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똑같이 하고도 한국인은 칭찬 받고 일본인은 혼나고...

쿤다다다 2018. 2. 28. 06:00

오랜 만에 한국에 돌아갔을 때의 일이다.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기 위해 공항으로 향한다고 남편 쿤에게 전화를 했다. 쿤은 공항에 도착하면 약국에 들러서 몇 가지 한국약을 사오라고 했다. 약국에 들러 부탁 받은 약을 산 뒤 나는 카드로 계산을 했고, 사인을 했다. 그러자 약사 분(아줌마) 왈..

" 어머~젋은 사람(당시 다다다는 30대 초반이었음)이 어떻게 그렇게 한자를 막힘없이 잘 써~~"

예상치도 못한... 난데없는 칭찬에 당황한 다다다...

한국에서는 한글로(혹은 영어나 한자로 간략하게) 사인을 하지만, 일본에서는 한자로 사인(풀네임으로)을 하곤 했는데, 그 습관이 나도 모르게 나온 것이었다. (한국에서 지내는  며칠 동안에는 부모님께 얻어 먹고 오빠에게 얻어 먹고 친구에게 얻어 먹는 등 내 카드 쓸 기회도, 사인할 기회도 없었다.) 

카드로 사인하고 칭찬받은 경우는 처음이었던 터라..뭔가 기쁘면서도 약간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전,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 학생이 한국을 다녀 와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제가 한국에서 식당에 가서 계산을 하고 있었거든요. 카드로 계산을 하고 이름을 쓰고 있는데, 가게 점원이 약간 짜증스러운 듯 저를 보는 거예요. 지금 뭐 하는 거냐는 표정이랄까?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현금이 아니라 카드로 계산해서 그랬을까요? 기분이 별로 안 좋았어요. ㅜㅜ"

사실 나도 처음 저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상황이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학생과 전후 사정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이유를 찾게 되었다. 내 예상이 맞다면 가게 점원은 매우 바쁜 상황이었고, 서명란에 다섯 글자나 되는 이름을 한자로(山本紗由里)를 곱게 써 내려가는 우리 학생이 못 마땅했던 것이다. 

그러자 또 다른 일본 학생이 말한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좀 다르다면 저는 제 이름을 쓰다가 잘렸다는 걸 거예요. 제 이름 토쿠야마미치코(徳山美知子)의 토쿠(徳)를 막 마쳤을 때 승인을 눌러 버리더군요. "

그 뿐인가. 또 다른 학생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 선생님, 그건 일도 아니에요. 저는 제 카드로 계산하고 사인하려는 데 아줌마가 그냥 선 하나 죽 긋더니 승인 눌러 버렸는 걸요. 제 카드에 왜 아줌마가 사인을 하신 거죠? 정말 깜짝 놀랐어요. "

사실 일본에서는 카드로 계산하고 사인을 할 때(사인을 필요로 할 경우에 해당, 생략되는 곳도 있음) 성부터 이름까지 다 써야 하고 카드 뒤에 서명란에 있는 서명과도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카드 뒷면의 서명란에는 홍길동이라고 적고 계산 후 사인 때는 '홍'만 쓴다든가. 서명란에는 한글로 써 놓은 뒤 계산 후에 사인할 때는 한자로 '洪' 혹은 영어로 'Hong' 이렇게 쓰는 경우도 일본에서는 절대 안 된다. 점원은 수시로 카드 뒷면의 서명과 계산 후 사인을 비교하곤 한다. 동시에 이것은 본인 카드인가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카드에 대한 각자의 비슷한 경험을 한참 늘어 놓은 뒤에는 이런 질문들이 속출했다.

" 선생님, 한국에서는 저렇게 제대로 사인 안해도 문제가 안 되나 봐요? "

문제가 안 되니까 그렇게 하는 게 아니겠냐고 학생들을 일단 안심시켰다. (한국에서의 바른 사용 방법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 알려 주시길 바라며..) 한국에서는 카드로 계산을 한 뒤 알림 문자가 거의 동시에 오는 걸로 알고 있다. 누가 어디에서 얼마를 썼는 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 어찌 보면, 이런 사인은 형식일 뿐, 그렇게 중요한 절차는 아닌 듯 싶다. (카드 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일본은 아직도 문서를 중요시 하고 한국보다는 아날로그 시스템을 선호하는 것 같다. 나는 매년 같은 강의 계획서를 자필로 쓰고 있다. 강의 계획서를 보내면 확인 도장을 요구하는 문서가 다시 집으로 온다. 10년 전 한국에서 나는 컴퓨터로 썼었다.) 


알림 문자 시스템에 놀라는 일본 학생들에게 우스갯 소리로 내가

"한국에서는 남편들이 아내 명의의 카드를 받아 쓰면서 감시 아닌 감시를 받기도 하지요.  호호호 "

웃자고 한 이야기에 학생들은 웃지는 않고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다시 묻는다.

" 한국에서는 본인 명의 아닌 카드를 그렇게 쓰고 다녀도 돼요??? 그러고 보니 드라마에서도 본 것 같아요. 볼 때마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 쿤과 다다다는 각자의 명의의 카드를 쓰지만, 한국에서는 쿤도 다다다도 다다다 명의의 카드를 쓴다.)

한국에서 카드 쓰고 사인하다가 불편한 시선을 받거나 좀 짜증스런 반응을 겪었던 우리 일본 학생들은 여전히 불안한 마음에 가능하면 이름 모두를 쓰려고 노력하지만, 가게 주인의 분위기를 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중간에 끊으려고 노력한단다. ㅋ 일부 학생은 불안한 마음에 그냥 현금으로 계산한다고 한다. 

어찌 보면 몇년 전, 이름 석자를 사인해도 기다려주고 칭찬까지 해주었던 여유로운 약사를 만났던 건 행운이었다. 이 모든 상황을 다 이해하게 된 요즘 나는..? 한국에 가서는 한국식으로 좀 더 간략하게 사인한다.  

이 글을 다 마칠 무렵, 나는 문득 쿤하고 연애하던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일본에서 쿤과 데이트를 하던 중 쿤은 카드로 계산을 했고 이름 석자를 한자로 쓰면서 사인을 하고 있었다. (쿤의 이름은 석 자 다 엄청 복잡하고, 그 획순을 합치면 무려 50획이나 된다. 일본인들의 4~5글자 뺨치는 수준. )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순간 왜 저러나 싶어서 점원 눈치를 보며 쿤에게 좀 빨리 쓸 수 없냐고 재촉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카드 사인을 기다리는 그 점원은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 같다. 나 혼자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쿤을 다그쳤을 뿐...쿤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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