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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의 일본 이직기

(06) 군대 때문에 일본에서 계약직이 된 사연

지난 5년의 블로그 공백기에 있었던 이직에 대해 연재중입니다.

 

(일본내 이직스토리 06) : 군대갔다 온게 일본 취업에 걸림돌이 될 줄이야...

 

 

 

 정규직을 걷어 차는 당신, 제정신입니까?

 

이직 소개를 해 주는 일본 사이트에 등록을 하고, 본격적으로 이직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이직 소개소 직원은 반도체 공정이라는 전문성을 살릴 수 있게 동일계 회사 목록을 뽑아주었고, 각 회사에 대해 여러 정보도 주었습니다. 하지만, 뽑아준 리스트를 보니, 반도체 공정 분야를 살려서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일본 전국에서도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었습니다. 게다가, 간사이 지방(오사카 부근)으로 제한하니, 4곳으로 압축이 되더군요. 일단 연습 삼아서라도 진행을 했는데, 이런,,,, 첫번째 회사에서 바로 합격이 됐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1시간 30분 거리였는데, 정규직 합격통지를 받고 대우(급여, 복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중에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거절을 했었죠.

 

그리고 두 번째도 반도체 공정 일을 할 수 있는 회사였는데, 너무 멀었습니다. 지원을 할 때는 같은 간사이 지방이니까 이사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실제로 회사에 가 보니, 너무나 한적한 시골이었고, 가족과 같이 이사하기에는 가족이 많은 희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일본까지 와서 주말부부는 하기 싫었고, 무엇보다도 당시 아이가 만 1살도 안 됐는데, 남편 혼자 타지 생활도 할 수 없었던 지라, 최종면접을 남겨두고 포기를 했었죠.

 

그랬더니, 이직 소개를 해 주는 회사 직원이 너무나 의외라며, 쿤에게 진지한 충고를 해 주더군요.

 

쿤님... 쿤님은 외국인이라서 일본의 이직 실정을 잘 모르시는 거 같아서, 제가 주제넘게 충고 한 말씀드릴게요. 일본에서,, 그것도 40이라는 나이를 목전에 둔 이직은 정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첫번째 회사에 정규직으로 채용이 될 경우, 95%는 입사를 한답니다. 그래요~~, 첫번째 회사!! 제가 보기에는 준수했지만, 쿤님 입장에서는 연봉이 낮았다고 칩시다. 두번째 회사는 쿤님의 경력을 100% 살릴 수 있는 회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기업이고, 기술직 면접도 상당히 좋았고, 게다가 연봉이 상위 10% 급인데, 왜 중도에 포기를 하시나요? 최종면접(사장단면접)은 형식적 거라서 합격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거절을 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씨. 여러가지로 신경써 주시고 도와주시는데 제가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정말 죄송해요. 두 군데 회사에 가서 이야기를 해 봤는데, 저는 반도체 공정을 그만 둬야 할 것 같아요. 맞지 않는 옷을 입으려 한다고 할까요? 전문성이 있어서, 대우도 좋은 것은 알겠는데, 너무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아요.

네? 10년 정도 쌓아온 캐리어를 포기하신다고요? 포기하시면, 뭘 하실 건데요.

정말 죄송한데요. 메카트로닉스 분야로 알아봐 주실 수 있을까요? 전자, 전기, 기계 쪽을 같이 할 수 있는 분야라면, 좋을 것 같아요.

 

이직 소개회사 직원이 난리가 났습니다. 저 직원 입장에서 보면, 쿤이 가겠다는 말 한마디면, 당연히 수십만엔(수백만원)의 소개비가 들어오는 상황이었는데, 돌연 가기 싫다고 했으니, 황당할 수 밖에 없었겠죠. 그것도 두 번이나 바람을 맞았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요?

 

 

 

 다시 시작이야

 

이직 소개회사 직원은 다시 시작이라며, 메카트로닉스를 할 수 있는 회사 2군데를 소개해 줬습니다. 첫 번째 회사는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좀 유명한 회사였는데, 반도체 하던 사람이 캠(cam : 회전 운동을 전후 운동이나 상하 운동으로 바꾸는 장치)을 한다고 하니, 전화상담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력서도 내기 전에 상대방 직원과 전화로 상담을 했는데, 기초 지식은 있는 것 같다며, 입사를 하게 되면, 조건이 있다고 하더군요. 뭐냐고 했더니, 만약에 합격을 하게 되면,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로 10년간 주재원으로 가 달라는 겁니다. 첫 5년은 감독 보좌로, 나중 5년은 현장 감독으로 가야 하며, 가족이 같이 간다면, 체류비는 지원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이었기에, 다다다와 협의를 했고 결국은 패스.

