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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쿤이 보는 일본

내가 일본에서 집 사려다가 포기한 이유

인간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는 의(衣).식(食).주(住) 이다. 그 어떤 것도 인간 생활에서는 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기에 기본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본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집에 대해 "내 집 마련의 꿈", "집 없는 서러움"이라는 표현을 하였고, 90년대 초반까지는 1등 당첨금 1억 5천만원의 주택복권이라는 것도 있었다. 집을 가진다는 것만으로 인생에서의 커다란 고민하나는 떨쳤다는 말까지 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 있어 큰 과제에 해당하기도 한다. (물론 융자를 갚을 필요가 없는 사람에 한해서 일지도 모른다.)

쿤도 그런 한국에서 20대 초반까지를 보냈기에, 일본에 와서도 집에 대해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돈 없는 나홀로 유학생에게 무슨 집이랴~ 학교 생활하면서 월세만 밀리지 않고 내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그렇게 9년간 일본 유학을 했고, 결혼을 하게 됐다. 결혼을 하려고 보니,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이 집이었다. 한국처럼 "전세"라는 것이 없는 일본에서는 집을 사거나 월세를 구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저렇게 많은 집이 있는데 내 것은 없다.

쿤은 현재, 지은 지 20년 된 월세 맨션에 살고 있다. 유명회사가 지은 곳이고 20년 전에는 고급맨션이었다고 한다. 직접 살아보니 그 말은 어느 정도 신뢰가 갈 정도로 꽤 괜찮은 맨션이다. 초기 세입자가 대부분 아직도 살고 있고 철저하게 맨션을 관리하다보니 신축 맨션같이 보인다.(우리가 악마의 모임이라고 부르는 맨션 반상회가 매달 열리고, 그 반상회에서는 "뭐도 안된다, 뭐도 안된다" 라는 안되는 조항만을 만들어 내면서 아파트를 관리한다. 다다다가 조만간 포스팅하겠다고 벼르고 있음). 우리집에 친척, 친구들이 많이 다녀갔지만, 많이 잡아야 3년 된 맨션으로 보인다고 하니 우리의 눈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맨션의 집세로 내는 돈은 한국돈으로 월100만원을 조금 웃도는 정도이다. 번화가로 나가면 최소 200만원은 줘야 하지만 우리는 번화가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지금은  그나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대부분을 보조받아 살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큰 부담은 없는 상태이다. 문제는 이 보조 금액이 나오는 것이 딱 10년이라는데 있다. 일본인들이야 평생 살 생각으로 융자를 받아 집을 사지만,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가진 나에게는 집을 과연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동안 별로 관심도 두지 않았던 부분이다.

하지만, 작년에 한국에서 들어온 다다다가 오면서 내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내 집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못도 마음대로 박지 못하고, 포인트 벽지를 붙이지 못하는 등 여러가지 불만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궁리를 하던 차에 시세를 알아보니, 지금의 페이스대로 월세를 내며 이 집에서 9년을 살게 되면, 맨션을 살 수 있는 가격에 이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최소 9년 이상은 반드시 살아야 하고, 그 뒤에 팔지 못하는 애물단지가 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각오한 뒤에 구매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우선,  맨션 집주인과 교섭을 시작하였다.  

  쿤  : 이 집이요. 요즘 매매가가 900만엔이라는데 집 파실 생각없으세요?
주인 : (한숨부터 쉬고) 그 집 말야.. 내가 그 집을 1990년에 신축을 구입했는데, 
         그 때 당시의 가격이 4,800만엔(6억 5천)이었어.
         4년 전에 이사를 할 때 집을 처분할까 생각도 했는데, 그 가격이 1,000만엔 정도 라는 것을 알고 월세로 돌렸지.
         근데, 지금 900만엔이라고? 지금 갚아야 할 금액이 2,700만엔 이라네. 
         집을 팔고 싶어도 팔수가 없는 실정이지.. 그냥 그 집에서 오래만 살아주게~~

이해가 되는가? 쿤이 사는 동네는 일본 사람들에게 지명도가 높은 동네이며, 유명 관광지로 나가는데 약 20분 정도면 갈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런 동네의 아파트가 지은 지 20년만에 4,800만엔에서 900만엔으로 값이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주인 아저씨는 일본의 버블경제의 막바지에 집을 구매한 경우라 감가상각의 비용은 더 커진 경우였다.
(번화된 대도시의 일부 고급 고층 맨션은 수요가 있기 때문에 가격이 많이 변하지 않고, 때로는 년간 5% 이내로 가격이 오르는 경우도 있지만, 그 비율은 일본 전체의 1%도 안된다고 봐도 될 것이다. )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한국친구들은 그런다.
그래도 계속 월세를 붓는 것보다는 사는 게 낫지 않냐고. 10년 뒤 팔 수 없는 가격이 되어도 집은 한 채 남아있는 것 아니냐고..

그건 맞는 말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가 있다. 바로 집의 수리비용이다.
이 집에 산 지 4년이 된 우리는 그동안, 집주인에게 비데 달린 변기(최소 8 만엔-110만원), 가스렌지(5만 5천엔-70만원), 보일러(40만엔-550만원), 집에 달린 케이블 라디오 등을 수리받거나 교체받았다. 또 집세에 관리비를 포함시켰기에 월 11,000엔(15만원)을 내지 않아도 된다 (주인이 낸다). 이런 것은 어디까지나 월세를 내는 세입자의 입장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일 내집이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일본의 단독주택의 경우에는 토지가 있기 때문에 감가상각의 비용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하지만, 지은지 30년이 된 집이라면, 거의 토지값만 받을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그런 단독주택을 구입해서 리모델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집을 부수고 다시 짓는 사람도 있다. 그 어느 경우라도, 일정시간이 지나면 결국 토지 값만 남게 된다.

쿤의 결단

추세가 이렇다보니, 일본 사람들조차 집을 사는 파와 평생 월세를 사는 파로 나뉜다. 언젠가 티비 방송을 본 적이 있는데 두 경우의 예상 비용을 비교해보았더니 큰 차이가 없었다. (물론, 월세로 사는 파가 약간 비쌌다.)

이런 일본의 집 사정을 고려해 본 쿤은 결국 일본에 집을 살 수 없었다. 아니, 집을 사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집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기에 일본에서는 집을 안 사기로 결심했다. 

일본의 집이 투자품이 아니라 소모품이라는 걸 알고도 과감히 집을 살 수 있을지 되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