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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의 일본 이직기

(07) 사사로운 배움도 인생에 큰 도움이 된 이야기

지난 5년의 블로그 공백기에 있었던 이직에 대해 연재중입니다.


(일본내 이직스토리 07) : 모든 지식과 경험을 활용한 계약직 생활



조금은 억울하고, 어렵사리 입사한 새로운 직장,,, 쿤은 공정개발 부서에 들어갔습니다. 같은 부서 사람들에게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과장님과 면답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쿤은 과장님에게 한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그 부탁이란, 과에서 행해지고 있는 개발과 관련된 모든 회의에 참석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과의 업무 파악와 관계자들과의 인사를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었죠. 과장님은 흔쾌히 OK하셨습니다. 입사한 첫날이라 주업무가 없고, 그렇게 하면서 하고픈 분야를 찾는 것도 좋을거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쿤은 직원들의 업무중 개발과 관련된 모든 회의에 참석을 하게 됐는데, 지난 날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이 회사에서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맞아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에피소드를 5가지 올려 봅니다.



 반도체 전공자이기에 가능했던 충고


어떤 직원이 장비를 주문하기 위해 설계사양을 정리했다며, 공장장 이하 관련 부서의 부장/과장급 간부사원과 관련 부서 사원들에게 보고를 하고, 의견을 묻는 자리였습니다. UV(자외선)를 사용해서 접착체를 굳게하는 장비였는데, 도입 배경이나 목적, 효과, 그리고 회사의 내부 사정을 몰랐던 관계로 쿤은 그저 듣기만 했습니다. 설명을 들을 수록 묻고 싶은 것은 많았으나, 맥을 끊고 싶지 않았던지라, 열심히 들었습니다. 회의가 끝날 무렵, 공장장님이 쿤을 딱 찍으시더니, 질문 있으면 하라고 하시더군요.


네? 그럼, 궁금한 점 하나만 질문하겠습니다. 

UV를 쓰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장비 상부에 커버가 없는 설계도를 보이셨는데, 보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부러 지우신 건가요 아니면 정말 커버가 없는 건가요?

비용절감을 위해 커버는 안 하기로 했습니다.

네? 커버를 안 한다고요? UV를 쓰면서 커버를 안 한다고요? 

네, 어차피 제품에만 UV를 비추기 때문에 상부 커버는 안해도 될 거 같아서요.

그 UV 파장이 몇 나노인가요?

확실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3백~~중반대예요.

365나노 i 선 이겠네요. 출력은 얼마나 되나요?

1,200 와트(W)를 10초간 비추니까 12,000 줄(J)입니다.

단위 면적은 제곱미터겠죠?

네. 그럴거에요.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커버를 하시고, 유리에는 자외선 차단 필터를 붙이는게 좋을 거 같아요. 이유는 365나노라는 i 선은 가시광선을 벗어나는 자외선인데다가, 주문하려는 장비는 출력이 강합니다. 한 여름에 내리 쬐는 햇볕에 포함된 자외선량의 20배 정도 될거라고 봅니다. 후레쉬를 벽에 비치면 벽만 밝은게 아니라 그 벽에서 반사되어 뒤까지 밝아지듯이, 커버가 없으면 자외선의 일부가 상부를 통해 반사되어 나올 가능성이 크고, 심하면 피부암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커버 하시고, 내부를 볼 수 있는 유리에는 자외선 차단 필터를 붙이셔야 한다고 봐요. 제 의견이 틀릴 수도 있으니 추가로 조사를 하셔서 그에 대한 대응을 하신다면, 상당히 좋은 장비가 되리라 봅니다.


답변이 끝났을 때, 약 3초간의 적막이 흘렀습니다. 

공장장님이 적막을 깨시면서, "이건 숙제!!! 조사 좀 해봐." 라는 말씀을 하셨고, 결국 커버와 필터가 붙여진 장비가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은 몰랐던 납땜의 신(神)


