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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일본 경찰이 우리집을 알고 있었던 이유

일본온 지 3년이 조금 넘은 일본 초보 주부 다다다...
이런 내가 정보를 얻기 위해 들락거리는 까페가 하나 있다. 주로 일본에 사는 한국인 주부들이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교류를 하는 곳이다. 유령처럼 조용히 활동하는지라 특별한 교류는 하지 않지만, 일본 정보도 빨리 알 수 있고 일본에서 요령껏 사는 법에 대해서도 선배 주부들한테 배울 수 있다. 그런데, 그 까페에 가끔씩 올라오는 글 중에 유독 내 눈을 끄는 것이 하나 있다.

아주 다급한 제목과 함께 실리는 글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 갑자기 경찰이 우리집에 와서 이것저것 꼬치꼬치 묻고 갔는데, 왜 그런거죠? 무서워요. "

그러면, 경험많은 주부들이 친절한 댓글로 이렇게 답을 단다.

" 괜찮아요. 일본은 원래 경찰들이 가정집 일일이 돌면서 별 일 없는지 확인한답니다.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 지 확인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나도 처음 저런 글을 접했을 때는 좀 놀랐었다.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경찰이 집에 찾아와 이것저것 묻는 경우를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들의 친절한 답변을 보면서 안심을 하면서, 언젠가 경찰이 우리집에 오면 능숙하게 대처를 해야겠다고 마음까지 먹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집에는 경찰이 온 적이 없다. 한번씩 저런 글이 올라올 때마다 우리 동네는 다른건가 하고 무심히 넘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왜 우리집에는 경찰이 오지 않는지를 알게 된 사건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왜 만날 수 없었는지를 알게 된 사건이었다.

지난 토요일 아침...
볼 일이 있어서 쿤과 같이 외출을 하다가 집 앞 골목길에서 ETC(고속도로 하이패스)카드를 주웠다. 주차장 옆에 파출소가 있으니까 쿤은 ETC 카드를 파출소에 가져다 준다고 했다. 마침, 경찰이 파출소 앞에 나와 있었고
쿤은 습득한 카드를 경찰에게 건넸다. 그러자, 경찰은 습득한 물건에 대해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며, 잠깐만 안에 들어가자고 했다. 가뜩이나 약속시간에 늦었는데, 서류작성...???

"미안합니다. 저희가 지금 중요한 약속이 있고, 조금 늦은 상황인지라 그건 좀 곤란합니다."


"습득자 신고를 해야 나중에 사례라도 받을 수 있답니다. 바쁘시더라도 협조 좀 부탁드릴게요."

"사례요..?? ㅎㅎ 그런거 필요없는데.."

"하지만, 절차상..."

"이 카드를 바로 조~기 앞에서 주웠거든요... 그럼, 제가 이 카드를 다시 조~기 앞에다 가져다 놓을테니 아저씨가 주워서 신고한 걸로 하면 안 될까요..?? (엉뚱한 우리 쿤@,.@)저희가 지금 도~저히 시간이..."

"하하하...^^;;; 아이고, 많이 바쁘시군요. 그럼 제가 서류를 작성할테니 이름하고 주소만 간단히 알려주시고 가세요."

"아, 그래도 될까요? 제 이름은 쿤이고요. 저는 저기에 보이는 저 집에 살아요. 주소는 @@@#####"

"네?? 저 집이세요???"

"네... 왜 그러세요..??"

"아니 제가 이 동네를 순찰하면서 가끔 가정집을 방문하곤 하는데, 이상하게 저 집은 몇년 째 아무도 없는 거예요. 처음에는 사람이 안 사는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옆집에 물어보면, 사람이 산다는 거예요. 그 뒤로 몇 번을 가 봤는데, 전혀 인기척이 없어서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그 집 주인을 이렇게 만나뵈니 반갑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하네요. 집에는 별 일 없으시죠?"

"아, 그러셨어요..?? 저희가 없을 때만 오셨나봐요. 저희 둘다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다보니 낮에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답니다. 나중에 있을 때 한번 오세요~~ 그리고 그 카드도 잘 부탁드려요. 그럼, 바빠서 이만..."

그랬다. 우리집에도 경찰은 가정방문을 몇 번이나 왔었단다. 그러고 보니 작년 일이 생각난다. 언제인가 나는 집 현관 구멍 사이로 보이는 무서운 아저씨 때문에 놀라서 쿤에게 다급하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쿤, 쿤, 좀 아까 인터폰 울려서 나가보니까, 이상한 아저씨가 서 있는거야. 인터폰도 세 번 정도 누르고, 현관문도 두세 번 두드리고 갔어. 뭐지? 얼핏 보기에는 경찰처럼 보이는데 경찰이 우리집에 올 리가 없잖아. 수상해서 문 안 열어줬어."

그러자 쿤은

"어? 그래? 가정방문인가...? 훔..암튼 잘했어. 모르는 사람 오면 절대 문 열어주지 마.."

사실 내가 처음 일본에 왔을 때, 쿤은 나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일본생활도 모르고, 일본어도 서툴었기 때문이다. 가끔 영업사원이 와서 방문판매를 하곤 하는데, 일본어를 모르는 외국인이라면 타겟이 되기도 쉽다고 했다. 게다가, 독도 때문에 양국의 분위기가 안 좋은 지금은 더욱더 단속을 시킨다.

이런 쿤의 지시를 따르는 다다다이다 보니, 우리집에는 경찰이 방문할 틈새가 없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경찰은 몇년 째 걱정과 근심으로 우리집을 바라봤고 우리집 위치는 물론이고, 주소까지 외우게 되었던 것이다. ㅋㅋㅋ

이러니, 나는 일본 생활 3년이 되어도 초보 주부를 벗어날 수 없을 듯 하다. 어설픈 초보 주부의 대응으로 일본 경찰에게까지 유명해진 우리집...ㅋㅋ 우리집을 자세히 아니 안심을 해야할까? 되레 눈에 띄는 집이 되었으니 긴장해야 할까?

그보다 더 한 고민은, 앞으로 우리집을 또 방문하게 될 경찰 아저씨를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여전히 문을 열지 않고 무대응하는 나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건, 초보 아내에 대한 걱정과 사랑으로 나를 단속하는 쿤의 특훈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