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쿤의 일본 유학기

우연→필연→운명으로 만들었던 나의 일본 대학 입학기

처음에는 우연으로..

쿤의 일본 유학기를 사랑해주시는 여러분께 늘 감사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쿤님 너무 멋져요~! 저도 그렇게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철저하게 계획세워서 알차게 유학하고 싶어요..." 라는 말씀을 자주 해주십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쿤의 유학이 처음에는 정말 우연처럼 이루어졌다는 걸 아실런지..
오늘은 우연에 불과했던 일본 유학이 필연이 되고, 저의 운명이 되어 버린 사건 "어리버리 일본 대학 입학기"를 써 볼까 합니다.


애초에 나의 유학 목표는 오직 일본어 능력시험 1급 취득 뿐이었다.

제가 일본에 오게 된 것은 군 제대 후, 복학 신청 마감 시기를 일주일 차이로 놓치는 바람에 1년을 놀게 되면서 일종의 복학 전 땜방용으로 시작되었답니다. 물론 어학 실력을 쌓아 취직 대비도 해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다는 꼼수도 있긴 했습니다.
그렇게 1998년도 3월 31일에 일본으로 건너오게 되었고, 당시의 목표는 1년 안에 일본어를 마스터해서 한국으로 돌아간다 였습니다. 일본어 마스터의 목표를 능통한 일본어 회화로 잡았기 때문에 일본애들과 열심히 놀면서 살아있는 일본어를 배우려고 했습니다. 같이 알바하고, 풋살하러 다니고, 일본인들과의 모임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일본어를 배웠 더랬죠. 그런데 98년 8월에 일본어 능력시험 접수를 하면서 쿤은 객기를 부렸습니다. 그 객기란, 한자와 어휘에 약한 공대생이 히라가나부터 일본어를 시작해서 8개월 만에 일본어 능력시험 1급을 보려고 했던 것이었죠. 모든 선생님들이 만류했지만 나름의 동기와 목표를 정하고 열공을 했더랍니다. 그런데, 결과는 2점이 모자른 278점으로 1급을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T.T (1급 합격라인 280/400점). 학교 선생님들은 "생각보다 점수 잘 나왔네~"라며 위로를 해 주었지만, 낙방이라는 결과에는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의기소침 상태에 빠져버렸답니다. 그리고 1급 낙방은 어학연수를 2년으로 늘리는 계기가 되었더랬죠.

일본어 능력시험 1급 합격으로 바뀐 목표

일본어 어학연수 2년 차에 접어 들었을 때, 쿤의 머릿 속에는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1급을 따가지고 한국 간다 는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회화는 어려움없이 구사했지만, 어휘력이 모자랐고, 장문을 읽는 속도가 늦었던지라, 필요한 부분에 신경을 쓰면서 틈틈이 공부를 했답니다. 그리고 99년 6월인가 7월에 학교에서 모의고사 시험을 봤는데, 굉장한 고득점이 나왔답니다. 그러자, 주변의 친구들은 차원이 다른 점수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쿤 짱..!! 쿤 짱은 일본어 점수가 상당히 높은데 일본에서 대학은 안가?
붙든 떨어지든 대학 시험 한번 보는건 어때??

대학이라~ 일본에서 대학 입학은 생각에도 없었는데... 일본까지 왔으니까 시험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왕에 도전을 할 거라면, 일본의 초 명문대인 교토대를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답니다...ㅋㅋ 그 때부터 교토대라는 또 다른 목표가 생겼습니다. 언감생심 교토대가 웬 말일까 하시겠지만, 무일푼 일본유학이었기에 사립대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었답니다.