 


그리고 두번 째 회사가 오늘 이야기의 회사였습니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전형적인 일본기업이었는데, 보기 드물게 경력직 직원을 그것도 정사원으로 각 부서별로 최대 8명을 모집한다고 하더군요.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일본 주식시장 1부에 상장된 기업으로, 이직률이 거의 0%대,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대우가 좋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알고보니 알짜 기업이더군요. 그래서 회사 설명회에 갔는데, 32명이나 왔더군요.(음... 경쟁률이 4:1이네...) 회사는 집에서 50분 거리의 한적한 시골에 있었는데, 본사는 다른 곳에 있었고, 제가 갔던 곳은 직원 500명 정도의 제조 공장이었습니다.

20분 정도의 설명회를 마치고, 공장 내부 견학을 했는데, 1층에서는 부품실장(아래 사진 참조)을 했고, 2층에서는 제품 조립을 했습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상당히 깨끗했고, 뭐니뭐니 해도 안내 직원의 멘트가 쿤의 귀를 솔깃하게 했습니다.

 

부품이 실장된 전자기판

 

 

여러분들 중에서 공정개발에 지원하시는 분들은 바로 이 곳에서 부품실장과 자동화 공정을 담당하시게 될 겁니다.

저기, 질문이 있는데요. 지금 부품 실장과 자동화 공정을 다 할 수 있다고 하셨나요?

글쎄요. 그게 분야가 다른지라 다 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같은 부서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응? 내 마음을 화악 끌어당기는 이 묘한 기분은 뭐지?

 

쿤은 설명회가 끝나자 마자, 이직 소개회사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고,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직원은 반가운 기색이 확연했고, 당장 지원서를 넣겠다고 하더군요.

 

 

 

 서류심사 → SPI 테스트(적성검사) → 1차 면접 → 2차 면접

 

서류 심사를 하고 2주 정도 기다렸더니, 서류 통과라는 연락이 왔고, SPI 테스트와 적성검사가 있으니, 회사로 오라고 하더군요. 회사에 갔더니, 모인 지원자는 쿤을 포함해서 8명이었습니다. 뭐냐... 8명 뽑는다고 하더니만, 이 사람들 다~ 합격인가? 하고 생각을 했는데, 인사부 직원이 최대 8명을 선발한다는 말은 선발을 안 할 수도 있다는 말이라고 하더군요. 당연히 지원자들은 맨붕이 왔었죠. SPI테스트와 적성검사, 논술까지 봤더니, 4시간이 지나있더군요. 결과는 합격 여부에 관계없이 지원하신 소개업체를 통해 연락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결과요?

 

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4명이 떨어졌습니다. 결국 남은 4명이 1차 면접(인사면접)을 봤는데, 2명 떨어지고 2명이 남았습니다. 여기까지도 쿤은 살아 남았습니다.

그리고 2차는 기술부 면접이었는데, 공장장공정개발 과장생산 과장 이렇게 3명이 부품실장과 자동화 공정 분야에 대해 쿤의 경력을 물었고, 전기, 전자, 기계, 로봇, 항공기 정비, 반도체 공정등 그 이외에 각종 이공계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면접이 끝날 때 쯤 궁금한 점 있으면 물어보라 하길래 공장견학을 다시 한번 시켜 달라고 했었죠. 이유는 업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었다고 했고, 두 과장님들은 손수 안내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자신들의 부서오 오게 된다면, 이런저런 일을 할 거라 했습니다. 업무 내용이 더욱 끌리더군요.

 

2차 면접 결과요?

