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보육원 때문에 이혼하고 싶다는 일본 친구의 말

일본에서의 3월은 졸업 시즌이고 입학(4월)을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동시에 보육원을 신청한 워킹맘들이 마음을 졸이며 그 결과를 기다리는 달이기도 하다. 나 또한 4년 전 3월, 매일 우편함을 열어보면서 콩이의 보육원 발표를 가슴을 졸이며 기다렸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보육원에 내정됐다는 편지를 열었을 때의 기쁨이란...거짓말 안 보태고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은 것에 맞먹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에서 공립, 혹은 구 인증 보육원(수입에 따라 보육비가 다름. 그 외 개인 운영 보육원은 돈만 내면 보낼 수 있으나 매우 비싸다. )에 가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기준은 지역별로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어떤 일을 얼마나 하는 지, 그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 있어서 그 어려움은 무엇인 지, 집 근처에 조부모님이 계셔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인지...등등을 꼼꼼하게 따져 점수를 매기고 합격 불합격을 결정한다. (취업 활동을 하는 경우에도 입학 가능한 곳이 있으나 콩이가 다니는 보육원은 안 됨) 합격 후 보육원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도 1년에 한번씩, 일하고 있는 것을 증빙 서류를 통해 증명하고 연장해야 한다.

 

 

 

이렇게 까다로운 입학이다 보니, 3월 쯤 되면 희비가 엇갈리기 마련이다. 평소에 가끔 수다를 떨곤 하는 하루나&토마 남매 쌍둥이 엄마 와다 씨가 나를 보자, 한숨을 쉬더니 그런다.

 

 

" 콩이 엄마. 우리 막내 여기 보육원 떨어졌어요. 오늘 다시 구청에 가서 추가 모집을 알아 봐야 되는데, 갈 맛이 안 나네. 매일 매일 데려다 주고 데려 오고 하는 것도 걱정이지만, 운동회며 발표회며 만약 같은 날이 되면 남편하고 따로 갈 수도 없고 어떻게 하냐고...나 참..."

 

 

보통 한 아이가 보육원에 이미 다니고 있는 경우, 그 아이의 형제는 일하는 엄마의 편의를 생각해 같은 보육원에 내정시켜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게다가 와다 씨는 위의 아이들이 쌍둥이 남매니까 다른 부모보다 유리한 상황이었다. 와다 씨 본인 또한 당연히 붙을 거라고 생각하고 1지망 밖에 안 썼다며, 이제 와 추가 모집하는 다른 보육원을 알아봐야 하는데 빈자리가 없으면 어떻게 해야 될 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콩이랑 같은 반 리짱의 여동생, 사야카 짱의 여동생 또한 1지망에서 떨어지고 2지망이었던 다른 보육원에 내정되었다고 한다. 사야카 짱의 경우는 집을 기준으로 두 아이의 보육원이 반대 방향에 있어서 각각 아이를 데려다 줘야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그 집은 그 집대로 지금 머리가 아픈 상황이었다.

 

 

" 와다 씨도 안 된 거면 도대체 누가 된 거예요? "

 

 

" 복숭아 반에 쇼우타 쿤 알죠? 쇼우타 쿤 쌍둥이 여동생들만 됐대요. 또 그 엄마 직업이 보육사인데 같은 업종은 또 우대받는가 봐요. 내가 이 보육원에 가려면 이혼하는 방법 밖에 없을 거예요. 아마..ㅜ,.ㅜ 이혼이라도 할 수 있으면 하고 싶어요. "

 

 

 

일본의 보육원 내정 기준은 직업군, 양육 환경 등을 고려하긴 하지만, 그 무엇보다 우선 되는 게 있는데 그건 바로 한부모 가정인 경우(母子家庭), 또는 같은 직업군(보육사 혹은 공무원 등 )의 경우라고 한다.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작년 가을 부터 우리 콩이가 다니는 보육원이 가장 마음에 든다며 들어가고 싶어하던 우리 한국어 학생 다나카 씨. 최근 복직을 하면서 한국어 강좌를 그만둔 뒤, 어느 날 콩이 보육원을 1지망으로 넣었다며 연락이 왔고, 3월 초 떨어졌다며 다시 연락이 왔다. 대기업에 다니고 있는 다나카 씨는 근처에 어머니가 살고 계시긴 했지만, 나이가 연로하셔서 아이를 봐주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고 일 또한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어서 당연히 될 줄 알았다. 와다 씨를 만나고 나서야 나는 다나카 씨가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나카 씨는 근처에 있는 다른 보육원에 내정되었다고 한다.

 

 

 

사실, 인근에는 많은 보육원이 있는데 콩이가 다니고 있는 보육원이 가장 인기가 많다. 나 또한 콩이 보육원이 마음에 들어서 1지망에 넣었고, 다니고 나서는 더 마음에 들었다.(콩이 보육원이 마음에 드는 이유에 대해서는 추후 포스팅 하겠음) 한 때 이직으로 골머리를 앓던 우리 쿤에게 도움은 되지 못할 망정, 이직을 할 때 보육원 옮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무리라는 걸 알면서 부탁했던 다다다도 이상했지만, 정말 약속을 지켜준 우리 쿤도 정말 대단함..결론적으로는 해피엔딩.  만세...고마워요. 쿤!!)

 

 

사실, 일본에 살면서 보육원 때문에 이혼하고 싶다는 말은 수없이 들어 봤다.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 뿐, 그만큼 보육원 입학이 절실하고 힘들다는 뜻인 것이다. 막상 아이 친구 엄마에게 대놓고 들으니..이것이 일본의 보육 현실이구나 실감하게 된다. (일본에서도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한국인이 많을 줄 안다. 모두들 힘내시길) 

 

 

그런데~! 오늘은

 

 

행복한 뒷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제 보육원에서 와다 씨를 다시 만났는데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 콩이 엄마..우리 막내 여기 보육원 추가 모집에 됐어요. 같이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콩이 엄마한테는 제일 먼저 말해주고 싶었어요. 귤반의 한 아이가 아빠가 전근을 가게 돼서 그만뒀다나 봐요."

 

 

일본에서의 3월은 아빠의 직장 전근 발표가 있기도 한 달이다. 1지망만 썼다 떨어져 한때는 갈 곳 없어 좌절했지만, 그 사이 자리가 하나 생겨 꿰차고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2지망을 썼더라면 다른 곳에 내정되어 빼도 박도 못했을 터인데, 그 타이밍이 진짜 신의 한수였다. 진담은 아니었겠지만, 이혼을 말했던 와다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한 미소가 입에 가득했다.

 

아무튼 이런 일련의 일들을 계기로 내가 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던 레파토리가 조금 바뀌게 되었다. 

 

 

전에는

 

" 쿤! 가족 계획 말인데. 콩이 동생을 만들려면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시도해야 돼. 그래야 콩이처럼 0살 반에 들어가지. (0살 반이 입학이 수월하기 때문. 보육원 입학이 어려우니 아이의 상황을 무시한 채 이런 말을...나는 나쁜 엄마. ) "   

 

 

 

지금은

 

" 쿤! 보육원 좋은 데도 많더라. 굳이 여기 아니더라도...ㅋㅋ..."

 

녹록지 않은 해외 생활...그렇지 않아도 외롭고 힘든데..이혼이 웬 말인가. 빈말이라도 싫다.

 

 

공감 버튼을 눌러 주시면 더 열심히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