준비되지 않았던 첫 대학 시험....결과는 낙방

일본의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본어 이외에도 센터시험(영어+수학+과학, 지금의 유학생 시험)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번갯불에 콩을 굽겠다는 심보로 시험 5개월을 남기고 영.수.과의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일본인들과의 교류활동을 줄이고 공부를 시작했으나, 군대라는 기간을 포함하여 5년이라는 공백때문에 쉽지가 않았습니다. 게다가 오전에 어학원, 오후는 알바...휴..그래도 나름 열심히 센터시험 공부를 해서 배짱좋게 "교토대"에 응시했으나...보기 좋게 최종낙방을 했답니다.ㅜ,.ㅜ


우연이 필연이 되었던 두 번째 대학 시험...합격 그리고 장학금

그러던 중, 친구가 '리츠메이칸 대학' 이라는 곳에 시험을 본다고 했습니다. 학비가 비싼 사립대는 꿈도 꾸지 않았던 저였지만 로봇 분야의 유명 교수가 있었던 점과, 시험을 잘 보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귀가 팔랑거려 시험(일본어 영어 수학)을 보게 되었답니다. 당시 리츠메이칸 대학의 일본어 시험은 일본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그 수준이 높았답니다. 저는 이과 분야는 강했지만 언어 쪽이 쥐약이었던지라, 일본어 능력시험 점수가 높다 하더라도 자신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가려고 하는 로봇 학과의 유학생 티오는 단, 한 명이었거든요. 하지만,  일본어 점수도, 다른 과목의 5개월 날림 공부도 먹혀서 합격을 했고, 수업료 면제와 장학금도 받게 되었답니다.

'뚜렷한 목표와 철저한 계획으로 이룬 유학'이라는 주변분들의 칭찬을 곧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저의 어리버리함을 아시겠지요?
로봇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일본 로봇 시장을 꼼꼼이 조사하고 파악하고 있었으나, 대학 입학은 일본어 능력시험 고득점 이외에는 운이 따랐다고 보고 있습니다..


준비되지 않았기에 돌아간 길...하지만 유익했다.

대학에 입학해서 보니 저랑 같은 어학원 친구들이 많이 있더군요. 어느 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대학 입학 때 고생했던 이야기를 하는데, 친구가 말을 끊으며 이런 말을 합니다..

" 쿤! 너 리츠메이칸 시험 일일이 다~ 보고 들어온 거야?  우리 어학원하고 리츠메이칸 결연맺고 있는 거 알지? 각 학부당 1명 씩은 추천제로 입학할 수 있어서, 우리는 다 그걸로 입학했어... 게다가 공대는 가려는 사람이 없어서 응시자도 없었다고 하더구만,,,ㅉㅉㅉ"

그렇습니다. 사실 제가 다니던 어학원은 어학원 때의 성적과 출석, 그리고 학교 생활을 종합하여 리츠메이칸 대학의 추천입학제를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어 성적이 좋았던 제가 저 제도를 이용했다면 간단한 면접으로 쉽게 리츠메이칸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이었죠. 저 제도를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리츠메이칸에 추천을 받고 나면 다른 대학에 시험을 칠 수 없었고, 금전적인 사정상 교토대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토대 낙방 후, 어쩔 수 없이 저는 학교 본고사인 일본어 영어 수학시험을 다 보고 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저는 친구들보다 어렵게 들어갔지만, 그래도 짧은 수험 공부를 통해 수학과 과학을 훑어볼 수 있었기에, 대학 1학년 학과공부에 좀 더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후회도 억울함도 없답니다.


우연으로 시작해도 필연으로 생각하고 운명으로 만들면 된다.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제가 만약 처음부터 대학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일본 유학을 시작했다면, 저의 일본 유학은 어떻게 펼쳐졌을까에 대해서 말입니다. 더 좋은 대학교 들어갔을 수도 있었을 테고, 아무런 계획도 없었던 것보다야 확실히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비록 저는 무계획과 무준비로 우연치않게 흘러가듯 리츠메이칸이라는 대학에 정착했지만, 입학을 한 후에는 '이 대학이 내 대학이다' 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답니다. 우연도 필연으로 만들면 내 것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로봇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일본의 로봇시장의 규모, 기술력, 유학생의 취업분야 등 정보를 찾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 수 있었고, 그 필연은 운명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대학원에 들어가서 교수와 말다툼을 하고 전공을 바꾸기는 했지만, 전화위복이 되었고 그 또한 저의 운명으로 자리잡았죠.


 
유학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하든지간에 처음부터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열심히 한다면 더 좋은 기회와 결과가 생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설사 우연으로 시작했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한다면 자신의 멋진 운명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