 

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면접을 봤던 친구는 떨어졌고, 2차까지 쿤 혼자만 살아남은 상태였습니다. 소개소 직원이 상당히 기뻐해 줬습니다. 3차 면접은 곧 연락을 할거라는데, 형식상의 면접이니까 99% 붙었다고 봐도 된다고 하더군요.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의 전환. 그 이유가 기가 막혀

 

그리고, 소개소 직원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쿤님.. 이 회사는 포기합시다. 아 정말 말하기도 부끄러운데, 정규직 모집에서 6개월 계약직으로 변경하자는 연락이 왔어요. 내막은 잘 모르겠는데, 여튼 6개월 계약직이라도 좋다면 3차 면접을 하겠다고 하네요. 이건 말이 안 돼요. 같은 일본인으로서 정말 부끄러워요. 여기 포기하고 다른 데 갑시다.

 

내용을 듣고 보니, 회사에서는 정규직 직원이 아닌 6개월 계약직 직원으로 변경을 요청했고, 인사부가 직접 쿤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전화 연결을 희망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일단 이유라도 들어보자는 생각에 소개소 직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소개소 직원은 황소 콧바람을 내쉬 듯 씩씩 거리면서 울분을 참지 못하더군요. 그리고, 회사의 인사부장이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쿤님, □회사 인사부장 ★★입니다. 먼저 정규직 사원모집에서 6개월 계약직으로의 모집 전환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어찌보면, 불합격이라는 한 마디로 끝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일부러 전화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 편히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인사부장의 말은 이랬습니다.

 

쿤이라는 외국인이 마지막까지 살아 남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서류 전형에서는 외국인이라는 차별을 두지 않고, 서류 통과 기준을 넘었기에 통과를 시켰는데, SPI 테스트, 적성검사, 논술 점수가 상당히 좋았고, 게다가 SPI 테스트는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산수 만점을 받더라. 그것 때문에 인사부에서는 이 외국인이 누구냐며 화제였다. 그런데, 1차 인사부 면접에서도 사회생활에 무리가 없고, 일본어도 문제가 없었기에 통과를 시켰다. 그리고, 2차 면접에서는 공정담당 과장과 생산 과장이 서로가 무조건 쿤님을 뽑겠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다름 아닌 쿤님은 군대를 다녀왔다고 했다. 그것도 무전통신병이라 했고, 무선통신 자격증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회사 제품은 레이더에 관련된 제품을 만들고, 일부는 군사기밀에 해당하는 제품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군대를 다녀온 외국인을 뽑게 되면 행여나 불쌍사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문제가 제기 됐다. 게다가, 쿤님은 입사를 하게 되면, 우리 회사 1호 외국인이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회사에서는 임원들이 회의까지 했고, 그 결론이 6개월 계약직이고, 6개월 동안 문제가 없다면, 이후에 정사원으로 전환되는 것을 제안하게 됐다.

 

세상에... 군대 다녀왔다는 것이 취업에 걸림돌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현역시절 북한산 유격 때

 

반도체 공정에서 메카드로닉스로 전환을 한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었고, 현장 경험은 그 도전을 하는데 있어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6개월이라는 계약직이 아니라, 인턴이라 하더라도, 현장 경험을 쌓는다면,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기 쉬울테고, 저 자신의 능력도 시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쿤은 회사의 저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냥 받아들일 수는 없었죠. ^^

 

하신 말씀 잘 알겠습니다. 6개월 뒤에 재평가를 하신다고 했는데, 그 때는 제대로 된 평가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능력이 없어서 안 되겠다 하시면 자르시고,  되겠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그에 맞게 대우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인사부장은 알겠다며 자기가 책임을 지고 확실히 처리 하겠다고 했고 그 모습에 진실성이 느껴졌습니다. 결국 쿤은 계약직 직원으로 신분이 전환되어 3차 임원진 면접을 하게 됐는데, 당신이 그 외국인이냐며 화제가 되었고, 그렇게 어렵고 억울하게 쿤은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됐습니다.

 

 

소개소 직원이 그러더군요.

14년 소개소 직원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 왔다. 하지만, 쿤님 같은 사람은 없었다. 두 곳의 정규직을 포기하고 결국은 6계월 계약직으로 가다니... 쿤님은 뭐에 그리 끌리셨나요?

 

쿤은 대답했습니다.

○○님.. 님은 지금 하시는 일에 만족하시나요? 대답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족하신다면, 저 역시도 만족하면서 즐길만할 일자리를 찾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게 지금 가게될 회사에 있었어요. 물론 후회할 지도 모릅니다. 6개월 뒤에 다시 연락을 드리게 될 텐데, 어떤 연락을 드리게 될지는 기대해 주세요.. 하지만, 저는 자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