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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 (일본문화)/쿤이 보는 일본

한국어에 빠진 80세 일본인이 말하는 한글의 매력

쿤입니다.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메일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세요?

상당히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이 메일도 읽으실 시간이나 있을런지 걱정하면서 쓰고 있습니다.
올해도 서예전에 출품했습니다. 예전에 여쭈어 본 말을 썼습니다. 올해는 문자수가 적어 미숙함이 눈에 띄는지라 고생했답니다. 1년에 1회의 연습이니, 당연한 거겠죠..
한국어는 5년, 서예는 4년 해 오고 있습니다. 쿤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덕이라 생각하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국어와(일본어를) 같이 쓴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며, OO방송국에서도 취재까지 했답니다. 많은 분들이 한글은 글자가 예쁘네요~라고 말 하시더군요. 붓으로 쓴 것을 본 건 처음이라며 말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한글의 역사 소개와, 한일 양국의 공통적인 문화가 많다는 것도 이야기 하였습니다.
미숙한 글씨이지만, 한 번 정도 웃어주신다면,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지도부탁드립니다.
안녕히 계세요.

                                                                        <메일 본문>


위에 있는 메일과 함께, 올해도 서예전에 출품했다며 사진도 하나 보내주셨습니다. 2007년부터 매~년 출품을 하신다고 하는데, 2009년도와 2010년도의 작품도 있어서 올려봅니다.

                                2009년 작품                     2010년 작품                      2011년 작품


메일을 보낸 사람은 올해 80세인 일본인(이하, K씨)입니다.
K씨의 영어회화 실력은 네이티브 수준이며, 포루투갈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독일어는 회화까지는 어렵지만, 읽을 정도의 실력은 된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어학에 관심이 많고, 능력도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K씨가 2006년 봄에 쿤을 만났습니다.
치매에 걸리지 않겠다는 일념과 때마침 불어닥친 한류를 등에 업고,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지요. '가나다라'의 문자 읽기부터 문법, 어휘, 회화 등 한국어의 기초를 쿤이 가르쳤고, 경험을 쌓게 하고자, 한국어 낭독대회, 한국어 말하기 대회, 한국어 능력시험, 서예전 등을 권유했더니, 지금은 한국과 한국문화에 빠지신 분이랍니다.


한국어를 처음 접할 때의 K씨는 '한국어'와 '한글'의 다른 점도 몰랐습니다.

선생님... 제가 "한글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부하는데요.. '한글어'와 '한국어'는 어떻게 다른가요?
한국에서는 한국어를 쓰고, 일본에서는 일본어를 씁니다. 한국에 '한글어'가 있다면, 일본에는 '히라가나어'가 있을 거예요.. 근데, 한글어라는 말은 없답니다. 왜냐하면 한글이라는 말은..어쩌구 저쩌구..한글의 뜻은...어쩌구 저쩌구..이 이름이 붙여진 것은.......어쩌구 저쩌구.. 
네??? 아.. 그렇게 되는 건가요?


이후 1년 동안 K씨는 열성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했습니다.
10명 정도가 공부하는 교실에서 늘~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공부를 했고, 수업 시작 전이나 수업이 끝나면, 으례 질문 공세를 퍼붓기도 했습니다. (저도 전공자가 아닌지라, 당시 무척 열심히 공부하며 가르쳤던 기억이 납니다.) 

- '가다''갔습니다'로 변하는데, '하다'는 왜 '핬습니다'가 아니라 '했습니다'로 변하나요? 
- "밥 먹으러 갈까요?""밥 먹으러 갈래요?" 가 있는데, 어떻게 다른가요?
- tv 에서 봤는데요.. 엄마가 딸에게 "공부나 해!!"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공부라도 해!!" 와 어떻게 다른가요?

우리가 일상생활하면서 무의식중에 나누어서 쓰는 말들도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들에게는 이론적으로 이해를 해야 하는 "공부의 언어"였던 것이었습니다. 많은 한국인이 다른 언어를 배울 때와 같은 상황이라 할 수 있죠.. 


K 씨의 관심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어'가 아닌 '한글'로 옮겨졌습니다. 한글의 초창기 형태나 만들어진 과정, 문자의 유래도 살펴보고, 변천 과정도 혼자 조사하며 공부를 했습니다. 한국으로 여행을 갈 때면, 광화문 앞에 있는 oo문고에 꼭 들려서 책을 찾아 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제(6/8) 40분이 넘는 전화 통화에서 K 씨가 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한글이 얼마나 매력적인 문자인지 아세요? 
한글은 14개의 단자음과 10개의 단모음으로 모~든 소리를 문자로 적을 수 있는 글자입니다. 알파벳 26개 보다도 적고, 히라가나/카타카나 보다도 훨씬 적은 수이지만, 조합형 문자이기에 그 표현은 정말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한국의 문맹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것은 한글이 우수하다는 증거일 거예요. 이런 한글을 조금 더 빨리 만났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5년 뒤에는 선생님과 한국어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국인들도 한글의 매력에 대해 명쾌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80세의 일본인이 5년 뒤를 이야기하면서 펼치는 한글 예찬에 우리 글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지금은 직장을 다니느라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지 않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늘 감사하고 그로인해 느끼는 점이 많답니다.  

(또, 다다다의 한글 예찬도 만만치 않아서 이야기를 해 줬더니, 한번 만나보고 싶다네요.. 결혼식 때 봤으면서...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