과장님은 공정개발에서 하는 분야는 크게 두개 분야가 있다고 하시더군요. 하나는 전자기판에 작은 부품을 탑재하는 실장부분, 또 다른 하나는 장비를 설계, 도입하여 생산 라인의 자동화를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저에게 실장 부분에 있어서 납땜은 필수라며, 외부에서 실시하는 납땜 자격증(上級オペレーターマイクロソルダリング) 취득을 권하시더군요. 근데 시험이 어려워서 회사에 그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5명뿐이라는 것과, 한달 정도 납땜 연습하면 일부는 붙지 않겠냐는 친절한(?)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게 어떤 시험이냐면, 일본용접협회가 주관하는 시험인데요, 남땜에 있어서 최상급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시험이라 하더군요. 시험 과목은 1개의 통합학과시험, 3개의 기능시험(삽입부품납땜, 표면실장부품납땜, 단자납땜)로 나뉘어져 있었고, 시험이 어려워서 부분 합격이 인정되는 시험이었습니다. 4일간에 걸쳐 치워지는 강습회와 시험은, 강습료와 시험비가 11만엔(110만원)이었고, 3일간의 이론과 기능 강습, 마지막 날에 4개분야 시험을 보더군요. 


관련 페이지 : http://www.jwes.or.jp/mt/shi_ki/ms/pdf/2016-AOPR-pamph.pdf


한달 정도 연습을 하라고 시간까지 주셨지만, 쿤은 업무관계로 단 1분의 연습도 없이 시험을 보러 가게됐습니다. 과장님은 연습하는 걸 못 본 거 같은 데 괜찮겠냐며 걱정을 하셨고, 최선을 다 하겠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습니다.


결과요..

3개분야 모~두 한번에 합격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5명이 자격증이 있지만, 3개분야 다~ 붙은 사람은 2명뿐이었는데, 그걸 연습도 없이 가서 다~ 붙어 왔냐며, 놀라더군요.

사실 제가 공고출신입니다. 20년전 가정형편상 공고에 진학을 했지만, 학교 다닐 때는 납땜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납땜은 잘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도 몸은 그때의 능숙함을 기억하고 있더군요. 저는 그 점에 더 놀랐습니다.

쿤이 그 시험을 한번에 붙은 것이 회사에서 소문이 나면서 이후에 그 시험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농담반 진담반의 엄청난 불평을 들어야 했습니다. (과장님이 그 시험 별거아니래... 쿤 때문이야)^^;;;



 고장의 원인 찾아내기


일부 직원은 개발부의 의뢰를 받아서 샘플을 제작을 하는 일을 하더군요. 그 날도 회의에 참석을 했는데, 샘플로 만든 제품과 데이터를 놓고, 분석을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뭔가 평가를 했는데, 제품이 고장났다고 하더군요. 원인은 IC(작은 칩)가 불량이었고, 그 부품을 바꾸면 잘 움직이다가 다시 불량이 나서, 정확한 원인을 찾기위해 회사내의 수리부서에 의뢰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눈 앞에 회로도가 있길래 쭉~ 봤더니, IC가 불량인건 맞는데, 그 IC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있는 제너다이오드라는 놈이 IC를 불량으로 만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혹시 요 제너다이오드라는 놈이 불량이거나, 규격이 클 가능성이 있을 거 같다고 했었죠. 개발 담당자는 그럴 가능성도 있겠다면서, 확인을 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주일 후의 회의에서 결과를 이야기 해 주더군요. 역시나 제너다이오드가 불량이어서 필요 이상의 전압이 IC에 걸렸고, 그래서 IC가 망가졌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회로도 읽을 수 있냐고 묻길래, 아날로그 회로는 옛날에 조금 배웠다고 했었죠.

쿤은 공고를 다닐 때, 전자 회로에 빠져 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관련 자격증도 7개를 땄었죠. 부품과 부품을 남땜으로 연결하면 작동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게 왜 작동을 할까 하는 탐구하는 활동을 했다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하루는 학교에서 AM라디오 제작 실습을 했습니다. 회로도와 부품을 나눠주고, 납땜으로 라디오를 만드는 실습이었는데, 102명의 학생 중에 쿤이 만든 것만 라디오 소리가 났었죠. 이유는 회로도가 틀렸었고, 그 틀린 회로도를 수정해서 납땜을 한 사람이 쿤 밖에 없었던 것이었죠. 생각을 해 보세요. 102명 중에 1명만 성공했다고 했을 때의 그 기분.. 째집니다.^^ 물론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고, 이것 저것 수정을 하다가 실습마감 20분 정도를 남겨두고 성공했기에, 다른 친구들에게 알려줬지만, 수정을 할 시간이 안 됐었습니다. 

지금도 집의 가전제품이 망가졌을 때, 보증기간이 지났을 경우에는 일단 뜯고 본답니다.



 그냥 만들어 버리면 어떨까요?


