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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다다다가 보는 일본

피나는 아픔으로 한글 가르친 사연

지난 달부터, 다다다에게 새롭게 한국어 개인지도를 받게 된 40대 초반의 일본인 여성(K 씨)이 있습니다.
그녀는 3.11 대지진이 발생한 동북지방의 센다이라는 곳에서 살다가, 후쿠시마 원전 문제 때문에 남편만 남겨두고, 아이들과 함께 친정으로 피난을 왔다고 하더군요.. 피난을 오기 전에 살았던 센다이에서 한국어를 약 4년간 배웠고, 한국어 능력시험 중급까지 합격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어로만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좋았고, 기초도 탄탄하더군요..

그런데, 첫 수업이 있던 날.....
그녀에게는 실력에 어울리지 않는 단점이 하나 있었습니다..(옥에 티라고 할 정도).. 그 단점이란,, 'ㄷ' 을 쓰는 순서가 엉망이었어요. 그녀는 'ㄷ' 을 쓸 때, 세로선을 먼저 내려긋고, 위의 옆선과 아래의 옆선 순으로 'ㄷ' 을 쓰더군요. ( | ̄ _  이런 순서...자음 획순을 다 정확하게 쓰도록 교정하거나 하지는 않는데, 이건 아니더군요) ... 바로 교정해 주고 싶었지만, 첫 날이니까 사소한 지적은 기분을 상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뒤로 미루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ㄷ'을 쓸 때마다 너~무 신경이 쓰여서, 저도 모르게 'ㄷ' 쓰는 순서를 바로잡아 주었답니다. 그러자, K 씨 왈...

" 어머, 그래요? 저는 4년 동안 한국어를 배웠지만, 'ㄷ'쓰는 순서가 잘못된 줄도 몰랐네요. 호호호호"

그녀는 기분좋게 받아들였고, 교정해 준 대로 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그런데 4년 간의 습관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게 쉽지는 않았나 봅니다.. 'ㄷ' 을 쓸 때마다 "제가 또 이상하게 썼죠...? 이거 생각보다 잘 안 고쳐지네요...호호호.." 라며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 습관을 한번에 바꾸는 것은 어려우니까, 천천히 교정하면 되죠 뭐.. 중요한 것은 이제라도 제대로 쓰는 법을 알았다는 거 아니겠어요? 나중에 정 안되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저에게 아주 좋은 방법이 있답니다. 일명 충격요법이라고 하죠. 헤헤헤 "

여기서 "충격요법"이라는 다다다의 발언이 K씨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시켰고, 어떤 방법이냐며 묻는 K씨의 질문에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보다가 도~~ 저히 안되겠다 싶으면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수업을 하는 날이었어요.
한참 수업을 하고 있는데, K 씨가 히죽히죽하면서 웃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 선생님... 선생님은 정말 재미있는 분이세요.ㅋㅋ
" 네? 갑자기 재미있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충격요법이요...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하실 줄은 몰랐어요. 감동이에요... "

" 충격요법에,, 감동이라니요...???"
" 아이 참~~ 선생님 팔에 있는 그 'ㄷ' 말이에요. 선생님이 저를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하신 거잖아요.."
" 팔에 'ㄷ' 이라니요?"
(저는 그때도 영문을 몰랐답니다.  @,,@) 


제가 상황파악을 못 하고 있자, 그녀는 제 팔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 선생님의 그 팔에 있는 'ㄷ'이요..."

                                              이것이 바로 옷소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던'ㄷ' 의 정체.

그렇습니다.. 그녀는 제 팔 안 쪽에 있는 저것을 보고 한 말이었습니다.. 팔꿈치까지 내려오는 반소매 옷을 입고 있었는데, 제가 팔을 움직일 때마다 'ㄷ'이 살짝살짝 보였다 안 보였다 했다고 하더군요. 그걸 본 K 씨는 제가 'ㄷ' 쓰는 법을 각인시켜주기 위해 펜으로 그렸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상상력도 풍부하시지...ㅋㅋ)

그런데, 저건 제가 일부러 펜으로 그린 것도 아니고, K 씨 'ㄷ' 교정을 위한 충격요법은 더더욱 아니었답니다.

그럼, 팔에 있는 'ㄷ'의 정체는 뭐냐고요...??

두 번째 수업을 하기 전날에 저는 건강 진단을 받았고 피를 뽑았더랬죠. 다다다는 피를 뽑을 때마다 혈관이 좁아서 간호사 님들이 여간 애를 먹는 게 아니랍니다. 혈관이 움츠러드는 겨울에 채혈을 할 때면, 두~세번 바늘에 찔리는 것은 예사일 정도거든요. 게다가, 막상 혈관이 잡혀도 피가 잘 안 나와서, 바늘에 찔린 채 팔운동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게 겨우겨우 피를 쥐어 짜고 나면, 결국 저렇게 시퍼렇게 멍이 드는 것이지요. 이번에는 무슨 신의 조화인지, 그 모양이 ㄷ 자 처럼 된 것이었답니다.

즉, 저 'ㄷ' 은 저주받은 좁은 혈관이 만들어 낸 피멍자국이었던 것이죠.

                                                   수업을 하던 그 날엔 멍은 거의 없고 빨간 선만 선명했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런 모습이 되었답니다.
                                                                    조만간 'ㄷ'은 자취를 감출 듯 합니다.



그녀는 'ㄷ'을 쓸 때마다, 제 팔에 있는 피멍자국이 떠오를 것 같다고 합니다. 애초에 생각했던 '충격요법'이 뭐였는지도 궁금하다며 알려달라고 하더군요. ㅋㅋ 

훔....그건.. '똑딱똑딱' 이라는 단어를 하루에 100번씩 써 보세요~~'뚝딱뚝딱' 은 어떠세요?..
아니면 똑똑, 딱딱, 뚱뚱, 무뚝뚝…… 땀띠……도 좋겠군요. (
ㅋㅋㅋ물론 진짜로 쓰게 하지는 않지요. ㅋㅋ)

'그걸 하루에 100번씩이요...?? 아니에요~ 선생님. 저 이제 다 고쳤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