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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쿤이 보는 일본

일본인들이 10년이 지나도 기억하는 한국인 유학생

쿤과 다다다는 일본에 살면서 많은 일본인들을 만난다..
전철을 타거나, 거리를 활보할 때, 그리고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나, 근처 슈퍼에서 장을 볼 때면, 친분이 있는 한 두명의 일본인들을 만나곤 한다..
우리가 만나는 일본인들은 교류회를 통해서 알게 되거나,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만난다.. 그들 대부분은 한국 배우나 가수가 좋아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인들과 교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문화가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르고, 정치적 이념도 다른 한국과 일본이지만, '일본인' 이라는 한 개인을 보고 있노라면, 다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지난 토요일...
쿤과 다다다는 스시를 먹으러 갔다가 한 일본인 가족을 만났다..
다다다에게서 한국어 그룹 강의를 듣는 사람의 가족이었다.. 인원수가 많아서 합석은 못하고 가볍게 인사만 했다..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그 가족도 같이 일어섰다.. 다다다와 그 가족의 안주인이 계산을 하는 동안, 나와 바깥주인은 밖에서 기다리면서 자연스레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바깥주인 : 집사람이 신승훈을 좋아해요.. 그것 때문에 한국어도 배우고 있답니다..
     쿤     : 신승훈 노래 좋죠.. 저도 신승훈 노래를 좋아하거든요..
바깥주인 : 저도 한국을 좋아합니다.. 아니, 예전엔 관심밖이었는데, 어떤 한국인 유학생 때문에 한국이 가깝게 느껴졌어요..
     쿤     : 아~ 네...
바깥주인 : 아실거예요. 10년 전 쯤에 도쿄 신오쿠보에서 열차사고로 돌아가신 한국인유학생 이스욘씨요... 며칠 전에 기일이었죠..
     쿤     : 이스욘요..??

내 머리 속에서 이스욘이라는 사람의 기억을 떠 올리는데, 다다다와 안주인이 나왔고, 우리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이스욘...
한국 이름은 이수현씨다.. 이스욘이라 함은 어눌한 일본식 발음이었던 것 같다..

이수현씨가 열차사고로 사망한 것은 2001년 1월 26일 저녁이다..
당시 나는 교토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다..
교토역 신칸센 청소때문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을 때, 청소 관리인을 통해서 사고 소식을 처음 들었다.. 사고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도쿄에 사는 유학생이 사고로 죽었구나~"하고 말았다.. 교토와 도쿄는 약 500km 정도 떨어져 있었고, 이수현씨와는 그 어떤 친분관계도 없었기에, 도쿄에 사는 한국인 유학생의 사고 소식이 몸에 와 닿지가 않았다..

그런데,,,
일본의 뉴스나 신문에서는 이수현씨의 사고 소식을 생생히 전했다..

일본인 취객을 구하기 위해, 일본인 기자와 함께 선로에 몸을 던진 한국인 유학생..!!
일본인이 잊어서는 안 될 이 시대의 영웅,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

그런 일본 미디어의 뉴스를 통해서 사고소식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1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난 11년 동안 많은 일본인들을 만났고, 그들과 친분을 쌓으며 지냈다.. 그런데, 몇몇 일본인들은 이수현 씨를 기억하며, 이 시대의 영웅이자 의인(義人)이라고 했다.. 그들은 내 기억 속에서 이수현이라는 사람의 존재가 희미해져 갈 때쯤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되뇌여 주곤 했다..


열차사고로 한국인 유학생이 삶을 달리한지도 벌써 11년이 흘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지만, 아직도 많은 일본인들은 한국인 유학생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고, 그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를 기억하는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한 거리감을 허물고, 한국을 가깝게 느끼곤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일본에서의 한류 원조가 겨울연가의 욘사마!!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지금의 한류는 의인 이수현이라는 사람의 죽음을 기억하는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가깝게 느끼게 되었고, 때마침 겨울연가 욘사마의 등장으로 폭발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검증할 수는 없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일본에 한류를 불어 넣었고, 세계속에 한류를 전파시켰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고 11주기가 지났다..
하지만, 그의 이름과 의로운 행동은 지금도 많은 일본인들의 가슴속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일본인들이 있기에 한일 민간교류는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까지도 든다.. 

이수현씨는 일본인들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가슴속에 영웅이자 의인으로 남아야 할 것 같다..

                                              <고 이수현 씨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