또 다른 직원은 현장 오페레이터가 테이프 붙이는 작업을 하면서 실수를 많이 한다며, 테이핑하는 장비를 도입하려 하더군요. 이번에는 도입 배경, 효과, 현장 사람들의 요구 사항까지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문제였습니다. 표준 장비는 700만엔(7천만원), 특수 요구사항을 넣으니까 1천만엔(1억원)이라 하더군요. 회의가 끝난 후에 그 직원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현장 사람들 만나보고, 과장님을 꼬셔서 왕복 11시간 거리에 있는 그 장비 회사에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확신이 있었죠. 

"직접 만들자. 그게 조작도 간단하고, 가격도 훨씬 싸다"

그 담당직원에게 만들자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구체적인 제작방법과 설계안, 조립후 가동 방법까지 제안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일이 제게 넘어왔습니다. 그래서 2달 남짓해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격은 260만엔(2,600만원)으로 현장이 원하는 요구사항의 80% 정도를 채워줬고, 가격은 1/4. 

자재부 부장님 왈 "대박이다. 그거 회사 이름을 걸고 팔아도 되겠는데.."

대학을 다닐 때, 로봇을 전공하고, 로봇 콘테스트에 나갔던 경험이 활용되더군요. 



 살다살다 페인트 작업까지 하네


입사를 해서 얼마 안 지났는데, 회사를 관리하는 부서에서 주차장 페인트 칠을 해야 하는데, 일손이 딸리니 부서별로 1명씩만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주말 출근을 해야하는 관계로 당연히 휴일수당으로 시급+30% 이고, 평일에 하루 쉬는 것이 조건이라 하더군요. 쿤의 부서에서는 쿤이 나갔습니다. 사내 인맥을 넓히고자 지원해서 나갔습니다. 20여명이 모였고, 작업을 하기위해 주차장으로 이동을 했었죠. 그런데, 그 페인트라는 것이 일반 흰색 페인트였습니다. 담당 계장(한국의 팀장급)님에게 물었죠.


계장님. 이거 그냥 페인트 잖아요. 이걸로 주차장 구획선을 그으실 건가요?

응, 뭔가 문제있나??

가라스비즈(ガラスビーズ:작은 유리 알갱이)는 안 섞으실 건가요?

응? 그게 뭔데.

직경 1미리 미만의 작은 유리 알갱이인데, 그거 안 섞으시면 밤에 안 보일텐데요.


계장님은 일단 찾아는 보겠지만, 급한대로 준비된 걸로 주차장 페인트 칠을 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며칠의 시간이 지났을 때, 복도에서 지나치면서 쿤에게 그러더군요. 


그 주차장 페인트 말야. 역시 밤에 보면 잘 안 보이고, 비오는 날 밤에는 아예 보이지도 안터쿠만. 일단은 밤에 주차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대로 쓰겠는데, 담에는 그 비즈라는 거 그거 해야겠던데. 근데 그거 하려니까, 열로 가열을 해야하고, 장비가 필요하고 번거로워서 외부 사람을 쓰는게 나을 거 같아. 

그러죠? 가라스비즈라는 거는 180도 이상의 온도로 가열을 해야 할 거에요.

근데, 자넨 그런 걸 어떻게 알았나?

아~~ 옛날에 알바할 때 아저씨들이 하신 말씀을 주워들은 기억이 있어서요.


유학을 할 때, 참으로 많은 알바를 했는데, 이렇게 유용하게 쓰이더군요. 

이후 회사내의 도로 페인트 작업은 회부업자를 불러서 하게 됐고, 주말에 불려 나가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많은 일을 하면서, 계약직 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40이라는 인생을 보내면서 전기 전자, 항공기 정비, 로봇, 반도체 등으로 전공을 바꾸었고, 대학생 때는 이공계 분야의 기초 과목을 배웠던 것과 유학생 시절 많은 알바를 하면서 배웠던 것들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폭넓은 분야를 연관해서 생각하게 되더군요..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은 그것이 하잖은 것이라 할 지라도 미래를 살아가기 위한 힘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되었죠.

아!! 계약직 시간을 보내면서 쿤에게는 새로운 별명이 생겼습니다. 

그 별명이란 일본어로 「何でも屋さん!(난데모야상)」 오만가지 다~~~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5개월 보름이 지났을 무렵, 회사는 약속대로 저에 대한 재평가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떠나느냐 남느냐 하는 자리였죠... 다음에 이어서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