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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의 일본 유학기

10만원 통역 갔다가 110만원 받은 사연

일본 지진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계속 일본 지진 이야기를 올렸더니, 오히려 더 움츠려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진 이야기 읽어주시면서, 언론사보다 빠른 정보다(일본 동북지방 70cm 침하), 그 어떤 언론사에서도 발표하지 않은 정보다(한국의 자연방사선이 일본보다 3배 높다.), 180명에 세상의 운명이 달렸다(일본판 아마겟돈) 라며, 메일 보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면서 힘내라고 격려주셨던 분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힘을 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본의 상황이 어수선하다 보니 일본 유학 관련문의 메일이 반 정도로 줄었습니다. 그래도 메일을 보내시는 분들의 글을 보면, 인생을 생각하고 설계하는 그 진지함에는 변화가 없음을 느낍니다. 오늘은 일본어를 배워서 통역사가 되고자 하는 분들이 계셨기에, 쿤의 일본 유학기를 곁들여 통역관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일본어 뿐만 아니라, 통역사를 꿈꾸시는 분들은 한번쯤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대학원 2학년 때, 그러니까 2006년이네요..
학교 서무과 직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ㅇㅇ제작소에서 한국어 통역자를 찾는다는 전화였습니다. 통역 내용은 한국 바이어들에게 자사제품을 설명하고 회사내 견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은 4시간, 통역비용은 1만엔(당시 약 10만원) 이었습니다.
쿤은 정장을 차려입고, 차량을 운전하여 시간에 맞춰서 그 회사에 갔습니다. 안내처에서 담당자를 찾았더니, 50대 정도의 남자분이 나오셨습니다. 한국에서 오는 바이어들이 조금 늦는다며, 차를 한잔 주시더군요..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일본에 온지 얼마나 됐는지,, 학교에서 어떤 공부를 하는지,, 일본 생활 어렵거나 힘들지 않은지 등, 세상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앞에서 한문 하나를 쓰시더니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군요...

쿤짱. 이 한문(金型 ; 금형) 라고 읽는지 아나?
카나가따요?
어!! 아네. 그럼, 研磨 (연마) 가 뭔지는 아나?
에~이 그 정도는 알죠. (이래저래 설명)

처음에는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뭐랄까요.. 통역하러 온 사람 테스트한다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아저씨는 말을 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회사에는 한국에서 바이어들이 간혹 온다네.. 언어가 다르다 보니, 의사 소통은 영어로 하려 하지만, 막상 얼굴을 맞대면 영어가 안되는 거야.. 그래서 한국어가 가능한 일본인이나, 일본에 유학하는 한국인 유학생들을 불러서 통역을 부탁하곤 하지.. 그런데, 우리 회사의 제품이라는 게 기계쪽이다 보니, 전문 용어가 많은데 너무 용어를 너무 모르더라구... 이 한문 (金型) 의 읽는 법을 정확히 맞춘 한국인 유학생은 쿤이 처음이라네.. 카네가따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건 양반이고, 킹가따, 킹케이, 카네가따찌심지어는 오카네 가따찌도 있었다네.. 기계 설명을 하는 걸 보면, 이해를 하고 통역을 하는 건지 불안할 때도 있거든..

아저씨 말씀은 통역을 하는 사람이 용어를 모르다 보니, 사업 내용의 의견교환이 순탄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통역자를 계~속 바꾸면서 부탁을 하곤 하는데, 한국 사람도 적은 시골인데다가, 공대 유학생도 적고, 어쩌다 만난 공대생이 기계전공일 확률은 거의 없다는 말씀이셨습니다.
하긴,, 저에게 법이나 의학, 일본 역사 관련 등 생소한 분야의 통역을 하라고 하면,,, 금액에 상관없이 거절할 가능성이 무지 큽니다. 일본어를 할 수 있는 것과 통역을 할 수 있냐는 것은 다르니까요...

