (근데 말의 억양이 좀~~) 고향이 어디세요??
  여자   : 평양요...

...............  쿤의 손과 입은 3초 정도 움직이지 않았다. (유일한 휴식시간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한국유학생이 자기 귀를 의심하며 쿤에게 묻는다.

유학생 : 양평이라고 한거지??

일본에서 카드섞기 알바하다 만난 뜻하지 않은 북한사람과의 조우.
우리들의 치열한 카드섞기 작업이 멈출수 밖에 없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