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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똑같이 하고도 한국인은 칭찬 받고 일본인은 혼나고...

오랜 만에 한국에 돌아갔을 때의 일이다.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기 위해 공항으로 향한다고 남편 쿤에게 전화를 했다. 쿤은 공항에 도착하면 약국에 들러서 몇 가지 한국약을 사오라고 했다. 약국에 들러 부탁 받은 약을 산 뒤 나는 카드로 계산을 했고, 사인을 했다. 그러자 약사 분(아줌마) 왈..

" 어머~젋은 사람(당시 다다다는 30대 초반이었음)이 어떻게 그렇게 한자를 막힘없이 잘 써~~"

예상치도 못한... 난데없는 칭찬에 당황한 다다다...

한국에서는 한글로(혹은 영어나 한자로 간략하게) 사인을 하지만, 일본에서는 한자로 사인(풀네임으로)을 하곤 했는데, 그 습관이 나도 모르게 나온 것이었다. (한국에서 지내는  며칠 동안에는 부모님께 얻어 먹고 오빠에게 얻어 먹고 친구에게 얻어 먹는 등 내 카드 쓸 기회도, 사인할 기회도 없었다.) 

카드로 사인하고 칭찬받은 경우는 처음이었던 터라..뭔가 기쁘면서도 약간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전,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 학생이 한국을 다녀 와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제가 한국에서 식당에 가서 계산을 하고 있었거든요. 카드로 계산을 하고 이름을 쓰고 있는데, 가게 점원이 약간 짜증스러운 듯 저를 보는 거예요. 지금 뭐 하는 거냐는 표정이랄까?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현금이 아니라 카드로 계산해서 그랬을까요? 기분이 별로 안 좋았어요. ㅜㅜ"

사실 나도 처음 저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상황이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학생과 전후 사정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이유를 찾게 되었다. 내 예상이 맞다면 가게 점원은 매우 바쁜 상황이었고, 서명란에 다섯 글자나 되는 이름을 한자로(山本紗由里)를 곱게 써 내려가는 우리 학생이 못 마땅했던 것이다. 

그러자 또 다른 일본 학생이 말한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좀 다르다면 저는 제 이름을 쓰다가 잘렸다는 걸 거예요. 제 이름 토쿠야마미치코(徳山美知子)의 토쿠(徳)를 막 마쳤을 때 승인을 눌러 버리더군요. "

그 뿐인가. 또 다른 학생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 선생님, 그건 일도 아니에요. 저는 제 카드로 계산하고 사인하려는 데 아줌마가 그냥 선 하나 죽 긋더니 승인 눌러 버렸는 걸요. 제 카드에 왜 아줌마가 사인을 하신 거죠? 정말 깜짝 놀랐어요. "

사실 일본에서는 카드로 계산하고 사인을 할 때(사인을 필요로 할 경우에 해당, 생략되는 곳도 있음) 성부터 이름까지 다 써야 하고 카드 뒤에 서명란에 있는 서명과도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카드 뒷면의 서명란에는 홍길동이라고 적고 계산 후 사인 때는 '홍'만 쓴다든가. 서명란에는 한글로 써 놓은 뒤 계산 후에 사인할 때는 한자로 '洪' 혹은 영어로 'Hong' 이렇게 쓰는 경우도 일본에서는 절대 안 된다. 점원은 수시로 카드 뒷면의 서명과 계산 후 사인을 비교하곤 한다. 동시에 이것은 본인 카드인가 아닌가를 확인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카드에 대한 각자의 비슷한 경험을 한참 늘어 놓은 뒤에는 이런 질문들이 속출했다.

" 선생님, 한국에서는 저렇게 제대로 사인 안해도 문제가 안 되나 봐요? "

문제가 안 되니까 그렇게 하는 게 아니겠냐고 학생들을 일단 안심시켰다. (한국에서의 바른 사용 방법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 알려 주시길 바라며..) 한국에서는 카드로 계산을 한 뒤 알림 문자가 거의 동시에 오는 걸로 알고 있다. 누가 어디에서 얼마를 썼는 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 어찌 보면, 이런 사인은 형식일 뿐, 그렇게 중요한 절차는 아닌 듯 싶다. (카드 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일본은 아직도 문서를 중요시 하고 한국보다는 아날로그 시스템을 선호하는 것 같다. 나는 매년 같은 강의 계획서를 자필로 쓰고 있다. 강의 계획서를 보내면 확인 도장을 요구하는 문서가 다시 집으로 온다. 10년 전 한국에서 나는 컴퓨터로 썼었다.) 


알림 문자 시스템에 놀라는 일본 학생들에게 우스갯 소리로 내가

"한국에서는 남편들이 아내 명의의 카드를 받아 쓰면서 감시 아닌 감시를 받기도 하지요.  호호호 "

웃자고 한 이야기에 학생들은 웃지는 않고 심각한 얼굴로 이렇게 다시 묻는다.

" 한국에서는 본인 명의 아닌 카드를 그렇게 쓰고 다녀도 돼요??? 그러고 보니 드라마에서도 본 것 같아요. 볼 때마다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 쿤과 다다다는 각자의 명의의 카드를 쓰지만, 한국에서는 쿤도 다다다도 다다다 명의의 카드를 쓴다.)

한국에서 카드 쓰고 사인하다가 불편한 시선을 받거나 좀 짜증스런 반응을 겪었던 우리 일본 학생들은 여전히 불안한 마음에 가능하면 이름 모두를 쓰려고 노력하지만, 가게 주인의 분위기를 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중간에 끊으려고 노력한단다. ㅋ 일부 학생은 불안한 마음에 그냥 현금으로 계산한다고 한다. 

어찌 보면 몇년 전, 이름 석자를 사인해도 기다려주고 칭찬까지 해주었던 여유로운 약사를 만났던 건 행운이었다. 이 모든 상황을 다 이해하게 된 요즘 나는..? 한국에 가서는 한국식으로 좀 더 간략하게 사인한다.  

이 글을 다 마칠 무렵, 나는 문득 쿤하고 연애하던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일본에서 쿤과 데이트를 하던 중 쿤은 카드로 계산을 했고 이름 석자를 한자로 쓰면서 사인을 하고 있었다. (쿤의 이름은 석 자 다 엄청 복잡하고, 그 획순을 합치면 무려 50획이나 된다. 일본인들의 4~5글자 뺨치는 수준. )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순간 왜 저러나 싶어서 점원 눈치를 보며 쿤에게 좀 빨리 쓸 수 없냐고 재촉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카드 사인을 기다리는 그 점원은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 같다. 나 혼자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쿤을 다그쳤을 뿐...쿤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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