한국에서 온 바이어는 두 분이셨습니다. 그 날의 일정은 일본 기업의 제품 프레젠과 회사 견학이었습니다. 10여명 들어갈 수 있는 회의실에서 두 바이어를 위해 프레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직원이 말을 하면, 제가 한국어로 설명을 하는 가장 일반적인 통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통역의 단점은 흐름이 끊긴다는 것입니다. 일본어를 모르는 한국 사람들에게 일본어는 단순한 소음에 지나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동시 통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직원이 저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면, 그 말을 받아서 바로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었지요.. 프레젠은 상당히 순조로웠습니다. 서로의 말을 알아듣고 바로 반응을 보이게 되니까 웃을 때 같이 웃을 수 있고,,, 집중도도 높아져서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저를 부르신 아저씨도 대만족을 하셨고, 프레젠 시간도 2시간 예정이었던 것이 40여분 만에 끝이 났습니다. (너무 빨리 끝나면, 통역비 줄어버리는 거 아닐까..? --;;)

그리고 회사 견학을 할 때도, 일본 직원 옆에 붙어서 일본어 설명을 동시 통역으로 계~속 떠들었습니다. 질문과 답변이 동시에 오고 갔고, 농담도 통역을 하다보니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회사 견학 2시간도 1시간 만에 끝나 버렸습니다.(어..?! 5,000엔(5만원)이라도 받으려면 두시간은 채워야 하는데..)

한국 바이어와 일본 직원들은 서로가 만족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假)계약을 하고 악수도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기업에서는 오늘 숙박을 료칸 온천으로 준비했다고 했습니다..(온천~ 좋겠다) 
결국, 모~든 통역이 2시간도 안 되어 끝나버렸습니다. 5천엔이라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온천 갈 준비를 하는 아저씨를 회사 로비에서 기다렸습니다.. 

쿤짱쿤짱. 고마워. 쿤짱 덕분에 1대에 수천만엔(수억원)짜리 기계를 가계약까지 했어. 하하하
가계약까지 되셨다니 다행이네요.
다~ 쿤짱 덕분이야. 정말 고마워.
제가 뭘요. 제품이 좋으니까 계약 된거죠.
아냐 아냐, 통역 잘 해줘서 된거야. 4시간에 1만엔이라고 했지만, 쿤짱은 2시간 만에 할 일을 다~ 했으니까 통역비 1만엔이야.
(헉?! 1만엔?? 앗싸~ㅋㅋ) 1만엔요? 2시간 정도 밖에 안 했으니 5,000엔이면 되는데요.
아냐. 4시간은 우리가 설정한 시간이고, 쿤짱은 1만엔 다 받아도 돼. (또 하나의 봉투를 주며)그리고, 이거는 감사의 표시로 주는 거야.. 나중에 혼자 있을 때 열어봐.. 아참..!! 우리 지금부터 온천가는데, 쿤짱도 같이 갈래..??
아~ 그게 학교 실험이 있어서..... 제의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뜻하지 않게 봉투를 두 개를 받았습니다. 두 번째 받은 것은 조금 투툼했습니다. 이게 뭐지~ 하고 열어봤는데,, 헉!!! 10만엔(100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너무 놀라서 아저씨가 가신 곳을 봤는데, 한국 바이어들과 차에 오르려 하시더군요.. 이거 그냥 이렇게 받아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당황했습니다. 차를 타고 학교로 돌아오면서 전화를 했습니다.

아저씨..!! 이거 10만엔 들어있는데, 저 주시는 거 맞아요~?
감사의 표시라면서 10만엔 밖에 못 줘서 미안해~ 내가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다시 보자고~

전화가 끊겼습니다. 그렇게 해서 1만엔(10만원) 통역을 하러 갔다가 11만엔(110만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후 졸업할 때까지 두 번 정도 통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번 다~ 만족할 만한 통역이었습니다.(그런데, 바이어들이 다른 곳을 가야했기에, 온천 옵션은 없었습니다. --;;)
 

해외 유학을 하고, 어학을 공부해서, 그 경험을 살려 통역사를 꿈꾸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통역사가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어학을 할 수 있다고 해서 통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라 봅니다. 일본어를 예로 든다면, 일본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어 통역을 공부한다고 해서 그 모든 통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 봅니다. 게다가 요즘에는 외국어를 네이티브처럼 말하는 한국 사람 정~말 많습니다. 일본 사람들의 서울 여행은 한국어가 필요없을 정도로 일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학을 전공해서 인생을 설계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최근의 일본 추세를 보면, 일본에 유학을 하는 한국인 유학생을 고용하여, 회사 업무와 한국어 통역이라는 1석 2조를 노리는 기업도 많습니다. 게다가 각각의 유학생 마다 경제, 경영, 광고, 공대, 법, 약학 등의 전공을 가지고 있다보니, 전문 통역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랍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어만 공부해서 통역사의 길을 가겠다는 것은 정말 선택 받은 극소수의 사람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막연히 통번역 관련 학교를 나와 통역사를 꿈꾸기 보다는, 본인의 전공 분야를 고르고, 그 전문성을 살리는 통역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유는,, 어학은 삶의 도구일뿐, 수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