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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사는법

해외 생활에서 부부 금슬이 중요한 이유

한국은 가족을 비롯한 인간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부부가 해외에 나가 살기만 해도 사이가 좋아진다는 말을 하곤 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해외 생활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전후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경조사나 명절 스트레스, 고부 갈등 등의 인간 관계의 얽힘 없이 둘 만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던 점에서 해외 생활의 장점이 우리 부부에게도 작용한 점은 분명하다. 어떻게 보면 해외에 사니까 부부 사이가 좋다가 아니라, 해외에 사니까 부부 사이를 더 좋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 있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부부의 경우는 일본이라는 환경이 제공한 부분도 있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그냥 가볍게 읽어주면 좋겠다. (덧붙여 굳이 해외 생활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모든 부부에게 해당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각 방이 웬 말

일본의 집은 그리 크지 않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일수록 집값이 비싸 더 작은 곳에서 살 것이다. 우리는 지방 도시 외곽에 살고 있어서 다행히 좀 큰 집에서 살고 있지만, 문제는 겨울에는 무지 춥고, 여름에는 무지 덥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봄 가을을 제외한 여름과 겨울에는 거실과 안방으로 활동 범위를 좁혀 냉난방을 가동하며 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싸움을 하게 되어 각 방을 쓰고자 한다면 어떻게 될까?? 냉난방이 가동되지 않는 방에서 자면 몸이 고생이고, 그렇다고 쓸데없이 다른 방까지 냉난방을 이중으로 가동하자니 전기세가 아까워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집은 냉난방 기구가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방으로 가는 사람은 얼어죽거나 쪄죽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아무리 크게 싸워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반드시 화해를 하는 버릇은 이런 집의 특징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다. ^^;;   


 갈 곳도 없지만 나가면 돈

누구나 크게 한 바탕 싸우고 나면 집을 박차고 나가고 싶게 마련이다. 그런데, 나가려고 해도 마땅히 갈 데가 없다. 사는 곳이 해외라면 그 범위는 더 좁게 마련이다. 일본 생활 3년 차에 막 들어선 내가 친구가 있다고 한들, 마음 편히 무작정 찾아갈 만큼의 상대는 없다. 다른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다 취업으로 이 곳에 정착한 쿤 역시 친구들과 뿔뿔이 헤어져 가까이에는 아무도 없다. 
설사, 친구의 집으로 갈 수 있다고 해도 살인적인 교통비며, 식사비 등을 생각해 보면 나갈 마음이 뚝 사라진다. 간 크게 호텔에서 숙식을 한다고 하면 '이 돈이면~~' 이라는 생각에 피눈물이 날 것이다. 그러니 화가 나도 현관을 박차고 나갔다가 동네 한번 돌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으로 들어 오게 되는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 둘 뿐
  

일본의 회사는 한국에 비해 회식이 별로 없다. (경기가 안 좋아진 이후 더욱 줄고 있는 상황) 쿤이 전체 혹은 팀 회식으로 늦는 것은 많아야 1년에 3~4번에 불과하다. 나 또한 망년회다 뭐다 하긴 하지만 쿤과 다르지 않다. 쿤은 거의 칼퇴근을 하기 때문에 우리 부부가 1년에 같이 저녁을 먹는 날은 365일에서 조금 빠지지 않을까 싶다. 
일본에도 설날, 추석, 골덴위크, 실버위크 등의 명절이나 긴 휴일이 있지만, 부모님이나 친척이 곁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둘이 덩그러니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렇게 덩그러니 남겨지면, 해외 생활을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때가 되면 한번씩 찾아오는 고질적인 것이 있는데 바로 "그리움"이다. 해외 생활의 그리움은 부부 사이가 어떠냐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것 같다. 순간 순간 찾아오는 그리움을 몰아낼 수 있는 건 사랑스런 남편 혹은 내 가족의 자리가 어떻게 채워지느냐에 달려있다.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유일한 효도
 
해외 생활에서 얻은 자유의 대가는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곁에서 봉양할 수 없다는 죄송함이다. 나 역시 옆에서 다른 자식처럼 부모님을 챙기지 못하는 것을 늘 죄스럽게 생각하고 있고,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그리운 자식을 옆에서 끼고 살며 지켜보지 못하는 서운함이 크신 듯하다. 그런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효도는 알콩달콩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 뿐이다. 가끔은 부모님께서 직접 일본까지 오시기도 하는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가시면 그 자체로 아주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끔 국제 결혼 혹은 남편의 해외 발령으로 일본에 오게 되는 주부 님들이 일본 생활이 어떠냐고 묻곤 한다. 한국과 비교해서 살 만 한 지, 한국과는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살면 좋겠는지를 묻는다. 일본어를 배우고 취직을 하고 친구를 사귀고...물론 그것들도 중요한 조건이 되겠지만, 내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원만한 부부 사이" 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가 유지된다면, 대화를 통해 어떤 어려움이든지 극복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